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차 편집부 추천작

내일은 퇴사하는 날
판타지
40년 차 노동자 뱀파이어 브릴린의 목숨을 건 장대한 퇴사 계획
강시로 자주 오해를 사던 뱀파이어 ‘브릴린’은 누구든 받아준다는 ‘쏜쌀카페’에 취업한다. 그러나 한글을 몰라 호랑이와 까치 사장과 불공정한 100년 종신 계약을 맺게 된다. 브릴린이 열악한 근무환경을 참고 근무한 지 어언 40년, 그러나 피로 계약한 근로계약서로 인해 그만둘 수조차 없다. 게다가 브릴린의 목숨을 위협하는 꼬마 담피르까지 나타나는데. 까치 사장은 퇴사를 선언한 브릴린에게 금고에 있는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하고, 금고 비밀번호를 알기 위해 천신을 모시는 야매무당을 찾아간 브릴린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된다. 뱀파이어인 여성 주인공이 불공정한 근로계약에 맞서 퇴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쾌활하게 그린 『내일은 퇴사하는 날』 은 다양한 인간 외 여성 캐릭터들이 대활약하는 동양 판타지다. 호랑이, 까치, 늑대인간, 도깨비, 담피르, 용생구자 등 동서양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한 장소에 모여 자기만의 서사를 따라 움직이는 가운데, 뱀파이어 브릴린이 퇴사를 위해 힌트를 하나씩 수집해 나가는 과정이 유쾌하고 흥미롭다. 과연 이 모든 사건 사고가 브릴린의 퇴사에 도움이 될까? 이후 전개가 기대된다.
작가
김N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
SF, 호러
방방곡곡 꼰대주의보 발령, 인류 최후의 운명을 건 ‘좀상님’과의 사투!
어느 날 복면을 쓴 여성들이 한 종갓집 마당에 들이닥치더니 병풍을 부수고 제사상을 엎으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을 만든다. 유능한 통역사지만 명절마다 불려가 온갖 가사 노동을 해야 하는 종갓집 막내며느리 ‘수진’이 제사 없애기 운동본부의 본부장 ‘한나’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 한나는 호쾌하게 오늘의 임무를 성공한 기념으로 “인류 최후의 전쟁은 제사 없애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며 거나하게 뒤풀이를 하는데, 어느새 필름이 끊겨 버리고 만다. 다음 날 숙취에 신음하던 한나는 자신의 집 거실에서 2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마주하고 깜짝 놀라는데, 국에 왜 국물이 있냐며 당연한 것을 물어오는 시어머니의 얼굴엔 눈알이 있던 썩은 자리만 공허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좀비가 되어 나타난 시어머니에게마저 당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한나는 이혼도 했겠다, 왜 이렇게 쩔쩔매나 싶어 시어머니와 제대로 ‘맞장’ 한번 떠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러던 중, 한나는 수진의 다급한 연락을 받는데……. 「살아 있는 조상님들의 밤」은 미지의 현상으로 인해 죽은 조상들이 되살아난다는 아찔한 설정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코믹 SF 호러다. 애초부터 좀비들의 탄생과 전파에 대한 논리가 크게 중요치 않은 설정을 과감하게 선택했기에, 좀비라는 소재도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좀상님(좀비+조상님)’들이 되살아난다는 핵심 설정을 중심으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점점 더 수습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며 끊임없이 흥미를 유발하는 구조가 인상적이다. 한국사회에서 중요시하는 예절, 특히 장유유서라는 키워드 하나로 ‘크레센도’로 나아가는 이야기의 대미를 확인해 보시라. 단, 듣는 게 아니라 읽는 잔소리지만 너무 리얼한 탓에 유머를 넘어 가끔 현타가 올 수도 있으니 알아서 조심하셔야 한다.
작가
경희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 회색 여우
SF
좀비가 가득한 땅으로 향하는 킬의 실감적인 항해 일지
핵으로도 좀비를 없애지 못한 미국 정부는 연구 끝에 ‘비활성 탄’이라 불리는 폭발물을 터뜨려 플로리다에 가상의 장벽이 생긴다. 그로 인해 좀비를 무력화시키는 안전한 ‘포함 구역’이 형성된 지 25년, 포함 구역 내에 물자는 항상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목숨을 걸고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배드랜드’를 오가며 필수품을 구해 오던 ‘킬’은 다시는 항해하지 않기로 선언했으나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고독한 항해를 떠나고 위기에 처한다. 「회색 여우」는 일기 형식의 좀비 소설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 1, 2권의 주인공 ‘킬’이 등장하는 단편으로, 좀비 사태에도 30년 간 살아남게 한 군사 안보 관련 지식이 여전히 빛나는 것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한 항해 묘사가 탁월해 실감이 넘친다. 외부의 수많은 위협에도 침착하게 목적 달성에만 힘쓰던 주인공이 위기에 빠져 마침내 마지막 항해의 비밀이 드러났을 때 애틋한 사랑이 가슴에 큰 울림을 주고, 뒤이은 반전은 감동과 감탄을 자아낸다.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 시리즈에서 이어지지만 또 하나의 독립된 세계관을 완성한 「회색 여우」는 이 시리즈를 아직 접하지 않은 이도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
JL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