2019년 8월 2차 편집부 추천작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되지 않는다
로맨스, 추리/스릴러
어서 오세요, 살풍경한 지옥이 가득한 우리 집으로
악인이 지옥에 가게 되면 어떤 벌을 받게 될까? 지옥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되지 않는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주인공 서주의 할머니는 연립주택에 세를 놓고 있다. 하지만 집이 워낙 낡고 오래된 탓에 최근 세입자 구하기가 여의치 않던 할머니는 덜컥 ‘지옥’과 임대차 계약을 하고 만다. 개인도 아니고 법인이라는 ‘지옥’이란 대체 무슨 회사 이름인가? 하던 의문도 잠시, 악인이 넘쳐나는 좁아터진 지옥이 일부 구역 리모델링에 들어가는 바람에 죄인 둘 곳이 없어 그렇다는 할머니의 성실한 설명에 주인공은 입이 떡 벌어진다. 빈 방 몇 개뿐만이 아니라 보일러실과 지하실까지 남는 공간은 온통 빌려 주고 만 할머니 덕분에 도무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지옥 풍경이 매일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집은 문자 그대로 ‘현실에 펼쳐진 지옥’이다. 이런 와중에 아르바이트 나가는 서주에게 누군가가 하트를 넣은 쪽지와 함께 달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얼음 동동 띄운 미숫가루를 바치기 시작하는데……. 정신을 놓을 것 같이 황당한 상황에도 침착한 주인공의 태도나 이 기묘한 상황 자체가 주는 유머러스함에 푸스스 웃음이 지어지다가도, 갑작스럽게 닥치는 냉혹한 현실에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가 오묘한 이 매력적인 장편의 기묘하게 희망적인 결말은 슬프지만 몹시 사랑스럽다. 읽다 보면 굳이 불길이나 유황 냄새나 다른 끔찍한 장면 없이도 우리네 현실이 어떤 면에서 가장 지옥에 가깝다거나, 때로는 악마보다도 인간이 더 무서운 것 같다는 아주 씁쓸한 깨달음이 남지만 말이다.
작가
리러하
어느 날, 잔멸치
판타지, 일반
삶에서 허우적거리던 직장인 여성에게 당도한 고아한 환상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내가 본 거, 그거 인어 맞지?’ 아침마다 만원 지하철이 유난히 힘든 소진은 출근 도중에 두어 번은 내려서 쉬는 게 어느덧 익숙한 일과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하철역 벤치에 앉아 호흡을 진정시키던 그녀는 아침에 집에서 본 ‘그것’의 존재를 떠올린다. 사람의 상반신에 물고기의 하반신을 한, 그러니까 말 그대로 동화 속에서나 보던 인어가 자신의 가습기 물통에서 발견되었던 것. 기억을 되짚어 보니 어제 회식 자리에서 마른안주로 나온 잔멸치를 보고 기이한 연민을 느껴 주머니에 담아 왔던 것 같기도 한데…… 그 멸치가 사실은 인어였던 걸까? 회식을 빙자해 매일같이 송별회를 벌이는 파탄 직전의 부서에 남아 앞날을 헤아려야 하는 처지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신욕조의 인어까지 떠맡게 된 소진은 성별도 고향도 신분도 알 수 없고 심지어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존재에 대한 비밀을 품고 지내게 된다. 환상적인 존재와 운명처럼 조우하게 된 일화로 시작하는 「어느 날, 잔멸치」는 매일 같이 회사에서 생존 퀘스트를 반복하는 동안 체력도 마음도 고갈되어 버린 한 직장인 여성의 이야기를 사려 깊은 시선으로 비추는 작품이다. 누가 내 상태를 알아차리기라도 할까 싶어 전전긍긍 조바심 가득했던 소진에게 인어는 어떤 의미로 찾아든 걸까. 무던한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예민하고 불안한 감각이 넘실거리는 이 작품은 읽는 이에게도 너르디너른 감정의 진폭을 전하며 내밀하게 다가온다. 눈앞에 나타났던 인어가 일순의 환상이었는지 어떤 미래의 전조였는지 해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다 큰 어른에게도 마법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연장에서 영화 「유니콘 스토어」가 겹쳐 올랐다. 소위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실패를 거듭하지만 꿋꿋하게 스스로를 믿어 보려 애쓰는 주인공의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하며, 이 작품에 대한 일독의 권유를 갈음해 본다. “자신의 진가를 몰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방황하게 하지 마.”
작가
한켠
벽 곰팡이
호러
사소한 벽 곰팡이로 인해 촉발된 거대한 불행의 도화선
수미네 가족은 어느덧 미국 이민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언제나 강제출국에 대한 불안감과 생활고와 인종차별까지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며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단지 싸다는 이유만으로 6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로 이사 온 이후에는 노후한 시설로 집 안 곳곳에 성한 곳이 없었는데, 이윽고 두 아이들의 피부와 호흡기에까지 문제가 생기고 만다. 의료보험을 받지 못하는 처지라 고민만 커져가는 가운데, 아파트 관리팀에서 보낸 백인 수리 기사가 벽 곰팡이 문제가 심각하니 조치를 취하는 게 좋겠다는 진단과 조언을 건넨다. 한편, 수미는 설상가상으로 둘째 아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교장 손자로부터 끔찍한 협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데…….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두 번째 작품집에 수록된 본 작품의 황희 작가는 이후에도 「얼음 폭풍」 등을 발표하며 동양인 이주민의 두려움과 불안을 공포 장르를 통해 날카롭게 표현해 왔다. 집 꼴은 엉망인 데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혐오로 점철된 폭력에 노출되어 있어 안팎으로 극심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 주인공 가족의 처지는 개탄스러울 정도로 현실적이라 안타까움을 자아내는데, 이 과정에서 언뜻 사소해 보였던 곰팡이에서 시작된 불행이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는 서사 구조가 인상적으로 활용된다. 특히 세심한 복선으로 등장인물들의 다중적 면모를 영민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는 후반부로 이를수록 더욱 극대화 된 공포를 느끼게 한다.
작가
공포문학 단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