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의 시간이 “어떤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청록의 시간이 “어떤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저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습니다.
AI의 폭주를 막기 위해 기나긴 시간 여행을 거쳐 돌아오는 이야기
청록의 시간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저는 위와 같이 요약할 겁니다.
그럼 다시 “어떤 소설”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와서, 이런 이야기를 다룬 ‘청록의 시간’이란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 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중심이 부재한 극강의 미괄식 큐레이터 소설
이하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장단점을 다루는 내용입니다.
완결까지 다 읽고 나서 꼽을 수 있는 장점은 한 가지입니다. 그건 바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설계된 채 탈선하지 않는 이야기의 유지력입니다. 1부부터 4부까지, 각 부는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리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1부에선 청록의 시간을 언급하며 유안을 미래로 보내고, 미래로 간 유안은 2부에 나오면서 접점이 되어줍니다. 또한 1부에서 어물쩍 넘어간 마고의 행방은 최종장인 4부에 가서 밝혀지죠. 2부는 1부의 유안이 넘어오고, 재호가 받은 수술은 3부의 근원이자 배경이 되며, 재호가 정신병을 앓게 된 원인인 진주는 4부에 가서 마고의 다른 모습이었단 게 밝혀집니다. 3부는 4부의 이야기의 발단이자 배경으로서 세계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고, 2부의 재호가 넘어옵니다. 시기적으로 3부는 4부 직전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4부는 1부부터 3부까지 뿌려놓은 미회수 떡밥들을 모조리 회수하면서 모든 이야기의 매듭을 짓습니다. 이야기 자체의 퀄리티나 매듭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서, 1부부터 4부의 큰 틀로 볼 때 각 이야기가 맞물리지 않거나, 탈선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게 4부를 위한 빌드업이라고 생각하면 1부부터 3부까지 이해하기 쉽습니다. 장편소설에서 전체적인 큰 틀을 정해두고 그 틀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채 구조를 유지하는 건 특기할 만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시간여행이란 소재는 플롯(전개 순서)과 줄거리(시간 순서)가 일치하지 않아 꼬이기 십상인데, 청록의 시간에선 ‘꼬였다’는 인상은 전혀 받지 못했으니까요. 구성이 좋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이러한 유지력이 발휘되었기에 4부의 클라이막스가 보이는 연출은 힘이 실립니다. 처형 당한 줄 알았던 재호가 다시 나타나는 것이나, 천마재호가 무쌍을 찍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문제점은 크게 3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짚고 넘어가봅시다. 첫째, 지나친 설명 설명이 너무 많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은 설명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소설 분량의 절반이 설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설명이 많습니다. 창작에는 ‘설명하기’와 ‘보여주기’라는 기법이 있습니다. 어떤 특정 개념이나 지식을 독자에게 전달해야 할 때, 말 그대로 설명하는 것과 그것이 어떤 것인지 서술과 장면으로 보여주면서 독자가 스스로 납득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설명하기’와 ‘보여주기’입니다. 그리고 청록의 시간에는 ‘보여주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방식이 ‘설명하기’로 이뤄져 있고, 모든 개념과 모든 설정과 모든 장면이 설명으로 전달됩니다. 전개마저 설명으로 이뤄질 때는 조금 감탄했습니다. 이 작품의 본질은 소설이 아니라 설정집인가 싶을 정도로요. 