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목의 여왕과 검은 관.

  • 장르: 판타지 | 태그: #브로파인 #브로파인의모험
  • 분량: 25회, 220매
  • 소개: 왕을 섬기지 않는 베텐 가 자제 파비엥이 계모인 사만다가 생모 파엔나의 물건들을 모두 불태우려하자 유품 목걸이만을 빼앗기지 않으려 버려진 성당 로텐으로 도망을 가 숨겨두었으나. 파... 더보기

(구) 브로파인의 모험 – 11

21년 2월

등불을 든 브로파인이 아우테라스 신전 뒤 방향 내리막인 골목길에서 흙더미가 있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묘지기가 파놓은 땅굴로 갔다. 묘지기가 등에 멘 관에 걸린 등불들의 빛이 브로파인과 티시아에게 보였다. 브로파인이 땅굴 안으로 들어가고 땅에서 뼈가 튀어나왔다.

“마차에 있는 둘은 괜찮을 거네. 거기 상자에 담긴 물건이 모두 필요한 건 아니니까 말이지. 묘지기, 자네 어디까지 간 건가. 길게도 팠군. 짧은 시간에 말이야.”

브로파인이 묘지기 뒤까지 와서 그녀가 멘 관에 달린 등불 하나를 티시아에게 건네었다. 묘지기가 삽으로 판 흙을 끌고 가던 자루에 담는데. 삽끝이 벽돌에 부딪혔다. 묘지기는 삽을 관에 걸고 한쪽 끝이 납작한 갈고리 모양을 한 곡괭이를 꺼냈다. 브로파인에게도 주고, 그녀가 곡괭이로 그와 같이 벽돌을 깼다.

묘지기는 곡괭이로 깨트린 벽돌을 치워내고 으스러진 가루는 손에 쥐어 자루에 넣었다.

“망치를 쓰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소. 전에 귀족가의 무덤을 파다가 (오래된 탓도 있소.) 벽을 부수려고 망치를 썼는데 잘못 건드려서 흙에 깔린 적이 있었지.”

그녀는 일행이 지나갈 크기를 만들려 곡괭이의 납작한 부분으로 시멘트가 발라진 벽돌 사이를 쳐서 떼어냈다.

“숙련된 도굴꾼이 된 지금이야 깔릴 일은 없소만. 망치가 없어서 말이지. 안 쓰는 편이기는 했소. 무식하게 부수는 것 못지않게, 내 실력이 있어 길 여는 게 느리지 않소.”

그녀가 벽을 더듬다가 밀자 일부 벽돌들이 붙은 채 앞으로 기울어졌다. 신전 지하로 가는 길이 열렸다.

늑대 형상을 한 석상이 보였다. 사슴, 노루, 사슴벌레, 토끼, 사슴풍뎅이. 붕대로 가려진 두 눈 아래로 붉은 줄을 그어놓은 여자가 서 있었다. 책과 검을 든 그녀는 일행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밖에서는 싸움이 일어나는데, 안은 조용했다.

“가만히 두게. 신전 지하에 있는 물건들을 관리하는 자일세. 우리가 유물을 건들지 않으면, 내버려 둘 거네. 그렇다면 우리가 보관실에 와 있다는 소리군. 마법으로 썩지 않게 둔 시신도 있네. 자네한테 말하는 걸세. 손대지 말라는 거지, 우릴 위험에 빠트릴 건가.”

길에 횃불과 무기를 든 자들이 서 있었다. 마차가 서고 엘리스가 검을 쥐자 사내들 사이로 파스칼이 걸어 나왔다.

“내 밑에서 일하는 이들이오. 당신을 관에 가두려고 온 게 아니오.”

파스칼이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 아직 내가 필요하니까. 고위대사제 자일로가 깡패들을 부리다니 의외네.”

“깡패는 아니올시다. 약속대로 물건들을 훔쳐왔군, 모두. 그리고 의외인건 당신이 아닌가 싶소.”

자일로 파스칼에게 사내가 책을 주었다.

“두플리 엘리스가 시집이라니. 당신이 말한 레빈도르가 쓴 ‘그대가 날 부르니’요. 그대가 날 부르니, 낭만적이군. 시를 쓴 사람이 레빈도르 가문 사람인 줄 알았는데 벨롱그라오. 책방 주인이 알려줬소.”

