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끝났지만 생각의 루프는 계속! 비평

대상작품: 외면술사 (작가: 김상원, 작품정보)
리뷰어: 영원한밤, 19시간 전, 조회 18

※ 본 리뷰의 스포일러 부분은 소설의 후반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을 먼저 보시고 읽는 것을 권합니다.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에 출품해 볼 작품을 구상하던 중 지난 공모전의 당선작을 읽게 되었고, 저는 ‘타임루프’라는 소재는 과감히 버리기로 했습니다. 타임루프를 소재로 이 이상 현실을 변주할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크롤이 다 내리고 나서 여러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은 글로 옮겨야 정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브릿G에서 첫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외면술사는 타임루프라는 소재를 통해 서로 상반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면서도, 곱씹어볼 부분도 많았습니다.


1. 반복의 감옥과 기억의 형벌

MCU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명장면인 닥터 스트레인지와 도르마무의 거래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수없이 도르마무에 의해 죽음을 경험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도르마무를 향해 ‘나는 지고, 지고 또 지고 영원히 지고, 그렇게 넌 내 죄수가 된다’는 대사를 날립니다. 결국 시간의 속박을 경험한 도르마무는 스트레인지에게 굴복했습니다. 본작의 미애는 이 시간 감옥에서 닥터 스트레인지 포지션으로, 영원히 반복되는 구찌다스대회 결승이라는 시간 감옥에서 수리를 풀어줄지는 여부는 미애의 선택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인드컨트롤을 믿고 까분 수리가, 미애의 시간 감옥에 갇혀 된통 당하는, 닥터스트레인지와 도르마무의 거래에서 본 쾌감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는 후반부 대회 이후의 정치적 상황까지 보여주면서 더 깊고 냉정하게 확장됩니다.

닥터스트레인지가 도르마무와의 거래에서 무수히 반복된 죽음의 경험을 기억하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하지 못했다고 해도 주인공이 무력으로는 도저히 대적이 불가한 최종보스인 도르마무를 지략으로 물리쳤다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만, 그 모든 죽음의 고통을 기억한 것이라고 본다면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의 고통을 참아내고 승리를 거둔 것이어서 진정 ‘영웅’이라고 할만합니다. 이렇듯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서사에서 ‘기억’이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럼 본작에서는 어땠을까요.

 

2. 상반된 능력, 삶에 대한 대조되는 태도

소설은 수리와 미애에게 서로 상반되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서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수리의 마인드컨트롤이 ‘통제’라면, 미애의 외면술은 ‘회피’입니다. 피할 수도 없고 완전히 지배할 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진짜 문제는 ‘수용’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든 현실을 통제하고 싶고, 때로는 회피하고도 싶지만, 결국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수리의 주치의는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와 끊어야겠다는 욕구에 빗대어 ‘진심’이란 무엇인지 탐구하고 제시합니다. 술을 매일 마시든, 아예 끊든,  그 중간의 적당함을 즐기든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 선택이 곧 삶의 형태를 결정합니다.

 

3. 공정의 규칙, 군중의 얼굴

소설은 공정과 평등, 그리고 군중심리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디폴트휴먼의 결승 자동 진출 할당은 능력의 불균형을 보정하기 위한 역차별적 평등 조치입니다. 미애는 그 제도의 혜택을 받았지만, 사실은 초능력자였습니다. 미애는 평등을 위해 만든 제도를 악용한 것일까요. 디폴트가 아니라 루프쟁이였다는 수리의 지적에, 미애는 인간의 현실에서는 디폴트가 맞다고 항변합니다. 외면당한 현실은 꿈에 불과하니, 현실에서는 디폴트가 맞다는 의미였을까요.

자기 합리화의 궤변에 불과한 것 같지만, 미애의 항변은 마냥 무시하기도 어렵습니다. 미애는 매번 경기를 리셋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각의 경기에서는 디폴트휴먼의 인지와 신체적 한계를 넘어 영향을 미칠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구찌다스파이트는 1층 로비에서 55층 쇼룸에 진열된 구찌다스를 신고 출발선으로 돌아오면 이긴다는 단순하고 원초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매 경기는 공평하게 출발선에서 똑같이 시작합니다. 경험이야말로 미애한테 유리한 것 아니겠냐고 묻는다면, 반복된 결승전의 경험치는 수리도 같이 얻었습니다.

어쨌거나 주최측은 미애를 디폴트휴먼으로 간주해서 자동 진출 할당을 주었고, 미애는 그런 규칙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럼 규칙에 따라서 승리한 미애는 공정할까요. 규칙에 따라 승리한 미애를 비난하는 것은 공정할까요.


어쩌면 꿈보다 해몽, 지나치게 오버하는 격의 리뷰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배경 설정까지 하나 하나 뜯어보면, 작가님이 단어 하나의 선택도 허투루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괜히 브릿G 당선작이 아니었습니다.

재밌고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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