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이라는 말만 들어도 참 설레고 두근거렸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유부…녀가 되었기에 더 이상의 소개팅은 받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선남선녀들의 풋풋한 모습들을
보면 옛날 생각도 나고, 그 수줍은 듯 무언가를 기대하는 반짝이는 눈동자들은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럽다.
소개팅 당일, 어떤 사람일까? 나의 이상형과 가까웠으면 좋겠다 등등 온갖 기대를 갖고 상상하게 되는데 한편으론
마음에 안 들면 어쩌지? 끝까지 자릴 지켜야 하나, 아니면 일이 생겼다고 말하고 그 자릴 피해야 하나
주선자한텐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등등 시작도 하기 전부터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일단, 상대방이 마음에 들면 참 다행이다. 그 느낌 그대로, 마음 가는 대로 그날 하루를 잘 보내면 된다.
그런데 현실은 안타깝게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들이 너무도 많다. 소개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약속 장소에 와서 상대방과 마주하고 앉아있는데, 첫인상부터 내 스타일이 아니다. 말하는 스타일도…. 모두!!!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당신이, 내가, 우리가…. 하…
순간 온몸에 기운이 쭉 빠지지만 그래도 주선자의 얼굴을 봐서라도, 내 앞에 앉은 오징..아니, 상대방을 봐서라도
최대한 예의는 지키자 생각을 한다. 싫은 티 팍팍 내면서 인상 쓰고 있는 것은 내가 평소 생각해 왔던
휴머니즘에 위배되는 신념이니, 최대한 심호흡을 하며… 후… 하…..
소설 속 주인공도 주선자의 소개로 소개팅을 하게 되는데, (하필 그 주선자가 신부님;;;) 오자마자 광신도 필이
느껴지는 상대방의 포스! 이럴 때 우리의 주인공도 이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포켓몬을 창조한 포켓몬이 아르세우스라는 건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았다. 후훗
재치 있게 맞받아친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나 역시 나름(?) 재치 있게 맞받아쳤던 소개팅의 기억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어버렸는데, 당시 강남의 어느 커피숍에서의 일이다.
상대방은 딱 봐도 고리타분한 학구파 스타일에 아저씨 필이 느껴지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물론 사람을 전적으로 외모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지만 당시 24살의 젊은(?) 아가씨였던
나는 한눈에 들어오는 외모, 즉 첫인상에 상대방을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키 크고 잘 생기면 좋았던 시절이라. 하하.
그런데 이 남자 외모도 외모지만, 말하는 스타일도 ‘나 잘났네’라는 것을 너무 어필하는 것이라 거부감도 컸는데,
어느 정도 대화가 진행되었을 무렵 그 소개팅남이 나에게 종교가 뭐냐고 물었다.
순간 이 자릴 빨리 피하고 싶고, 모면하고 싶고, 이 사람이 나를 혐오하게 만들고 싶은 반항기가 발동했는데….
아마도 가장 대중적인 종교인 기독교, 천주교, 불교 셋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큰 오산!
나의 대답은 이랬다. 제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에요.
진지한 나의 대답에 상대방의 얼굴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느낌과 함께 살짝 일그러진 표정이었는데,
그게 무슨 종교냐고 묻길래, (사실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모르세요? 불을 섬기는 종교예요.
“요가 파이어” (이걸 왜 했는진 나도 날 잘 모르겠….)
자신 있게 제스처까지 취해주었는데, 그 남자 당황한 듯 목덜미를 잡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 마침 망냐뇽이 떴네요.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늦으면 먼저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