설명하는 분량을 제하면 실제 전개와 장면을 서술하는 파트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이는 다른 문제로도 이어집니다) 저는 작품의 본질은 작품이 가장 많이 할애하는 요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청록의 시간이 가진 본질은 ‘설명’입니다. 설명 없는 청록의 시간은 없습니다. 심지어 설명을 묘사와 서술로 적당히 넘기는 것도 아니라 인물 대사로 처리를 했습니다. 웬만한 소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벽돌 대사가 여기선 상당히 잦은 빈도로 나와요. 대사에 템포란 게 없습니다. 오로지 설명, 또 설명이니까요. 더 큰 문제는…… 그 설명이 “꼭 필요하냐?”라는 질문에 사실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설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맨 처음에 언급했듯, 청록의 시간이란 이야기는 결국 폭주하는 행정 AI를 막기 위해 시간여행하는 이야기이며, 시간여행을 끝마친 주인공이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면서 이야기는 끝납니다. 여기에 필요한 설명은 많지 않습니다. 웬만한 내용은 전부 부연설명입니다. 이야기의 몰입을 돕고, 이해를 돕는 부차적인 내용들일 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나친 설명 때문에 몰입을 해치긴 했습니다만…… 설명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닙니다. 설명하기도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에 취할 수 있는 선택지입니다. 하지만 인물의 대사로 구구절절 떠드는 설명 일변도로 작품 전반에 걸친 설정과 배경, 심지어 전개를 설명하려는 건…… 읽는 입장에선 마치 “오해하지 말아달란” 의미로 읽힙니다. 하지만 오해는 없었습니다. 설명의 지루함 때문에 독자로선 강제로 한 발짝 떨어져서 읽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설명을 대사로 처리할 생각이었다면 재치라도 있거나 인물의 개성을 살리거나, 핵심만 요약하거나, 가독성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절대다수의 설명이 그렇지 않았습니다. 둘째, 인물다양성의 부재 청록의 시간에 등장하는 인물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설명하는 인물 2. 그걸 듣고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인물(감탄도 하면 더 좋습니다) 3. 1+2 이 세 가지 유형에서 벗어나는 인물이 없습니다. 전부 설명하거나, 그걸 듣고만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나눠지는 유형 안에서 인물들 개성이 구분되면 다행인데…… 작품 전반적으로 1인 다역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드래곤볼의 모든 인물을 일반인 한 명이 연기하는 느낌입니다. 목소리의 구분도 없고, 어휘의 차이도 없고, 인물 설정은 설정일 뿐, 설정이 ‘작동한다’는 느낌은 거의 없습니다. 절대다수의 인물이 하하핫으로 웃고, 절대다수의 인물이 설명하거나 그걸 듣고 있고, 절대다수의 인물이 진지하지 않을 때 한없이 얄팍해진다면…… 설명 뿐인 인물 구분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문장부호가 아닌 이모티콘인 물결표(~)의 잦은 사용, 하하핫이라는 고정된 웃음소리, 설명할 땐 모두가 똑같은 어조로 말하고, 모든 인물이 설명을 들으면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반응을 보이며, 성별, 나이, 지위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어휘와 말투, ‘아주 고급 레벨의 무공’이란 말을 접했을 땐…… 정말 쉽지 않습니다. 본래 작품은 창작자의 어휘 바깥의 말을 꺼내다가 쓸 수 없습니다. 그런 걸 쓰면 바로 티가 나죠. 다만 청록의 시간은 인물들이 설명하느라 말이 너무 많아서 그 어휘의 밑바닥을 전부 내보였습니다. 인물의 개성을 분간하는 건 일러스트나 외형이 아니라 ‘행동’과 ‘대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작중 인물들은 ‘대사’에선 분간하기 쉽지 않습니다. 일례로 주인공 재호를 예시로 들어보면, 20살 재호랑 20년 동안 조현병 치료를 받아온 재호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로는 20년 동안 어쩌고 하지만, 행동과 대사에서 차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기적으로 ‘나 20년 동안 조현병을 앓은 사람입니다’라는 설정을 독자에게 주지시키는 정도의 변화는 있지만요. 