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의 스포일러 부분은 소설의 후반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을 먼저 보시고 읽는 것을 권합니다.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에 출품해 볼 작품을 구상하던 중 지난 공모전의 당선작을 읽게 되었고, 저는 ‘타임루프’라는 소재는 과감히 버리기로 했습니다. 타임루프를 소재로 이 이상 현실을 변주할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크롤이 다 내리고 나서 여러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은 글로 옮겨야 정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브릿G에서 첫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외면술사는 타임루프라는 소재를 통해 서로 상반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면서도, 곱씹어볼 부분도 많았습니다.
1. 반복의 감옥과 기억의 형벌
MCU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명장면인 닥터 스트레인지와 도르마무의 거래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수없이 도르마무에 의해 죽음을 경험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도르마무를 향해 ‘나는 지고, 지고 또 지고 영원히 지고, 그렇게 넌 내 죄수가 된다’는 대사를 날립니다. 결국 시간의 속박을 경험한 도르마무는 스트레인지에게 굴복했습니다. 본작의 미애는 이 시간 감옥에서 닥터 스트레인지 포지션으로, 영원히 반복되는 구찌다스대회 결승이라는 시간 감옥에서 수리를 풀어줄지는 여부는 미애의 선택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인드컨트롤을 믿고 까분 수리가, 미애의 시간 감옥에 갇혀 된통 당하는, 닥터스트레인지와 도르마무의 거래에서 본 쾌감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는 후반부 대회 이후의 정치적 상황까지 보여주면서 더 깊고 냉정하게 확장됩니다.
닥터스트레인지가 도르마무와의 거래에서 무수히 반복된 죽음의 경험을 기억하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하지 못했다고 해도 주인공이 무력으로는 도저히 대적이 불가한 최종보스인 도르마무를 지략으로 물리쳤다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만, 그 모든 죽음의 고통을 기억한 것이라고 본다면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의 고통을 참아내고 승리를 거둔 것이어서 진정 ‘영웅’이라고 할만합니다. 이렇듯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서사에서 ‘기억’이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럼 본작에서는 어땠을까요.
미애는 원치 않은 현실을 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실패의 기억을 토대로 자신의 목표 성취를 위해 기어이 꿈을 반복합니다. 수리는 미애가 외면술사이고 자신은 그것을 기억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루프지옥을 예감했고, 91번의 반복을 버텨내지만, 결국에는 미애에게 굴복합니다. 소설은 수리의 내면에 좀 더 집중해서 서술합니다. 수리가 느낄 무력감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끝내 협상을 먼저 얘기하는 수리에게 연민마저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시간 감옥을 나갈 열쇠를 가지고 있을 뿐, 시간 감옥에 갇혀 꿈 같은 현실을 반복하는 것은 미애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한 자가 이긴 걸까요, 더 오래 버틴 자가 살아남은 걸까요.
‘기억’, 특히 수리의 기억은 결말의 해석에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나팔소리와 함께 출발선의 수리는 미애를 향해 히죽 웃으면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결국은 외면당했던, 가장 길었던 꿈에서 수리는 사망했습니다. 새로운 현실에서 수리는 시간 감옥에 갇혔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요, 아니면 모두 잊었을까요.
다른 이들과 다르게 수리가 미애의 외면술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보존할 수 있는 이유는, 상대인 미애의 뇌에 자신의 기억을 백업하여 두기 때문입니다. 수리는 미애의 뇌에 백업된 자신의 기억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다시 현실을 외면하고 출발선으로 돌아온 미애는 모든 것을 기억할테니, 수리가 그 기억을 읽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닙니다. 반대로, 수리는 미애와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이미 한번 죽으면서 기억 백업의 흐름이 끊겼고, 외면술을 통해 최초의 출발선으로 돌아온 미애의 뇌는 기억 백업을 당하지 않은 상태의 뇌이기 때문에 루프의 기억을 읽지 못했다고 해도 충분히 성립합니다.
마지막에서 수리가 루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수리가 미애에게 짓는 웃음의 의미도 다르게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루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시간 감옥의 문을 열 수 있는 미애도 결국은 제자리걸음이라는 조롱이 되겠으나, 루프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또 다시 루프에 갇혀서 고통 받을지 모르는 순진한 수리의 비극적 미래를 암시하는 장치로도 보입니다. 미애도 교훈을 얻었으니 똑같이 흘러가진 않겠지만, 작중에서 미애는 자신이 원하는 현실을 만들 때까지 기꺼이 꿈을 반복할 각오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결말의 수리가 루프를 기억하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이전 루프의 결말이 결국에는 또 다른 외면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결말에서 새로이 선 출발선에서는 미애도 머리 꽤나 아픈 상황입니다. 미애가 모든 계산을 마치고 다시 외면을 선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애라고해서 과연 언제까지 현실에서 도망만 치는 것이 가능할까의 질문도 남깁니다.
2. 상반된 능력, 삶에 대한 대조되는 태도
소설은 수리와 미애에게 서로 상반되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서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수리의 마인드컨트롤이 ‘통제’라면, 미애의 외면술은 ‘회피’입니다. 피할 수도 없고 완전히 지배할 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진짜 문제는 ‘수용’일지도 모릅니다.
