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3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나는 노트북을 고치려다 감전 사고를 겪고 절대 잊지 못할 꿈을 꾸게 된다. 눈을 뜬 곳은 도자기 재질의 정사각형 타일 바닥이 격자무늬를 이루는 흠결 없이 흰 공간으로, 얼핏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사후세계의 풍경으로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법한 모습이다. 그곳에서 나는 테리 데이비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한 남자를 만나 어떤 계시를 받는다. 그러나 화상을 치료하고 검정고시와 대입 준비를 하게 되면서 이내 그 꿈에 대해 시들해지는데, 컴퓨터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해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어쩐지 그 꿈에 얽힌 기억들이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꿈을 통해 각인된 각종 명령어 코드를 상기한 채 끝없이 성경을 탐독한 끝에, 나는 비로소 세계의 본질과 형체를 파악해 나가는 깨달음을 얻는다.
『다이브』로 한국 장르소설에 묵직한 존재감을 남기며 데뷔한 이후 픽션과 논픽션, 평론까지 넘나들며 전천후로 활동하고 있는 단요 작가의 흥미로운 신학 SF 중편소설 「존재의 대연쇄」를 이번 주 브릿G 편집부 추천작으로 올린다.
작중에 소개되듯 테리 데이비스는 신의 계시를 받아 독자적 운영체제인 TempleOS를 만들어 ‘신에게 헌신한 프로그래머’라는 수식으로 불리는 실존 인물이다. ‘나’는 꿈에서 테리 데이비스로 보이는 이에게 계시를 받은 후 직접 성경 프로그래밍 시뮬레이터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컴퓨터 속 세계를 실행하고 업그레이드해 나간다. 성경을 프로그래밍의 언어 구조에 대입하고 구현된 세계를 특정 사양의 환경으로 해석하는 이야기는 복잡다단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려는 전조를 버스터미널과 영화관 같은 공간적 상징으로 드러내는 방식은 다차원적 체험을 선사한다. 성경과 신학에 무지한 입장에서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9월 13일은 이 작품이 따르는 일련의 흐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피조물의 저주이자 은혜, 사랑을 느끼는 존재로서의 통찰을 얻는 지적 여정은 끝내는 어떤 경외심을 들게 하는 분투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돌고 돌아 같은 메시지가 내포된 출력 결과를 확인하게 된 순간, 소설의 도입부를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생경한 감상이 침입한다. 모든 맥락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추천 타이틀에 인용한 다른 소설 속 문구처럼 ‘보는 사람이 보는 만큼 보이는 글’이기에, 이 글을 읽는 경험은 그 자체로 적극적인 오독의 불안을 내포하면서도 사고 범위를 전방위적으로 열어젖히는 새로운 감각을 선사할 것이다.
※ 본작은 제8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예심 및 출판 계약 검토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추천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타사 계약 등의 제안이 있을 경우, 브릿G의 1:1 문의를 통해 미리 알려주십시오. 별도의 작품 검토 등을 거쳐 회신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