假稱: 가멋

  • 장르: SF, 호러
  • 평점×72 | 분량: 94매 | 성향:
  • 소개: 한국 사상 최악의 대학교 살상 사건의 진상 더보기

다시 보는 베스트 추천작

결코 듣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저주와도 같은 개념…….

이 작품의 소재가 되었던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론에 대한 부분은 지난 추천평에서 언급했으니,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 ‘다름에 대한 공포’에 대해 말해 볼까 한다. “차이란 건 기묘한 겁니다. 알고 나면 어떻게 지금까지 그게 눈에 안 들어왔지 싶거든요. ……그리고 그 차이가 점차 뚜렷하게 인지되면서, 저는 어쩔 도리가 없는 ‘낯선 것에 대한 공포와 경계심’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과는 다른 것을 무작정 배척하려는 본능이 있죠.” 작중 등장하는 교수의 대사는 동질성을 가진 집단 속에 ‘외부인’이 들어오면 이를 혐오, 배척, 증오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제노포비아를 상기시킨다.

현대 사회에서는 외국인들이 주로 이 ‘외부인’으로 인식되어, 자신과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경계를 사고 온갖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당한다. 이는 대체로 과도한 인과 유출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주로 기존 구성원의 기득권을 앗아간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만약 인간종에게 있어서 생존 환경을 공유하며 제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상대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개인적으로는 한쪽 종이 제거된다고 해서 다른 한쪽의 지위가 확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야외 실험 결과가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생명 과학에서의 과거 경쟁 이론) 무엇보다, 어떤 미지의 경쟁 상대에 대한 공포와 경계심이 꼭 혐오나 증오로 즉각 이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종간 경쟁에서 발생하는 한쪽 종의 제거 행위에 무조건 면죄부를 발할 수는 없어 보인다.

바로 얼마 전에 출간되어 “한국 장르 소설의 미래를 엿보게 하는 쇼케이스”라며 언론의 호평을 들은 『한여름의 노이즈』에는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장르의, 각자 매우 결이 다른 총 6편의 황금드래곤 문학상 본심 진출작들이 모여 있다. 살인 사건의 범죄 차량으로 이용당한 차량 소유주의 이야기를 그린 「잔존의 신호」, 신이 만든 골렘이 자신의 사명과 존재 의미를 사유하는 「태양신의 골렘」,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도깨비 고개를 배경으로 한 「소원」, 20만원의 사기에서 출발해서 서로 속고 속이는 이야기 「신사기담」, 우연히 소원이 이루어지는 힘을 얻게 된 한 작가의 유쾌한 종말극 「케이준 라이스와 종말의 맛」까지, 브릿G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쟁쟁한 작품들 중에서도 「假稱:: 가멋」은 ‘장르 소설이 단순 오락을 넘어 철학적 질문을 던질 수 있음을 보여 준’, ‘가장 지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 영리한 스릴러 소설이 남긴 매력적인 화두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마주해야 할까. 제한된 자원과 생존이라는 명목하에 타자를 배척하고 지워 버리는 행위는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2025년 12월 2차 편집부 추천작

무지개는 과연 일곱 가지 색깔입니까

대학교 강의실에서 한 학생이 가위로 친구들을 공격해서 5명이 죽고 6명이 중상을 입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이 사망하여 사건의 동기조차 알 수 없던 중에 사건 발생 보름 후, 학생과 면담을 가졌던 교수가 형사에게 연락을 해 온다. 교수는 형사에게 자신의 발언을 비밀로 해 줄 것을 당부하며 소쉬르의 언어 이론과 우리의 인식 체계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우리가 어떤 기준과 도구로 세상을 인식하는가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 이 흥미진진한 단편을 좀 더 잘 이해하려면, 먼저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 이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한 후 그것에 이름이 붙었는가, 아니면 대상에 이름이 붙고 나자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게 되었는가? 소쉬르는 언어의 기호와 의미란 다른 기호와의 관계 그리고 차이를 통해 연속적인 현실을 우리가 분절하여 대상을 적극적으로 구성함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언어는 대상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능동적으로 구성해 내는 도구라고 보는데, 무슨 말인지 헷갈린다면 무지개를 한번 생각해 보자. 무지개가 몇 가지 색이냐 묻는다면 (적어도 한국어 문화권에서는) 어린아이조차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깔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빛은 연속 스펙트럼이고, 실제로는 경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언어는 이를 일곱까지 기준으로 나누어서 여기까지는 빨강, 저기서부터는 파랑이라는 식으로 표현하게 되고 우리는 이때부터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즉 연속성인 빛의 색을 언어를 통해 능동적으로 구분하여 정의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무지개를 본다면 자연스럽게 (실제로는 불분명할) 색의 경계를 느꼈다고(심지어 무지개의 색을 셀 수 있다고)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뉴턴 이후 무지개를 7색으로 분류한다는 것이 정설인데, 실제로 무지개를 5색이나 6색으로 표현하는 나라도 여전히 많다.(‘레인보우 식스’ 소설이나 게임도 언어권이 달랐다면 ‘레인보우 세븐’일 수도 있었을까?)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여기 현실을 갑자기 다르게 인식하게 된 사람이 있다. 그는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어떤 분명한 ‘차이’를 발견했고, 그로 인해 그 존재를 ███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어느 시인의 시처럼, 그가 그것에 이름을 붙이자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일 수가 없게 되었다. 결말까지 읽고 나면 과연 객체 간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이 해당 존재의 말살까지 이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지만, 현상의 인식을 주도하는 언어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만큼은 마지막까지 놀라운 흡인력을 발휘한다.

※ 본작은 제8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예심 및 출판 계약 검토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추천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타사 계약 등의 제안이 있을 경우, 브릿G의 1:1 문의를 통해 미리 알려주십시오. 별도의 작품 검토 등을 거쳐 회신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