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베스트 추천작
구더기의 왕
SF, 호러
“세상에. 저건……. 너무나 아름다워. 이 노래는……”
화성 식민지인 돔-7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연락이 끊긴다. 화성 정부에 의해 파견된 민간군사기업의 용병들은 상황 파악을 위해 거침없이 돔 내부로 진입한다. 그곳은 이미 거대한 균사체와 버섯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생존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들 용병들도 하나둘 이상한 증세를 보이는데.
지난 편집장의 시선에 소개된 후 제7회 황금드래곤문학상 후보작에 오른 「구더기의 왕」은 호러 SF이다. ‘재난 상황의 외딴 기지에 용병들이 찾아가 위기에 처한다’는 진행 등은 익히 예상된 클리셰에서 벗어나진 않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여 흡인력을 높인다. 무엇보다도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결말이 만족스럽다.
기적(奇蹟)
SF, 호러
“저는 봤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커다란 발을요.”
단어의 중의적인 뜻을 활용해 눈앞에서 발생한 참사의 인과를 이해해 보고자 하는 화자의 고찰을 다룬 「기적(奇蹟)」을 베스트 추천작으로 재선정하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세상은 비명과 고통으로 가득한 뉴스로 도배되었고, 그 사건들 너머에 속 깊은 진의가 있다고 믿기엔 삶 자체가 날마다 벅차고 힘겹게만 느껴진다. 여러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삶의 실존적 의미를 고찰하게 된 주인공의 사고 흐름은, 언뜻 부조리라는 개념을 사유했던 알베르 카뮈가 떠오르기도 한다. “부조리를 의식하게 된 인간은 영원히 그것에 매인다.”는 카뮈의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짧지만 깊은 여운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불모의 계절
판타지, SF
낳음은 잡아먹기 위함인가, 잡아먹히기 위함인가
시도되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는 소재들이 있다. 불교(힌두교)와 SF의 결합 역시 그런 소재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인드라와 제석천, 석가 정도의 어휘야 익숙하지만 하리제와 반지가, 바라문 등의 용어까지 이르면 당황하는 사람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차근차근 그 어휘를 곱씹고 어렴풋이라도 신화를 되새겨 보면, SF적 상상력을 빈곳에 올바르게 직조해 낸 이 작품의 매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설을 읽기 전에 한 번, 소설을 읽으면서 한 번, 그리고 소설을 읽고 난 후에 한 번 원문의 신화를 읽고, 다시 소설을 읽으면 달라지는 이해의 해상도에 짜릿함을 느낄 것이다. 「불모의 계절」은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맛을 즐길 만한 SF 작품이다.
호러 심청
호러, 추리/스릴러
잔혹한 현대판 심청전
시각 장애인인 아버지를 위해 자기 희생하는 심청이의 이야기를 다룬 고전 소설 「심청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호러 심청」을 베스트 추천작으로 재선정하였다. 심청이의 결혼식 전날에 호화 선박에서 일어난 상해 및 살인 사건의 전사를 풀어가는 호러 스릴러 작품으로, 고전 소설 「심청전」에 나오는 심청의 아버지 캐릭터를 세속적이고 현실주의적으로 변주하여 장르적으로 풀어낸다. 끝내 심청이는 수중고혼이 되는 결심을 하지만 그 결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현대판 심청전을 한번 만나 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