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베스트 추천작

엄마와 엄마의 프린트
SF, 추리/스릴러
AI가 되살려낸 고인의 목소리, 우리는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AI 테마파크’라고 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일반적으로는 AI 콘텐츠 체험관이나 뭐 로봇 전시 같은 것이 떠오르지 않을까? 얼마 전 놀라운 기사를 보았는데, 국내 최초 AI 테마파크가 ‘추모 공원’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국내 최초’ 타이틀을 일단 선점하고 본 기업의 센스에 박수를.) 토지 개발 회사와 로봇 기업, 사이버 보안 회사의 합작인 이 AI 테마파크(a.k.a. 미래형 공동묘지)의 핵심은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 봉안 시스템’과 유족이 고인과 시공간을 초월해 만날 수 있는 ‘가상 인공지능 인터랙션 환경’ 제공에 있다. 아무튼 AI 테마파크의 개념은 이렇다. 설명에 따르면 유골함은 지하에 안치된다. 유족들의 방문 요청이 있으면 시간에 맞춰 로봇이 유골함을 옮긴다. 유족들은 AI 기술이 적용된 추모 공간에서 고인을 기리게 된다. AI가 세상을 떠난 사람의 목소리와 표정, 말투까지 되살리는 시대가 이토록 성큼 다가왔다. 이미 생전의 사진과 음성, 대화 기록을 학습해 고인과 실제로 대화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한 스타트업 회사가 60만원에 고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재현한 5분짜리 영상을 제작해 주고 있는데, 이 회사의 주요 고객은 4~50대로 부모를 잃은 자녀들이 마지막 인사를 다시 듣고 싶다는 주 수요층인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기술이 과연 ‘애도를 돕는 기술’인지 ‘죽음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기술’인지를 둘러싼 논쟁도 커지고 있다. 누군가는 마지막 인사를 전할 기회를 얻었다며 위로를 이야기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AI가 만들어낸 한마디가 남은 사람의 삶을 뒤흔들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은 사람의 말을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목소리가 감춰진 진실을 꺼내놓는다면? 이 질문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이 바로 「엄마와 엄마의 프린트」다. AI로 고인의 인격을 복원해 대화를 나누는 ‘프린트’ 사업을 소재로 한 이 작품에서 ‘나’는 어머니의 장례를 마친 뒤 생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격 프린트’를 전달받는다. 처음에는 엄마를 흉내 내는 프로그램일 뿐이라 생각하지만, 프린트는 주인공조차 몰랐던 가족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꺼내놓으며 점점 실제 어머니와 다를 바 없는 존재처럼 다가온다. 그러던 어느 날, 자살로 알려졌던 삼촌이 사실은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내면서 작품은 순식간에 가족 드라마에서 미스터리 스릴러로 변모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의 심리 변화다. AI라는 사실에 섬뜩함을 느끼다가도, 너무나 어머니다운 말과 태도에 위안을 얻고, 어느새 살아 있는 엄마와 대화하듯 프린트를 찾게 되는 과정이 무척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AI가 들려주는 기억은 어디까지가 데이터이고 어디부터가 진실일까. 아무런 증거도 없이 단정적으로 던져지는 그 한마디를 ‘나’는 믿을 수 있을까?
작가
해리쓴
태양계의 증인
SF
그의 존재함은 곧 신의 존재함을 증거한다고 한다.
은하계의 수많은 종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양계의 증인이 호출된다. 증인의 종족이 겪은 사건은 ‘우주의 경이를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자, ‘신의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과연 태양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작품은 태양계가 겪은 사건을 ‘세 번 다시 없을 비극’이라 규정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이영도의 『피를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말이다. “두 번째가 있을 때만 첫 번째가 만들어지는 거야. 두 번째는 그렇게 위험한 거지. 첫 번째와 세 번째를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이 문장을 마음에 둔 채로, 작품의 마지막 문장을 곱씹고 있노라면, 소설이 남기는 질문의 여운이 더욱 짙어진다. 태양계의 주민들은 과연 앞으로 닥쳐올 비극을 피할 수 있을까. 아니면 끝없는 순환 속에서, 같은 운명을 되풀이하게 될까. 지난 1월, 편집부 추천작에 오른 태양계의 증인은 놀라운 핍진성과 힘있는 이야기의 흐름, 그리고 단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러니를 고루 갖춘 작품이다. 더불어 한참 미래를 배경으로 하였으나, 지금, 현실의 문제를 천착해야 한다는 SF의 본질에 그 무엇보다 충실하다. 질문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답변을 제시하지만, 그 답변을 받은 독자들은 더 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이 작품을 읽지 않는 것이 인생의 손해가 될 수 있다고 감히 주장하며 이번 달 베스트 추천작으로 올린다.
작가
윤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