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쓴다는 것은 역사를 다시 쓴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말이 있지요. 초창기의 근대소설들이 정치 팸플릿에서 시작되었으며 국가나 종교와도 같은 권력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이야기’라는 형식을 취했다는 학자들의 결론에 대해 여기서 우리가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이전이든 이후든 많은 소설들이 동 시대 사람들이 열망하던 어떤 꿈과 희망, 이상과 열정, 이 구차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강렬한 욕망에 의해 씌여졌고, 또 앞으로도 씌여질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겠지요.
다만, 그러한 동기만이 너무 앞선 소설들이 가끔 등장하기도 합니다. 선량한 주인공이 등장해 사회의 거악(巨惡)을 통쾌하게 깨부수거나, 아니면 주인공이 겪는 고통만을 한없이 보여주려는 소설들이 있지요. 전자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로망스 문학에, 후자는 에밀 졸라를 위시한 일련의 리얼리즘 경향에 얼마간 빚지고 있을 겁니다. 그런 전통이 분명히 있고, 그에 따른 관습과 그것에 충실하려는 일련의 독자군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결국 작가의 욕심이 너무 앞서나가다보니 이야기의 완성도 자체가 끝내 무너져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거겠지요. 전자는 그저 일련의 나열된 자극들만으로, 후자는 그저 고통만으로 가득찬 박제된 전시물로 몰락해버리고 마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누구나 그 때문에 싫어하게 된 소설 제목 한두 개쯤은 댈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이야기할 ⟪아마존 몰리⟫에서 눈여겨볼 만한 첫 번째 지점은 이 이야기가 먼저 소설 속의 서술자가 어떤 사람이고, 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내놓고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서술자는 여성이고, 대학원을 다녔으며, 현재는 과학잡지의 인터뷰 전문 기자인데, 과학자들 중에서 종종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그 점에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시작입니다.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발전해나갈지를 미리 보여주면서도 그 이야기를 어떤 방향으로 서술하게 될 지 독자에게 미리 알려주고 시작하죠. 그에 따라 독자는 이 서술자의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지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소설이란 결국 거대한 정보덩어리고, 해석의 틀이 주어지지 않은 정보란 아무 의미없는 소음의 집합체죠. 그 지점을 미리 메꿔주고 있다는 점이 훌륭합니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커져나간 이야기들이란, 결국 작가 혼자만 아는 이야기죠. 그걸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소설을 쓰게 되면…. 곤란하죠. 그런 소설들은.
여하간, 소설의 서술자는 결국 문제의 인물을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되고 인터뷰이에게서 그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에 대한 전모를 듣게 됩니다. 이때 대화 자체를 그대로 풀어서 쓰지 않고 서술자의 ‘편집’과 ‘주석’으로 잘라냈다는 부분에 주목해주세요. 그 부분이 눈여겨볼 만한 두 번째 지점입니다. 많은 경우, 이런 장면은 서술자가 직접 개입하지 않고 대상의 말을 긴 독백식으로 재구성하는 게 작가 입장에서 쓰기 편하고 독자 입장에서도 받아들이기도 편하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이것은 소설의 테마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런 구조가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사이의 특이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중간에 시각적 묘사를 거의 넣지 않았다는 것도 여기에 한몫하죠. 작가가 대화 밖에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시각적인 묘사 – 예를 들어, ‘그의 부릅쥔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라던가 – 를 넣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경우 앞서 말한 긴장감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기죠. 그런 묘사를 넣는 동안, 소설 속의 시간은 ‘그냥 흘러가고 있으니까’요. ⟪아마존 몰리⟫에서 그런 경우가 있다면, 이야기 안에서 어떤 전환점이 생길 때 뿐입니다. 대개 작가란 대체로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한 톨도 빠짐없이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고, 그러다보니 낭비되는 문장을 붙이기 일쑤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경제적이기까지 한 문장 선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말에서, 앞서 깔아놓은 것들이 모두 하나로 이어질 때의 충격. 정서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대단히 만족스러운 결말입니다. 단편소설이란 어차피 분량에 일정한 한계가 있고, 그 분량 안에서 스스로 말하고자 하는 테마과 소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란 쉽지 않은 부분이 있죠. 하지만 이 소설은 그것을 제대로 해냅니다. 앞서 말한 정보를 해석할 틀을 미리 던져두고, 이야기를 합리적이면서도 경제적으로 나누고 합쳐서 ‘페미니즘’이라는 어려운 테마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죠. 그야말로 어떤 사람에게도 명확히 전달될 수 있을 정도로요. 글 앞머리에 ‘작가의 동기가 너무 앞서서 이야기 완성도를 스스로 떨어뜨려 버리는 소설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 소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짧지만 강렬하고, 완성도도 매우 높죠. 게다가 스릴러물로도, SF물로도 제대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킹이나 호시 신이치 같은 당대의 유명 작가들의 단편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아요. 이정도로 완성도 높은 단편소설을 읽게 되는 건 평생 거의 없는 일이죠. 흔히 말하는 ‘장르물’을 떠나서라도, 많은 작가들에게 어떤 귀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마존 몰리⟫의 작가가 쓰게 될 다음 소설을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분명 그 소설은 이 소설보다 더욱 크고 야심으로 가득 찬 소설이겠죠. 그때는 저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소설에 주목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