셋째, 중심의 부재 다시 처음으로 돌아봅시다. 청록의 시간이 어떤 이야기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돌아봅시다. 폭주하는 AI를 막는다는 소설의 최종적인 갈등이자 목표는 언제 제시되고 있을까요? 이 소설의 주인공을 재호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1부, 2부, 3부가 가지는 의의 중 4부를 보조하는 것을 제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야기’의 측면에서 볼 때, 이 소설이 가장 많이 할애하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따지면, 굉장히 난감해집니다. 청록의 시간을 여행하는 마고와 재호의 이야기? 너무 추상적이고 이것은 독자에게 제시된 목적도, 방향성도 아닙니다. 정체성이죠. 정체성 그 자체가 이야기의 목적과 방향성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선 아닙니다. “전부 알고 돌아볼 때” 이 이야기의 목적과 방향성을 알게 되는 구조는 그리 영리한 구조는 아닙니다. 독자는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알고 싶어합니다. 장편이라는 분량이, 1,200매에 가까운 분량을 관통하는 주제의식과 중심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자 합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그리고 그걸 알아낼 수 있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작품이 초반에 제시하는 방향성이고, 하나는 작품의 분량이 제일 많이 할애되는 ‘갈등’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주제의식과 중심 이야기를 찾는 데 실패했습니다. 주제의식은 존재하지 않았고, 중심 이야기랄 건 없었습니다. 왜냐면 작중에 나온 유의미한 갈등은 딱 하나, 폭주하는 AI와 그걸 막는 주인공 뿐이었으니까요. 작중에서 다룬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고 다양하지만, 그걸 하나로 엮진 못합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청록의 시간’이라는 설정 하나가 억지로 엮어놓는 구성은 크게 보면 거의 따로 노는 1, 2, 3부를 4부가 억지로 억지로 엮어놓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즉, 설계 자체는 모난 데 없고 시공까지 잘 마쳤지만, 설계 자체가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1부를 다 읽었을 때 제가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습니다. 작품이 어떤 이야기도 제시하지 않았고, 그저 ‘사건’만 나열했을 뿐이었습니다. ‘갈등’은 없었고, 전부 해프닝에서 그칩니다. 2부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1부의 유안이 다시 나오긴 하지만,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프닝에서 끝나버립니다. 이후 남 박사와의 일은 갈등이랄 것도 없이 남 박사가 설명만 줄창 하고 나니 재호가 실험을 당해버렸죠. 갈등이랄 게 아닙니다. 3부도 4부에 AI와 재호 사이의 갈등을 위한 빌드업만 줄창할 뿐, 실질적으로 ‘갈등’은 없고 사건만 이어지다가 끝납니다. 4부라고 해서 딱히 AI와 재호 사이의 갈등이 유의미한 건 아니고, 오히려 4부의 메인 이야기는 마고를 찾고 인류 멸종의 이유를 찾는 건데…… 시간여행의 아이러니를 조명하는 것과 별개로 이게 결국 작품 전체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인류 멸종의 이유 같은 건 사실 모른다고 청록의 시간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닙니다. 청록의 시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건 ‘폭주하는 AI와 그걸 막기 위해 시간여행해서 무공을 쌓아야 하는 재호’인데(결국 모든 이야기의 큰 틀이 여기서 나옵니다), 정작 제일 중요한 ‘무공을 쌓는 과정’은 스킵해버립니다. 2부에 재호가 고민한 ‘경계’를 중점적으로 다룰 거면 4부의 중심 갈등은 AI와의 갈등보다는 뉴먼으로 부활한 인간 재호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더 많은 고민과 고뇌를 했어야 하며, 혹은 이를 외면화한 갈등이 존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1부 3부에서도 ‘경계’에 대해서 비중 있게 다뤄야 했고요. 