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이란 도전은 회피할 정도로 쫄보인 나는 가위, 바위, 보조차 제대로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어쩌다 가위바위보의 세계에 뛰어들게 되면 졸아든 심장에 손 내밀기 전부터 어차피 지고 말 거야란 저주에 홀랑 빠지고 만다.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해 봐야 기껏 술래잡기의 술래나 하기 싫은 정리의 당번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헌데 3분의 1 승률에 불과한, 허접하다면 허접하고,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면 가진 이 게임을 외계인이 걸어오다니. 승부의 결과로 지구를 구하게 되다니. 이 무슨 삐리리 짬뽕 같은 대결이 다 있을까.
‘가위바위보 세이브 어스’는 일평생 가위바위보를 져본 적이 없는, 그런데 왜 이기고 마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순아를 둘러싼 경쾌한 지구 수호 히어로(?) 이야기다. 히어로가 할 줄 아는 게 백전백승의 가위바위보 능력 뿐이지만, 아무나 지구를 구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건 아니니까. 더군다나 가위바위보에서 이겨본 기억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주인공 순아는 나름 멋지고 대단한(?) 영웅이다. 너무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오히려 사랑스럽다.
그리하여 그녀의 행보는 완벽미를 항상 추구하지만, 절대 도달하지 못하는 허접하고 평범한 내게 나름의 위안이 되었다.
초능력자가 대거 등장하지만 하나 같이 보잘것없어 불쌍하기까지한 ‘우리도 문 정도는 열 수 있어(유카리나 키오루 작)‘의 등장인물들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리도 문 정도는…‘속의 초능력자들도 염동력이 있지만 고작 10cm 밖에 못 옮긴다거나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데 그 눈을 보길 두려워한다거나 하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들이다.
얼결에 지구 대표로 뽑혀 세상을 구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띤 순아의 한판 승부!
나의 보잘것없는 재주가 특별한 뭔가를 수행할 기회를 제공한다면 그때 나는 어떤 기분일까.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우쭐우쭐거리려나. 아니면 부끄러워 오징어처럼 몸을 배배 꼬며 말고 있으려나.
절대 벌어질 리 없는 일이지만, ’가위바위보 세이브 어스‘를 읽으며 ’만약에…‘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가위, 바위, 보! 세이브 어스!! 앗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