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차 편집부 추천작

내가 죽기 일주일 전
판타지, 로맨스
톡 건드리면 터져 버릴 것 같은 따듯하고 슬픈 감성 판타지
죽음,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만큼 견디기 어려운 것이 있을까. 사랑하는 이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곁을 떠난다면, 누구나 한 번쯤 후회로 가슴을 칠 것이다. 미처 하지 못한 말에 대한 후회 혹은 하지 않았어야 됐을 말에 대한 후회로. 그리고 그런 후회와 함께 죄책감 혹은 원망마저 인다면, 남은 이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예기치 못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 삶의 이정표마저 잃어버린 이들을 따듯하게 보듬는 글이다. ‘저승사자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온다’는 다소 섬뜩하면서도 애잔한 말과 함께, 오래 전 죽어 그립고 또 그리운 소꿉친구 ‘나무’가 희완의 앞에 나타난다. ‘람우’라는 이름을 ‘나무’라고 부르는 그녀에게, 나무의 모습을 한 저승사자는 친근하게 발음이 엉망이라 꼬집으며 앞으로 두 번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고통 없이 편하게 죽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앞으로 일주일 뒤에 너는 교통사고로 끔찍한 죽음을 맞을 거라고 경고를 던지며. 그리고 이름을 부르라고 우기는 저승사자와 이렇게라도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어하는 여자 사이의 미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이야기는 나무와 희완의 현재와 과거가 번갈아 진행되며 양파 까듯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과 슬픈 인연에 대해 털어놓는다. 둘 사이의 풋풋한 감정의 묘사가 사랑스럽기에 그 갑작스러운 헤어짐이 더 애잔하고, 마침내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때 그것은 톡 건드리기만 해도 툭 하고 터져버릴 것처럼 슬픈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죽음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는 따듯하고 잔잔하다. 뒤 이은 에피소드도 모두 사랑스럽다.
작가
해차반
위대한 침묵
SF
침묵하는 우주에서 느껴지는 광막함과 장엄함
오랫동안 자원과 에너지를 갈구해 왔고 ‘플루토늄 5년’이란 비극을 경험하기도 한 미래의 인류는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중력파에 주목한다. 기술 개발 덕에 본격적으로 수신할 수 있게 된 중력파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신호가 담겨 있었다. 글로벌한 에너지 및 통신 기업 인텍 사의 홍보부 직원 미후는 지상이 아닌 우주의 스테이션에서 연설문 원고를 수정하던 중 자회사 부사장인 크로포드의 호출을 받는다. 크로포드는 회사 내부에 사업을 위협하는 조직이 침투해 있다며 배신자 색출을 도와달라고 은밀히 부탁한다. 「위대한 침묵」은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지 한 세기 만에 에너지의 파동 ‘중력파’가 검출되고 나서 또다시 한 세기가 지난 22세기 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력파를 소재로 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하드 SF이지만, 거대 기업의 프로젝트를 둘러싼 이야기에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적인 요소가 곁들여져서 극적 긴장감이 뛰어나다. 소재와 장르로 인해 읽기 전부터 일단 난해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품을 수도 있겠으나 지레 주저할 필요는 없다. ‘비전문가’인 주인공의 시선에서 무리없이 전개되도록 전문적인 내용을 나름대로 친절하게 풀어 내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
달바라기
시면
SF
차원을 세밀하게 고찰하는 독창적인 발상이 빛나는 작품
3대째 국수 면을 만드는 가업을 이어받겠다며 진학을 포기했던 고등학교 동창생 ‘송연’은 일부러 연락해 만난 ‘선미’에게 그간 자신이 경험했던 ‘면학기(麵學記)’를 들려준다. 그런데 오랜만에 재회한 두 친구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어딘지 모르게 심상찮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면을 공부하던 송연은 티베트에서 탄 기차에서 목적지를 놓쳐 우연히 고지대 오지 마을에 내리게 되었는데, 의외롭게도 그곳에서 한 서양인 여성을 만난다. 물리학자임을 밝힌 그녀는 송연의 면발 수행(?)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하필이면 이토록 외진 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자초지종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 연구란 바로, 차원을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시간’을 유체 형태로 나타내 물질로서 획득하고 이것을 실용화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시면」은 선, 면, 공간, 시공간으로 구분되는 차원의 개념을 쪼개고 조합해 독창적인 가설을 설립하고, 이를 두 친구의 우정으로 보다 깊이 담아내는 독특한 SF다. 개인의 삶을 조망하는 동시에, 선형적인 모양과 장수의 뜻을 모두 지닌 ‘국수’라는 최적의 소재를 통해 시간의 형태를 버무려 낸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작품 속에서도 언급되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 ‘시간의 꽃’이 있다면 어딘가엔 시간을 담은 국수인 ‘시면’도 있을지 모르는 법. 기본적인 설정 탓에 이야기의 호흡이 다소 길지만, 독자를 이해시키는 배려도 살뜰하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국의 국수를 음미한 것처럼 다채로운 감상으로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
cojette
돼지가면 놀이
호러
한국전쟁 당시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충격적인 기록
한국전쟁에 참전해 강원도 전선에서 복무하던 남자는 휴전 소식을 듣고 제대증을 발부받는다. 수송 수단이 모자라 걸어서 전선을 벗어나야 했던 그는, 무조건 남쪽을 향해 걷던 중 미군 통신기지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함께 일명 ‘펀치볼’이라고 불리던 강원도의 한 지역으로 흘러들어가게 되는데…. 「돼지가면 놀이」는 한국전쟁 당시 벌어졌던 극단적인 기아 사태로 모든 것이 베일에 감춰졌던 지역의 과거를 깊숙이 파헤친다. 한국전쟁을 겪었던 의뢰인의 직접 구술과 한 달간의 조사를 마친 사립 탐정(무려 핀거튼 탐정 서울지사 소속이다!)의 기록문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런 형식에서 배가되는 스산함과 긴장감 역시 빼놓지 못할 장점으로 꼽힌다. 노인이 다 된 의뢰인이 과거를 회상하는 구술은 몽환적이고 판타지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하지만, 구술의 진위를 가려내기 위해 파견된 조사원의 기록문은 매우 건조한 톤앤매너로 사건의 중심을 향해 서서히 나아가기 때문이다. 교차적 구성으로 인물과 시간을 넘나들며 흥미를 더하는 충격적 사건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보시기를.
작가
공포문학 단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