“책 빼고 다 판다는 이상한 책방에서 가져온 거가 맞네. 너희 교단하고 반역자 에레보른이 싸우는 중인데, 그러는 중에 교단을 네 뜻에 따라 움직이게 하려고, 힘을 빼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네. 내가 보기에는 에레보른과 담판을 짓고 집안싸움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혼란 속에 질서가 서 있다는 말이 있소. 남부 왕국의 옛 왕이 한 말이지. 에레보른과 다투고 있어서, 우리가 유리한 상황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내 뜻에 반하는 자들 수가 많아 도시를 장악하는데 힘이 부쳤을 테요. 우리와 싸워야 할 적들이 에레보른에게 간 게지.

오늘 밤이 지나면, 도시 로플린은 우리 수중에 들어올 것이오.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른 뒤부터는 교단의 신을 믿는 자들은 선택을 해야 할 테요. 필요한 것만을 남기고 낡아 빠진 부산물들을 치워내어 새로이 갈 방향을 잡아 몸을 사리지만 않을 것이니. 검은 교단이 생겨난 서쪽에서 했듯, 교단의 모습을 드러낼 거요. 동참하지 않으면 역사가 무슨 결말이 있을지 말해줄 것이오. 기회가 주어졌는데, 져버린 자들이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말이오.”

자일로 파스칼의 부하들이 마차의 물건을 확인했다.

“소식통에 듣자하니, 당신을 찾는 사람들이 있소. 내가 시간이 없어서 잡초구덩이 피굴들의 결투장에서 본 아이를 내버려 두었소. 그 아이 뒤를 따라가게 했더니, 세상일에 참견하지 못해 안달이 난 요술쟁이 브로파인이 나오더군. 한때 그는 북쪽 섬 왕국 체드렐터의 기사였소. 왕가의 계승 전쟁에 목숨을 잃을 뻔했지.

그의 형인 브로나인과 함께 대성당 일원이 되었다가, 자신이 기사로 있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는지. 관두고 잠적했다가, 먼 옛날 멸망한 포가튼 왕국을 잊지 못하고 재건하려 한 군주를 막는데 등장했지. 군주 뮬레튼은 마지막 지배자였지만, 블랙라운이라 불리는 왕관 때문에 저주로 왕실을 잃고 영생을 얻어 불사가 되었소.

저주 받은 힘에 위세를 되찾자 모두들 세계를 다스린 포가튼 왕국이 돌아올 거라 여겼소. 그래서 포가튼 재건 사태를 막은 게 파급력이 컸다오. 북쪽, 동쪽, 서쪽, 남쪽으로 그의 이야기가 퍼져나갔지.

이미 죽어버린 역사가와 사람들은 뮬레튼이 마지막에 외친 말을 기억했소. ‘요술쟁이 브로파인’ 이것이 브로파인을 대표하는 호칭이 되었지. 요술쟁이라 말하면 많은 인물들 중 브로파인이 걸어 나올 거요.

의외인 것이라면, 세상 이변에 브로파인이 서 있던 건. 그가 정의감이 넘쳐서 뛰어든 게 아니었소. 운명, 그것 보다는 사건이 브로파인을 끌어당겼지. 사건의 소용돌이가 커져가며 브로파인에게 닿은 것이오. 물이 들어와 그의 발목을 잠근 게요.

뒤늦게 온 우리는 발목이 젖은 브로파인이 사건에서 헤어 나와 물을 흘리며 가는 걸 보고, 브로파인이 발을 들여 일을 해결한 것처럼 보인 게지. 브로파인이 당신 뒤를 따라다니는 걸. 당신은 알고 있었소, 그때가 언제인지 난 알 수 없소만. 오늘 만났었겠지.”

“네 말은. 내가 요술쟁이를 끌어들였다는 말이야?”

엘리스가 손잡이 끝이 생쥐해골 문양이 새겨진 검으로 상자에 담긴 목걸이 줄을 걸어 꺼내었다.

“브로파인이 기다렸다면 그랬겠지. 그가 일을 겪으며 무슨 생각을 했겠소? 지금보다 이전 사건이 터지는 걸 기다릴 바에. 뛰어들어서 커지기 전에 막으려 하는 게지.

당신은 검은 교단을 돕기 전부터, 해가 되는 일을 해왔소. 당신의 가문을 몰락으로 이끌었지. 검은 교단도 행실이 바른 건 아니오, 당신 보다 사람들을 많이 죽였소만. 무게만 다를 뿐이지, 교단과 당신이 가진 죄는 안고 가야 할 테요.

