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tchman must have a captain.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 나오는 플라잉 더치맨이라는 배가 있습니다. 악명 높은 유령선인 더치맨은 선장을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작중에선 데비 존스라는 해적이 망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아 저주를 받게 됐었고, 이후 윌 터너가 그 역할을 인계 받습니다.(다행히 윌 터너는 성실히 임무를 수행한 걸로 추측됩니다) 온전히 들어맞는 상황은 아니지만, 윌 터너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엘리자베스), 김민지도 마찬가지였으니(로씨), 더치맨의 선장이 된 윌 터너나 엘라단이 되기로 결심한 김민지나 어느 정도 겹쳐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닙니다. 물론 일일이 비교하기 시작하면 제가 언급한 부분 말고 맞는 구석이 있을지나 모르겠지만…… 하여튼, 제가 주목한 건 김민지의 선택이었습니다. 사실 이 단편에서 제일 큰 반전이나 제일 중요한 결심은 “내가 엘라단 위에 서겠다.”(아님)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김민지는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걸까요? 하나씩 되짚어보자면, 결심의 배경에는 자기가 사랑하는 로씨가 행복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로씨가 행복해지지 않았을까요? 시스템이 없는 로씨는 자립할 수 있는 한 명의 인격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로씨는 그런 인격체가 아니었나요? 엘라단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으로서 로씨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로씨가 행복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엘라단, 엘라단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왜 필요할까요? 그것이 로씨의 존재 이유이자 존재 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민지는 왜 시스템이 되기로 했죠? 로씨를 사랑했으니까요. 로씨는 시스템의 부속품에 불과했는데도요? 저로서는 감히 짐작하기도, 이해하기도, 공감하기도 힘들지만…… 제가 그렇다고 해서 김민지가 잘못됐다거나 하면 안 되는 것이죠. 그건 인과관계를 왜곡하는 일입니다. 뒤집어서 생각해야겠죠. 김민지는 그런 로씨였을지라도 사랑했기에 시스템이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는 작중에서 김민지가 로씨를 향한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김민지는 로씨에게 ‘자유’를 줬다며, 그녀를 ‘해방’시켰다고 말하며 기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로씨와 엘라단의 침몰을 야기한다는 걸 깨닫습니다. 김민지는 그제야 로씨가 구속된 존재가 아닌, 부속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죠. 그리고 깨닫자마자 메인프레임으로 달려가 자신이 엘라단이 되고자 하죠. 핵심은 ‘바로’입니다. 김민지가 로씨를 붙들고 있던 건 로씨가 ‘구속된 존재’로써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로씨의 맹목을 자신에게 돌릴 수 없냐고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로씨를 향한 오해가 풀렸습니다. 대개 ‘인격체’와 ‘비인격체’를 나누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로씨를 한 명의 자립된 존재로 보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자신이 좋아했던 존재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여겼던 존재가 알고보니 미연시 속 인물에 가까운, 부속품에 불과했다면 어떨까요? 그런데도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랑이 진심일 리 없었는데도? 여기서 김민지가 보인 ‘바로’는 의미심장한 태도입니다. 로씨가 부속품에 불과하단 사실을 깨닫자마자 로씨에게 다시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자신이 엘라단이 되기로 합니다. 낭만적으로 바라보면 김민지의 희생과 사랑은 범인(凡人)의 것을 뛰어넘는다고도 할 수 있겠죠. 김민지의 희생은 비단 로씨 하나에게만 적용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봅시다. 김민지의 선택이 가지는 본질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전제를 먼저 깔고보자는 얘기입니다. 즉, ‘구속된 존재’를 해방시키는 것이나, ‘부속품’에게 동력을 제공하는 일. 두 가지가 김민지에겐 차이가 없던 겁니다. 그저 ‘오해’를 하고 있었기에 잠깐 헤맸을 뿐이죠. 오해가 풀리자마자 일말의 고민도 없이 나서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럴싸해집니다. 그렇다면 김민지의 선택이 가지는 본질은 무엇일까요? 무엇이기에 존재의 인격과 존엄성의 치열한 고민보다 우선했던 걸까요? 감히 추측하건대, 일방적인 사랑의 투사(投射)가 아닐까요? 이에 대한 근거는 ‘오해’를 풀기 직전에 로씨에게 한 김민지의 대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날 봐. 내 눈앞에 있는 날 보란 말이야. 너만을, 다시 너와 함께 목고동을 부르고 바다를 바라볼 시간만을 위해 살고 있잖아. 너도 그럴 수는 없을까? 나를 위해 살아주면 안 될까?” ‘구속된 존재’로 로씨를 바라볼 때 김민지가 내놓은 말은 ‘너 자신을 위해 살 수 있어!’라든지, ‘네 자유를 찾아! 내가 곁에서 도와줄게!’가 아닙니다. 내가 너를 위해 살고 있는데 너도 날 위해 살아주면 안 되냐는 말이죠. 김민지의 중대한 결정을 낭만적인 사랑으로 포장하기엔 이 대사가 내포한 섬뜩한 인식은 조금 께름칙하기까지 합니다. 그런즉, 김민지가 바라던 건 로씨의 존엄이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김민지가 바라던 건 자기가 기억하던 로씨,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에게 보여준 로씨의 모습입니다. 그걸 재현하길 바랄 뿐입니다. 그걸 재현하기 위해 로씨의 맹목을 자신에게 돌리려고 했었고, 그런 방식으로 로씨가 재현될 리 없단 걸 깨닫자 망설임없이 메인프레임으로 향한 겁니다. 그럼 다시 정리해봅시다. 위에서 “김민지는 그런 로씨였을지라도 사랑했기에 시스템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했었는데, 이면에 존재하는 김민지의 ‘또다른 가능성’을 들춘 지금, 이 말은 얼마나 유효할까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미묘하게 비껴나간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정정해볼까요? 김민지는 자기가 겪은 로씨(그리고 엘라단)를 재현하기 위해 시스템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사랑을 끼워넣을 수 있을까요? 사랑보단 오히려 광적인 집착에 가깝게 보이진 않나요? 갑자기 김민지가 조금 소름 끼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합니다. 진짜 소름은 어쩌면 김민지에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민지는 엘라단에 있은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로씨와 엘라단과의 인연은 굉장히 짧습니다. 그 말은, 그 짧은 시간의 만남만으로 김민지가 로씨와 엘라단을 위해 모든 걸 바쳐버린 겁니다. 자, 그럼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죠. The Dutchman must have a captain. 우리는 이 문장을 이렇게 바꿔볼 수 있습니다. The Eladan must have a captain. 이 작품의 태그는 SF, 로맨스가 아닙니다. SF, 호러입니다. 왜 호러일까요? 그 답은 김민지가 아니라 엘라단이 알고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