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강의실에서 한 학생이 가위로 친구들을 공격해서 5명이 죽고 6명이 중상을 입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이 사망하여 사건의 동기조차 알 수 없던 중에 사건 발생 보름 후, 학생과 면담을 가졌던 교수가 형사에게 연락을 해 온다. 교수는 형사에게 자신의 발언을 비밀로 해 줄 것을 당부하며 소쉬르의 언어 이론과 우리의 인식 체계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우리가 어떤 기준과 도구로 세상을 인식하는가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 이 흥미진진한 단편을 좀 더 잘 이해하려면, 먼저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 이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한 후 그것에 이름이 붙었는가, 아니면 대상에 이름이 붙고 나자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게 되었는가? 소쉬르는 언어의 기호와 의미란 다른 기호와의 관계 그리고 차이를 통해 연속적인 현실을 우리가 분절하여 대상을 적극적으로 구성함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언어는 대상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능동적으로 구성해 내는 도구라고 보는데, 무슨 말인지 헷갈린다면 무지개를 한번 생각해 보자. 무지개가 몇 가지 색이냐 묻는다면 (적어도 한국어 문화권에서는) 어린아이조차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깔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빛은 연속 스펙트럼이고, 실제로는 경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언어는 이를 일곱까지 기준으로 나누어서 여기까지는 빨강, 저기서부터는 파랑이라는 식으로 표현하게 되고 우리는 이때부터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즉 연속성인 빛의 색을 언어를 통해 능동적으로 구분하여 정의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무지개를 본다면 자연스럽게 (실제로는 불분명할) 색의 경계를 느꼈다고(심지어 무지개의 색을 셀 수 있다고)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뉴턴 이후 무지개를 7색으로 분류한다는 것이 정설인데, 실제로 무지개를 5색이나 6색으로 표현하는 나라도 여전히 많다.(‘레인보우 식스’ 소설이나 게임도 언어권이 달랐다면 ‘레인보우 세븐’일 수도 있었을까?)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여기 현실을 갑자기 다르게 인식하게 된 사람이 있다. 그는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어떤 분명한 ‘차이’를 발견했고, 그로 인해 그 존재를 ███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어느 시인의 시처럼, 그가 그것에 이름을 붙이자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일 수가 없게 되었다. 결말까지 읽고 나면 과연 객체 간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이 해당 존재의 말살까지 이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지만, 현상의 인식을 주도하는 언어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만큼은 마지막까지 놀라운 흡인력을 발휘한다.
※ 본작은 제8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예심 및 출판 계약 검토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추천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타사 계약 등의 제안이 있을 경우, 브릿G의 1:1 문의를 통해 미리 알려주십시오. 별도의 작품 검토 등을 거쳐 회신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