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베스트 추천작
붉은 루프
호러, 판타지
“그 샌들, 벗지 않으면 죽게 될 거야. 살고 싶으면 당장 벗어.”
어느 날 우연히 주운 빨간 샌들이 내 인생을 바꿔놓는다. 빨간 샌들을 신은 내 사진을 SNS에 올리자,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어느 순간 주운 샌들이 자존감을 올려주는 삶의 활력소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그즈음, 누군가로부터 ‘샌들 벗지 않으면 죽게 될 거’라는 기괴한 경고를 듣게 되는데.
지난 편집장의 시선에서 소개된 「붉은 루프」는 과거 <환상특급>의 <죽은 여인의 구두> 편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어찌 보면 버려진 신발을 신었다가 저주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흔한 소재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꽤 흥미롭고 섬뜩한 결말을 선보인다.
사랑하고 사랑했던
SF
사랑하고 사랑했던 마음은 어디에
생성형 LLM에 자신의 사사로운 일과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시대가 되었다. 인공지능이 좀 더 친근한 물성을 띠게 된다면 어떨까? 「사랑하고 사랑했던」에서는 사용자의 생체 반응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취향에 맞는 문장을 창작해 내는 프로그램을 만든 스타트업 기업이 소위 ‘오타쿠’를 노린 제품 플라시로 히트를 친다. 말하자면 만화와 영화의 캐릭터, 또는 아이돌인 ‘최애’가 평평한 화면을 넘어 손바닥만 한 솜인형의 형태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단방향으로 쏟는 애정의 끝은, 예상되겠지만 대체로 좋지 않다. 버려진 솜인형들을 수리하는 엔지니어의 시각을 통해 쓸쓸한 근미래의 초상을 살펴보시라.
나는 나의 아버지를 만든다
SF
인공지능에 감정을 투사하는 극단을 엿보다
죽은 아버지의 자료를 학습한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기이한 감정의 진폭과 변화가 섬뜩한 감상을 선사하는 SF 단편 「나는 나의 아버지를 만든다」를 베스트 추천작으로 재선정하였다. 최근 오픈AI가 미국 국방부와의 군사적 파트너십 참여 입장을 밝히면서 인공지능의 활용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더욱 대두되고 있는 요즘, 사용자 편향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일에 대한 우려와 경각심을 일깨우면서도 부자 관계에서 비롯되는 애틋하고 미묘한 서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건 그냥 단순한 농담이었어요
추리/스릴러
슬픈 우리의 콩글리시에 대하여
당신은 ‘type’을 쓸 때와 ‘style’을 쓸 때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가? ‘cute’와 ‘adorable’의 사용은 어떤가? 어릴 때 영화를 보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은 적이 한번 있는데, ‘come’과 ‘go’의 사용에 관한 것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영어대로면 ‘가면 go/오면 come’ 이렇게 구별할 뿐이었는데, 영화 속에서 ‘나와 함께 가자’라는 대사가 “Come with me”라고 나왔던 것이다. 당시 내가 아는 ‘함께 가자’는 표현은 “Let’s go” 뿐이었다. 나중에 보니, “가는 중이야” 하는 표현도 “I’m going”이 아니라 “I’m coming”을 썼다.(물론 이 경우는 going이 틀렸다기보다는, coming을 쓸 일이 더 많다는 쪽이 옳겠다.) go와 come에 단순히 가다/오다는 뜻이 아니라 화자와 청자의 위치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한참 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참으로 슬픈 콩글리시의 한계였다.
외국인 유학생이 네이티브와 대화할 때 생길 법한 오해를 묘사한 교과서가 있다면 「그건 그냥 단순한 농담이었어요」를 참조해야 할 것 같다. 화자가 늘어놓는 수다를 홀린 듯이 듣다(읽다) 보면 ‘오호, 여기에 이런 맥락이?’ 하는 배움까지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처음에 나오던 가벼운 웃음은 점차 굳고, 유쾌함은 당혹스러운 불쾌감으로 바뀐다. 한편 억울해 보이고 한편 재치있어 보이던 화자의 입담은 급기야 범죄자의 자기변명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맥락 차이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길게 이어지는 바람에 다소 피곤하기는 하다는 것이 작품의 유일한 단점이다. 작중 등장하는 오해 에피소드들 중 몇은 불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작가가 선보이는 화술(話術)의 마술(魔術)은 학생들 사이에 벌어진 인종 차별과 그로 인한 다툼, 보복, 죽음이 뒤섞인 자극적인 세계로 손쉽게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작가가 명확한 결말을 내려 주지 않기 때문에, 오해는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정말 치밀하게 계획된 영리한 살인인지, 아니면 우연이 겹쳐서 벌어진 슬픈 비극인지 명확하게 알아낼 수가 없다. 과연 독자 배심원들은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