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족의 8대 왕 마라-1

17년 8월

마라왕께서도 어릴 때부터 소문에 시달리셨다. 아나트만왕과 바니타스 왕비 중 누구도 닮지 않으신 외모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아우라를 닮지도 않으셨다. 유소처럼 목소리가 아름답고 찬가를 잘 부르셨던 왕의 눈은, 카르마왕의 눈처럼 매섭고도 위엄있게 빛났다. 마치 태양처럼. 누구도 그 눈을 마주 볼 수 없었다. 왕께서는 늘 나직하게 조곤조곤 말씀하셨지만 말씀은 날카롭고도 힘이 있었다. 왕께서는 바니타스 선왕비를 어머니로 극진히 모셨지만 모자 간의 정은 없었다. 바니타스 선왕비께서는 사제들의 반대를 헤치시며 아나트만왕 시대의 엄격했던 법규와 예식을 완화하셨다. 마라왕께서 즉위하실 무렵에는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 있었다. 모든 것은 중도를 향하게 마련이다. 너무 엄격했던 것들은 풀어지는 것이 순리였지만 과도하게 엄격했던 법규와 예식으로 이득을 누리던 사제들은 반발했다. 그 과정에서 마라왕께서 아나트만 왕의 아들이 아니라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제사장께서 책임지고 소문을 가라앉히시오.

자금우 제사장은 바니타스 선왕비를 몰래 알현했다. 바니타스 선왕비께서는 높은 의자에 앉아 제사장을 맞아들이셨다.

“아무리 선왕의 아들이더라도 마라왕께서 라밀하나신께 죄를 지은 사제의 아들이라서 왕으로 인정을 못 하겠다는 게 사제들의 중론인가?

“그런 것도 있습니다.

“그 말씀은, 내가 왕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선왕비께서 어금니를 앙다무셨다.

“나를 길들이려고 그런 소문을 퍼뜨리는 게 야비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까?

“그렇습니까?

제사장과 선왕비가 서로를 노려본다. 선왕비께서 먼저 물러나셨다.

“왕께서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 모르십니다. 그리고 사제 측도 굳이 그 죽은 사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건 망신스러운 일이겠지요.

“그렇다고 그 사제를 이대로 덮어 두고 넘어갈 수도 없고 그렇습니다. 사제들 내부의 질서도 잡아야 하기 때문에…….

협상은 결렬되었다. 제사장은 왕께 왕께서 아우라 사제의 아들이심을 밝혔다. 그러나 왕께서는 비웃으셨다.

“그래서, 그걸 믿으란 말입니까?

떨떠름해하는 제사장에게 왕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선왕의 장례가 미루어졌을 때 제사장이 돌아가시니 갑자기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아마 전임 제사장께서 장례 책임자셨지요?

“협박하시는 겁니까?

“제사장의 일이 어떤 건지 알려드리는 겁니다.

“저는 사제들의 우두머리입니다. 사제 내부의 질서도 잡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제들의 일은 사제들끼리 처리하시오. 왕을 개입시키지 말고.

왕께서 고개를 돌리셨다. 욍의 목을 감싼 빳빳하고 높은 옷깃이 사박거린다. 제사장이 물러난다. 제사장이 나가자마자 선왕비께서 왕과 마주하셨다.

“제사장이 뭐라고 했습니까?

“‘아우라’라는 사제가 제 생모라고 했습니다. 선왕과 그 사제가 다른 사제들 눈앞에서 바스러져 눈앞에서 사라졌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가능할 수도 있지요. 마니가 간절히 원하고 신께서 도우신다면 불가능할 게 있겠습니까?

“신께서 도우셔도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신께서 하시면 해가 서쪽에서 뜨고 물이 아래에서 위로 흐릅니까?

너무나 확고하신 모습에 선왕비는 안심이 되셨다.

“내가 왕을 내 아들로 기른 것은 그 두 마니에 대한 연민과 궁 안에서 왕자 아니면 내 편이 없었던 상황에서 왕자라도 있어야 했던 것과 마니족 왕비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노력해도 왕을 진심으로 사랑해 줄 순 없었지요. 내 남편의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셨으니까. 그렇지만 왕이시여, 출생을 알건 모르건 받아들이건 말건 우리는 여전히 모자 관계입니다.

“그렇게 하지요, 어머니.

약점이 없어져서 였을까. 왕의 소문은 어느 샌가 사라졌다.

 

마라왕께서는 카마왕비를 어느 봄날 새벽에 만나셨다. 사냥을 나가시는 왕과 사제들의 앞을 카마가 가로막았다.

“이 새벽에 무슨 일인가?

“왕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신부 차림으로 성장한 카마가 왕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한다.

“제가 왕비가 될 것이란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오늘 사냥의 제물은 우리의 혼인을 위해 결혼의 신이신 라밀하나신께 바치셨으면 합니다.

왕께서 물으셨다.

“신의 계시를 믿습니까?

“네.

왕께서 자신 못지않게 또렷하고 강렬한 카마의 눈을 들여다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럼 나는 내 느낌을 믿어보겠습니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왕비로 모셔가도록 하지요.