검은 교단은 회개할 생각이 없고, 최후가 다가오는 날까지 교단 내에 속한 개인이 어둠을 등지더라도 악한 본성은 어디가지 않을 거요. 교단은 죽음을 가져올, 신을 위해 봉사했지. 대성당처럼 누군가를 구원하고 올바른 길로 이끌고자 세워진 게 아니오. 나로 인해서 교단이 갈라져 싸우고 있는데다, 누가 이기든 우리의 계획을 저지할 자들이 나타나 실패할 거요. 그러나 얻는 것도 없잖아 있겠지.

생각해보시오. 지금은 아니나 나중에 날 죽이려 달려들 사람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내버려둬서 좋을 게 뭐가 있겠소. 그것도 내가 죽일 기회가 넘쳐나는데 말이지. 우리의 신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면, 원치 않아도 막아야 되고. 그러지 않음 죽음만이 있을 거요. 허나 차이점이 있다면 브로파인은 교단을 막으러 다녀도, 해결해야 할 다른 일이 있으니. 검은 교단을 계속 주시하고 있지만은 않소. 그런데 당신은 다르더군. 당신 가문, 두플리 가의 옛 영지 크로치포크에 브로파인이 찾아간 건 알고 있소? 모르는 눈치군.

지하무덤 토리스에서 교단이 관에 가둔 당신을 대성당에서 데려갔었지. 거기서 안전하게 둘 수 있었을 텐데. 뭘 하던 놈인지 몰라도 좀도둑한테 관을 훔쳐내라 시켰지. 그 때문에 당신이 관에서 나와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었소. 브로파인이 걸리는 게 있어서, 당신을 빼왔다는 말이오. 나야 내막은 모르겠소만, 우리 약속을 했지 않소. 우린 협력 관계니, 거래가 끝나면 묻지 않고 난 당신을 내버려 둘 거요. 당신이 무슨 짓을 벌이는데 교단과 나에게 해가 가지 않는다면.”

자일로가 엘리스가 든 검 날에 걸린 목걸이를 가져갔다.

“너희 신이 거짓말쟁이는 싫어하나 봐?”

엘리스가 검을 자일로 쪽으로 돌렸다.

“교단은 신을 위해 움직이지, 혼자만의 힘을 얻으려 행동하는 게 아니오. 다는 아니지만, 거짓을 내세워 신을 교만하려 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난 교단에게 필요한 게 아님, 하지 않소. 그리고 이미 한 약속은 당신과 합의하에 조건을 바꿀 수는 있겠지. 그게 아니라면 이행할 거요.”

파스칼 자일로의 부하들이 마차에 실은 상자를 열어보고, 짐을 옮겼다. 그들이 손을 대지 않았으나, 파일이 빠져나가면서 열린 상자를 발견했다. 부하가 확인은 하나, 엘리스가 마차를 끌고 오며 흔들려 엎어진 것이라 여겼다.

파일은 함께 다니게 된 벨롱그 레드가드와 가면서, 상자에서 챙긴 양피지 두루마리를 가방에 우겨넣었다. 잉크가 닿지 않은 빈 양피지로 그녀가 나중에 쓰려 가져왔다.

자일로가 있는 곳에서 멀어지나, 주변에 그의 부하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죽은 경비병에게서 얻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경비병으로 위장할 부하들이 내일 아침 해가 밝으면, 부하들이 죽인 경비병을 대신해 빈자리에 서게 될 것이었다. 로플란 도시 내에 검은 교단 세력이 자일로 아래에 들어오면, 다음으로 안에서 일어난 일이 소문으로 퍼져나가지 않게 손을 쓰고. 아팔라가 제국 궁전에 전할지 모르는 서한을 도시 안에서 차단한다. 시장의 딸을 인질로 이용해 도시 뿐 아니라, 시 전체를 통제할 것이다.

파일은 거사를 준비해야 해 한곳에 있지 않고 움직이는 부하들을 피했다. 그들로부터 떨어져 화톳불을 중심으로 모인, 머리에 사슴의 머리 가죽을 쓴 자들이 보였다. 사슴 머리 가죽이 머리에 쓴 것을 벗었고, 파일은 가죽 머리라 불리기도 하는 자 중 하나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파일은 천막 근처 심장이 없는 시신들을 실은 수레에 숨어서 바라보았다. 천막 뒤에서 떠드는 소리에 파일은 몸을 움츠렸다.

수레를 가지러 부하들이 오자, 파일은 천막 뒤에 보이는 그림자에. 갈 길이 없음을 알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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