시간여행에 대한 소재를 더 부각시키고 싶었다면 1부 2부 3부의 메인 이야기를 시간여행과 무관한 이야기들이 아닌, 시간여행과 밀접한 이야기들로 채웠어야 했습니다. 폭주하는 AI의 ‘계엄’과 ‘친위쿠데타’를 경고하는 게 더 큰 목적이었다면 1부 2부 3부의 구성 역시 여기에 맞췄어야 했고요. 하지만 청록의 시간은 그 무엇도 아니었습니다. 이도저도 아닙니다. 독자에겐 어떤 방향성도 제시하지 않았고, 이 얘기, 저 얘기를 오가며 산만하게 진행되다가 4부에 들어서 이것저것 수습하느라 끝난 게 1,198매 동안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작품 소개를 다룬 장면은 그나마 2부를 제외하면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류 1만명을 학살해서 인류를 자기 손으로 끊어낸 재호의 고뇌나 고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고뇌하지 않고, 주인공이 고민하지 않는데, 독자가 탐구할 이유는 없습니다. 재호는 너무나도 쉽게 자기 정체성을 받아들입니다. 너무나도 쉽게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과 일을 납득하고 수행합니다. 독자는 그저 구경만 하면 됩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것처럼. 모든 존재의 가치란 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존재의 가치’를 고민한 장면이 작중에 있긴 한지 모르겠습니다. 인류의 가치조차 순식간에 재단해서 학살해버리는데, 모든 존재의 가치라고 다를까 싶습니다. 넷째, 편의주의적 전개 위 문제들에 비하면 사실 이건 사소한 문제입니다. 편의주의적 설정과는 궤가 다릅니다. 편의주의적 설정은 대체로 작품의 원활한 진행과 몰입을 위해 작가와 독자 사이에 암묵적으로 이뤄지는 합의에 가깝습니다. 이세계에서 말이 통하거나, 좀비물에서 군대가 제 기능을 못한다거나, 기타 등등이 그렇습니다. 물론 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장르소설에서 ‘편의주의적 설정’은 필요악으로 다뤄지곤 합니다. 저 역시 편의주의적 설정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입니다. 중요한 건 그런 ‘편의주의적 설정’을 짰다는 건, 거기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다른 데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니, 작품이 제시하는 방향성에 더 집중하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편의주의적 전개는 다릅니다. 이건 작가의 일방적인 선포에 가깝습니다. 독자는 납득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몰입이 깨져버리는 겁니다. 고대 중국에서 입자가속기를 만든다거나, 재호가 조현병 달고 20년 동안 치료와 일상을 병행했음에도 20년 전과 행동거지가 다를 바 없다거나, 재호가 정말 이보다 딱 들어맞을 수 없을 정도로 우연찮게 모든 실험 조건을 클리어했다거나, 재호가 아무튼 시간여행을 통해 천마재호가 되어 돌아왔다거나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뭐…… 이 부분은 ‘아쉽다’에서 끝내버려도 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죽어야만 시간 여행을 할 수 구조 속에서 죽음에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한 부분이나 1만명을 죽이고도 멀쩡히 일상을 살아간다거나 하는 부분에서 느끼는 아쉬움처럼 말입니다. 중간에 하차하는 방향도 있는데 어째서 끝까지 읽고 일일이 단문응원을 달며 리뷰까지 썼느냐… 작품에 느낀 실망과 아쉬움, 지루함과 정독, 댓글, 리뷰는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작품에 정치성을 넣는 것에 대한 호오는 차치하고서, 계엄이니, 친위쿠데타이니 하는 것들이 청록의 시간 내에 잘 어울리냐고 하면…… 솔직히 아닙니다. 세련되지 못했습니다. 지금이야 시기가 시기이니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곧바로 읽히겠지만, 시간이 좀만 흘러도 이 소설이 가진 시의성은 사멸할 것이고, 남는 건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어휘의 등장’으로 남을 겁니다. 시대를 담는 것과 시대를 초월해서 읽히게 하는 건 양립할 수 있습니다. 산적한 문제가 많아 정말 사소하다 못해 언급할 필요가 없는 부분일 수 있으나, 정말 이질적일 정도로 톡 튀어나온 부분이기도 하기에 이렇게 따로 언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