숲으로 가는 길, 자금우 제사장이 왕 옆으로 흰사슴을 바싹 붙여 몰며 물었다.

“그 여자 말을 믿으십니까?

왕께서 웃으셨다.

“신의 계시 같은 건 아무 상관없었습니다. 그 마니, 한눈에 반할만 하지 않았습니까?

“대담했습니다.

 

제사장의 흰사슴의 속도를 늦춰서 다시 왕의 뒤로 갔다. 약속대로 왕께서는 제물을 바치시고 카마와 혼인하셨다. 왕과 왕비께서는 종교보다는 먹고 사는 일에 더 관심을 쏟으셨다. 농기구의 계량이 이루어지고 땅은 지력을 회복했다. 아이들이 태어났고 더 많은 땅이 필요했다. 해마다 풍년이었고 마니들은 더 비옥한 땅을 원했다. 그들은 창고에 곡식을 쌓아두기를 원했다. 굶주림을 겪고 난 후였고 그 굶주림에 책임이 있었던 사제들은 교체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재해나 종교의 광풍이 닥칠 때를 대비해서 창고에 곡식을 쌓아두고 더 많이 쌓아두기를 원했던 것이다.

어느 해인가 가뭄이 닥쳤다. 사제들은 마니들에게서 곡식을 걷어 신께 기도드렸고 마니들은 곡식을 바치고 신께 기도드렸다. 그리고 가뭄 내내 주렸다. 가뭄이 끝나자마자 마니들은 대비하기 위해 비축하기를 원했다.

 

더 많은 농토를 위해, 사제들의 위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제들은 왕께 아린을 사냥하여 내몰고 숲을 개간할 것을 강력하게 건의했다. 아나트만왕의 사후부터 마라왕의 즉위 직전까지 사제들과 권력 투쟁을 하셨던 바니타스 선왕비께서는 즉각 반대하셨다.

“욕심은 한 번 부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 는 법입니다.

카마 왕비께서는 선왕비보다 한 발 더 나가셨다. 왕궁과 신전의 창고를 열어 비축해 두었던 곡식을 꺼내어 높이 쌓고 불을 질러 버리셨다. 왕비의 행동을 왕께서는 묵인하셨다. 마니들과 사제들은 경악했다.

 

“이것 가지고는 안 되지요. 어떻게 되든 결국은 사제들 말대로 해야 하긴 할 거예요. 욕망은 본래 끝이 없는 법이니까.

함께 궁술을 연습하시며 왕께서는 왕비께 그렇게 말씀하셨다.

“너무 과하지 않게 하시고, 몸조심 하세요.

왕비의 말씀에 왕께서는 왕비의 부른 배를 보셨다. 왕비께서는 아기를 잉태하고 계셨다. 왕께서는 사냥 준비를 하셨다. 왕비는 만삭이셨다. 왕께서 채비를 단단히 하시고 사냥을 가시던 날, 왕비께서는 처음 만나셨던 그 날처럼 왕을 막아서셨다.

“가지 말아요. 오늘은 사냥하지 말아요.

왕께서 왕비를 안으셨다.

“오늘이 사냥하기 가장 좋은 날이에요. 위험한 건 알지만, 충분히 조심할 테니까 별 일 없을 거예요.

“가지 말아요. 느낌이 좋지 않아요.

“느낌은 믿을 게 못 돼요.

왕께서는 채비를 갖추어 나가셨다.

 

사제들이 탄 흰사슴이 숲을 향해 질주한다. 왕께서 선두에 서신다. 사제들이 활시위를 당긴다. 오늘의 사냥은 평소보다 무자비하다. 어린 아린이 화살을 맞고 쓰러진다. 어리거나 늙어 빨리 달리지 못 하는 아린들이 가장 먼저 죽는다. 어린 아린을 안고, 늙은 아린을 업고 도망치다 화살에 맞는 아린이 그 다음이다. 평소에는 순결한 젊은 아린만 죽였지만 이번에는 눈에 보이는 아린은 무조건 죽인다. 아린들을 죽이고 숲의 일부 아니면 전부를 차지해야 한다. 왕께서도 활을 쏘신다. 그렇게 아린을 사냥하시다 보니 왕께서는 사제들과 떨어져 홀로 숲을 돌아다니고 계셨다. 왕의 눈에 아린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도망치는 속도가 느렸다. 왕께서 활시위를 당기셨다. 명중이었다. 죽는 순간, 아린은 뒤를 돌아보았다. 만삭이었다. 그리고 카마 왕비의 얼굴이었다. 왕께서는 미친 듯이 흰사슴을 몰아 숲을 빠져 나오셨다.

“무슨 일입니까? 왜 그러십니까?

왕꼐서는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사장은 사제들에게 일단 숲에서 나가 왕을 따를 것을 명했다. 왕께서는 한달음에 궁에 도착하셨다. 의원이 고개를 떨구었다. 바니타스 선왕비께서 갓 태어난 왕자를 안고 계셨다.

“카마는?

왕비께서는 왕자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가지 말아요. 느낌이 좋지 않아요.’ 왕께서는 아기 왕자가 우는 소리도 듣지 못 하시고 그 자리에 우뚝 서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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