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 수리 기사인 재민은 오늘도 고객의 의뢰를 받고 고장 난 세탁기를 점검하러 간다. 그런데 전날부터 반응이 없다고 하던 세탁기는 재민이 고객의 집 안에 들어간 순간 멀쩡히 작동한다. 척 봐도 억지로 수명을 연장하며 사용한 티가 역력하지만, 하나하나 점검해 보니 별다른 이상은 없다. 연식이 오래되다 보니 미세한 진동에 의한 일시적 접촉 불량일지도 몰랐다. 기계에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결론 내린 재민은 연이은 다른 의뢰에 응하러 간다. 그리고 돌아와서 업무 기록을 정리하던 중에 문득 깨닫는다. ‘이상 없음’이란 기록이 90일째 이어지고 있음을.
이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제법 있지 않을까? 잘 쓰던 기계가 말썽을 부려 A/S를 신청했더니, 꼭 수리 기사가 왔을 때만 멀쩡히 작동해서 괜히 머쓱해지는 경우 말이다. 그럴 때면 기계가 장난을 치는 건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들기도 한다. 이 단편은 매일같이 기계를 살피는 수리 기사의 시점에서 사실 ‘이상’이 없는 게 아니라, 그것이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임을 깨닫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AI도, 특별한 프로그램도 없이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탄 기계들이 사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으스스한 감각을 선사한다.
※ 본작은 제8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예심 및 출판 계약 검토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추천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타사 계약 등의 제안이 있을 경우, 브릿G의 1:1 문의를 통해 미리 알려주십시오. 별도의 작품 검토 등을 거쳐 회신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