결승점을 향해 오픈런을 반복해야 하는 루프는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수리는 미애를 통제하려 했지만 결국 무너졌고, 미애는 외면하고 싶은 현실들은 모조리 꿈으로 만들어 도망치다가 결국에는 다시 같은 지점에 서게 됩니다. 수리는 통제할 수 없는 현실도 받아들여야 했고, 미애는 무수히 많은 현실을 외면하고 회피해왔지만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현실이 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능력인 듯 하지만, 둘은 각자의 능력을 정 반대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수리는 시청자 모두에게 집단 마인드컨트롤을 걸어서 현실을 통제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이겼다는 꿈에 빠져 루프 지옥이라는 현실을 외면하고 회피한 것이었습니다. 미애는 자신이 원치 않는 많은 현실들을 꿈으로 치부하고 외면했지만 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현실이 되도록 통제하고자 하였습니다.
누구든 현실을 통제하고 싶고, 때로는 회피하고도 싶지만, 결국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수리의 주치의는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와 끊어야겠다는 욕구에 빗대어 ‘진심’이란 무엇인지 탐구하고 제시합니다. 술을 매일 마시든, 아예 끊든, 그 중간의 적당함을 즐기든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 선택이 곧 삶의 형태를 결정합니다.
3. 공정의 규칙, 군중의 얼굴
소설은 공정과 평등, 그리고 군중심리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디폴트휴먼의 결승 자동 진출 할당은 능력의 불균형을 보정하기 위한 역차별적 평등 조치입니다. 미애는 그 제도의 혜택을 받았지만, 사실은 초능력자였습니다. 미애는 평등을 위해 만든 제도를 악용한 것일까요. 디폴트가 아니라 루프쟁이였다는 수리의 지적에, 미애는 인간의 현실에서는 디폴트가 맞다고 항변합니다. 외면당한 현실은 꿈에 불과하니, 현실에서는 디폴트가 맞다는 의미였을까요.
자기 합리화의 궤변에 불과한 것 같지만, 미애의 항변은 마냥 무시하기도 어렵습니다. 미애는 매번 경기를 리셋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각의 경기에서는 디폴트휴먼의 인지와 신체적 한계를 넘어 영향을 미칠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구찌다스파이트는 1층 로비에서 55층 쇼룸에 진열된 구찌다스를 신고 출발선으로 돌아오면 이긴다는 단순하고 원초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매 경기는 공평하게 출발선에서 똑같이 시작합니다. 경험이야말로 미애한테 유리한 것 아니겠냐고 묻는다면, 반복된 결승전의 경험치는 수리도 같이 얻었습니다.
어쨌거나 주최측은 미애를 디폴트휴먼으로 간주해서 자동 진출 할당을 주었고, 미애는 그런 규칙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럼 규칙에 따라서 승리한 미애는 공정할까요. 규칙에 따라 승리한 미애를 비난하는 것은 공정할까요.
그에 대해 작중 군중은 미애를 공정하지 못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수리 주치의의 폭로로 미애가 사실은 초능력자라는 것이 밝혀지자, 미애에게는 3일간 두문불출하다가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꿈으로 만들어야 할만큼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군중은 초능력자이면서 초능력자임을 숨기고 주최측을 속이고, 십수년 간 군중을 속여 온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재밌는 지점이 있습니다. 군중은 왜 화가 났을까요. 미애는 유력 정치인이 되어 초능력자들을 디폴트휴먼의 자원으로 규정하고 억압하며 디폴트휴먼의 세상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미애에게 쏘아붙이는 기자들이 억압받던 초능력자들이었다면 그나마 이해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기자는 명확하게 이렇게 묻습니다. “디폴트 휴먼 지지자들에게는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군중, 디폴트휴먼들이 원하는 것은 공정이 아니라 우리편의 승리였을까요. 그들이 열광한 건 미애가 디폴트휴먼의 얼굴을 하고 권력을 잡았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미애가 그토록 디폴트휴먼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노력해왔음에도, 초능력자임이 밝혀지자마자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한 것일까요. 미애가 초능력자라는 것 자체보다 디폴트휴먼인 줄 알고 응원했던 자기 정체성 투영의 대상이 깨졌기 때문인걸까요.
초반 구찌다스파이트에 ‘보다 평등한 초능력 경연’ 을 요구하던 모습에서, 미애를 향하는 마지막 모습까지 군중을 보면 과연 그들은 원하던 공정과 평등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됩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초반 배경 설명이지만, 작중의 디폴트휴먼은 현실의 인간과 결코 동일하지 않습니다. ‘페어클라우드’를 통해 방대한 인류의 지식을 실시간으로 평등하게 뇌를 업데이트하고 유전자편집 기술이 상용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디폴트휴먼입니다. 모두가 획일화될 수 있는 위험이 공정이란 이름으로 교묘하게 가려질 뻔한 세계에서, 공정시대의 반발로 사교육을 통해 초능력이 발현된 세상으로 나아간 상태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공정으로의 회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면, 약간은 섬찟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어쩌면 꿈보다 해몽, 지나치게 오버하는 격의 리뷰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배경 설정까지 하나 하나 뜯어보면, 작가님이 단어 하나의 선택도 허투루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괜히 브릿G 당선작이 아니었습니다.
재밌고 좋은 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