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소재가 되었던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론에 대한 부분은 지난 추천평에서 언급했으니,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 ‘다름에 대한 공포’에 대해 말해 볼까 한다. “차이란 건 기묘한 겁니다. 알고 나면 어떻게 지금까지 그게 눈에 안 들어왔지 싶거든요. ……그리고 그 차이가 점차 뚜렷하게 인지되면서, 저는 어쩔 도리가 없는 ‘낯선 것에 대한 공포와 경계심’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과는 다른 것을 무작정 배척하려는 본능이 있죠.” 작중 등장하는 교수의 대사는 동질성을 가진 집단 속에 ‘외부인’이 들어오면 이를 혐오, 배척, 증오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제노포비아를 상기시킨다.
현대 사회에서는 외국인들이 주로 이 ‘외부인’으로 인식되어, 자신과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경계를 사고 온갖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당한다. 이는 대체로 과도한 인과 유출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주로 기존 구성원의 기득권을 앗아간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만약 인간종에게 있어서 생존 환경을 공유하며 제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상대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개인적으로는 한쪽 종이 제거된다고 해서 다른 한쪽의 지위가 확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야외 실험 결과가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생명 과학에서의 과거 경쟁 이론) 무엇보다, 어떤 미지의 경쟁 상대에 대한 공포와 경계심이 꼭 혐오나 증오로 즉각 이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종간 경쟁에서 발생하는 한쪽 종의 제거 행위에 무조건 면죄부를 발할 수는 없어 보인다.
바로 얼마 전에 출간되어 “한국 장르 소설의 미래를 엿보게 하는 쇼케이스”라며 언론의 호평을 들은 『한여름의 노이즈』에는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장르의, 각자 매우 결이 다른 총 6편의 황금드래곤 문학상 본심 진출작들이 모여 있다. 살인 사건의 범죄 차량으로 이용당한 차량 소유주의 이야기를 그린 「잔존의 신호」, 신이 만든 골렘이 자신의 사명과 존재 의미를 사유하는 「태양신의 골렘」,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도깨비 고개를 배경으로 한 「소원」, 20만원의 사기에서 출발해서 서로 속고 속이는 이야기 「신사기담」, 우연히 소원이 이루어지는 힘을 얻게 된 한 작가의 유쾌한 종말극 「케이준 라이스와 종말의 맛」까지, 브릿G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쟁쟁한 작품들 중에서도 「假稱:: 가멋」은 ‘장르 소설이 단순 오락을 넘어 철학적 질문을 던질 수 있음을 보여 준’, ‘가장 지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 영리한 스릴러 소설이 남긴 매력적인 화두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마주해야 할까. 제한된 자원과 생존이라는 명목하에 타자를 배척하고 지워 버리는 행위는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