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차 편집부 추천작

엥폴리테 사람들 (Les Impolité)
판타지, 호러
말과 행동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가의 말로
중단편으로 추천한 적이 있는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일가, ‘엥폴리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장편 소설로 개작되어 연재 중이다. 언행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이에게 발병하는 ‘혓바늘리즘’ 부터 손버릇이 나쁜 이에게 발병하는 ‘개미개미 점’, 무용한 말로 상처를 주는 이에게 발병하는 ‘강제선택적 함구증’, 타인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 이에게 발병하는 ‘잡음소음 증후군’, 방약무인한 언행을 일삼는 이에게 발병하는 ‘광장 리플레이증’까지 무례한 엥폴리테 가에 저주가 내린다. 자신의 발언만 중요할 뿐 상대방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 데다가 앞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성격만 급해 직원들을 혹사하는 엥폴리테 가의 사람들은 기이한 증상으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이들은 극심한 고통과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오직 외부 귀인 하여 갱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블랙 유머가 빛나는 이 작품은 저주로 고통 받는 일가의 모습을 과장되게 그려 냄으로써 현실의 만연한 부조리를 더욱더 생생하게 드러내는데, 이들이 치를 업보는 과연 어떤 형태일지 그 끝이 궁금해진다.
작가
온연두콩
죽음에 이르는 병, 발기부전! 그대로 놔두시겠습니까?
판타지, 로맨스
발기부전인 그녀의 인생, 다시 설 날이 올 것인가?
“흡연은 발기부전증 개선에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자취방에서 자소서를 수정하는 내 앞에 하얀 러닝셔츠에 하얀 면팬티 차림의 남자가 나타난다. 기겁해 의자에서 굴러 떨어진 나를 내려다보며, 그는 자신을 ‘발기부전의 요정’이라고 소개한다. 몸에 안 좋으니 담배를 끊으라고 공익광고처럼 권한 자칭 요정은, 정작 내가 기절한 사이 내 담배를 한 대 빌려간다. 알바를 하고 있는 편의점에서 이 해괴한 경험담을 늘어놓자, 선배 알바생 언니가 이 동네에 도는 기묘한 소문에 대해 말해준다. 동네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집에 대한 괴담이 있는데, 이 이야기의 특징은 세입자들이 죽기 전에 팬티 차림의 귀신을 봤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다음 날, 내 자소서가 유서로 변질되고 있을 즈음, 요정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발기부전인 사람에게 붙는다는 요정의 소개 인사를 반복해서 확인한 나는 억울함에 울부짖는다. “아니, 나는 여자라고!” 하지만 요정은 수줍게 대꾸할 뿐이다. “제가 틀릴 리가 없는걸요, 아가씨는 발기부전이에요.” 여자인 내가 어떻게 발기부전에 걸릴 수 있냐는 반박 앞에 팬티 차림의 아저씨 요정이 누구에게나 가슴에 하나쯤 상징적인 ‘그것’이 있다는 대답을 늘어놓을 때쯤, 작품의 유머는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발기부전이라는 것이 단순히 신체적인 증상이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라며, 진지하게 “설레고, 흥분되고, 어떻게든 뭔가 하고 싶어서 내장이 움찔거리는 느낌을 느껴본 것이 언제였냐”고 주인공에게 반문하는 요정의 대사는 메마른 현실에 지쳐가는 우리 모두에게 씁쓸한 공감과 함께 생각의 여지를 던져 준다. 생존을 위해, 다시 한 번 가슴 떨림을 느껴보기 위해서 일주일이라는 짧은 제한 시간 동안 나는 흐지부지 헤어진 전남친과의 재회를 계획한다. 과연, 발기부전에 걸린 그녀의 인생은 다시 심쿵하는 로맨스로 되살아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로맨스’ 태그가 대체 왜 걸린 걸까 궁금하겠지만, 죽음의 직전 도착한 문자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순간, 아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작가
그린레보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SF, 일반
감정 대리업 시대의 개막! 데이터 인력의 생애주기로 고찰하는 어느 시대의 초상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한 여자가 있었다. 시나리오 공모전에 번번이 탈락하면서도 열망을 쉬이 놓을 수 없던 그녀는 인력을 거래하는 신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일거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초대 받은 결혼식은 가지 않지만, 의뢰 받은 결혼식은 꼬박꼬박 참석하는 여자. 결혼식 하객 알바부터 택배를 대리 수령하는 일까지, 여자는 사람들이 의뢰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대신하면서 이 황당한 일과 황당한 사람들을 소재로 새로운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하루하루를 버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신 이별을 통보해달라는 역대급 일을 의뢰 받고 나간 곳에서 여자는 상대로 나온 남자에게 황당한 발언을 듣게 되는데……. 영화 ‘토탈 리콜’로 유명한 필립 K. 딕의 원작 단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서 제목을 착안했다고 밝힌 본 작품은, 감정의 측면에 보다 집중한 인류의 미래상을 예리한 상상력으로 적나라하게 펼쳐놓는다. 이미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굳이 직접 할 필요도 없는’ 크고 작은 노동 거래가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대이기에, 감정 대리업이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는 모습은 조금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곤란한 감정을 물질적 재화로 소비하고, 타인의 감정을 대리해 돈을 벌고, 나아가 공감과 연민을 거래하는 모습은 과연 어떨까?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 남자와 여자, 즉 ‘데이터 인력들’의 생애주기로 들여다 본 오지 않은 미래의 초상이 씁쓸하고도 날카롭게 다가온다.
작가
푼크툼
얼음 폭풍
호러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그 무한한 공포에 대하여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철저한 이방인으로서 갖은 차별을 받아 온 ‘진’. 그는 까무룩 잠에 들었다가 갑작스레 들이닥친 얼음 폭풍 때문에 컴컴해진 사방의 풍경을 보고 깜짝 놀란다. 설상가상으로 전날 밤 카지노에서 모든 재산을 날렸다고 고백한 뒤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는 남편 때문에 말도 못하게 심란한 처지였는데, 딸 ‘영미’는 학교에 홀로 등교해 있는 상황. 급히 차를 몰고 나선 거리는 온통 눈과 눈에 파묻힌 것들뿐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진과 영미는 아파트의 주민 대피소로 무사히 피신한다. 그러나 끝을 모르고 퍼붓는 눈 폭풍으로 대피소 생활이 장기화되자, 생존과 직결된 비상식량을 놓고 소수자와 이민자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얼음 폭풍」은 실제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황희 작가가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세 번째 작품집에 발표한 단편이다. 10년 전 지면에 공개된 작품임에도 트럼프 시대의 오늘을 보는 것처럼 이민자와 소수자를 배척하고 혐오하는 악랄한 천태만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인간의 통제 범주를 벗어난 자연 재해, 이주민으로서 겪어야 하는 생활고와 온갖 차별 등 온통 잿빛으로 가득한 「얼음 폭풍」의 서늘한 이야기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와도 무척 닮아 있다.
작가
공포문학 단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