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 혼(이거 진짜야). 옛날에 아타라고 하는 아름다운 아린이 살았다. 아타가 유소라는 학살자를 만난 건 그믐달이 떴던 어느 밤이었다.
“므우–므우-.”
잠들어 있던 아린들이 하나둘씩 깨어났다. 숲 속으로 아린의 목소리가 낮게 퍼진다. 침입자가 있다. 흰 옷을 입은 마니다. 흰사슴도 없이 활과 화살만 가지고 숲 속 여기저기를 헤맨다. 마니는 곧 아린들에게 에워싸인다. 그가 태고어로 말했다.
“나 레나 마밀레(나를 인어에게 데려다 달라).”
아린족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니가 노래를 시작했다.
“뮤이타 뮤이타 무 마밀레 하카 뮤이타(갖고 싶어 갖고 싶어 인어의 목소리를 갖고 싶어).”
인어가 탐낼만한 목소리다. 인어가 화답했다.
“뮤이타 라누 마니(노래하는 마니를 갖고 싶어).”
아린족이 길을 터줬다. 마니가 인어의 소리를 따라갔다. 아린족이 다시 잠자리에 들었을 때 아타가 몰래 마니의 뒤를 밟았다. 마니의 걸음으로 인어의 호수까지는 꽤 멀었다. 마니는 꼬박 하루를 걸어서 다음날 밤에야 호수에 닿았다. 발이 부르트고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었다. 걷는 내내 마니와 인어는 노래를 쉬지 않았다. 마니도 인어도 지쳤다. 호수가에서 마니는 갑자기 노래를 멈추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나뭇가지 사이로 몸을 숨긴 마니가 호수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뮤이타-(갖고 싶어-).”
노랠를 부르러 고개를 내민 인어를 놓치지 않고 마니가 소리치며 활을 쏘았다.
“레 아 루 치흘레(너희 종족도 책임이 있지)!”
아린을 쏠 때 늘 그래왔듯이 화살이 인어의 심장에 정확히 박혔다. 인어의 시신이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수면에서부터 시뻘건 핏물이 퍼져 나갔다. 마니는 활을 부러뜨려서 호수 안으로 던져 넣었다. 물이 튀었다.
“니에 마타 후타니(넌 너희 종족의 금기를 어겼군).”
마니족 사제가 인어의 목소리를 얻는 것도, 영혼을 거래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이이 타 이에라(이미 여러 번 어겼다).”
그 때 마니의 시선이 아타에게로 향했다. 마니는 웃고 있었다. 체념한 듯, 허망한 듯 부드러운 미소.
“주 산 하카라누티나. 우 산(목소리를 주고 영혼을 가져가).”
“유소, 니에 산 우루니에 산(유소, 네 영혼 속에는 뭐가 있지)?”
“신, 칸타, 카르미나 단 샤티하니 마밀레(신, 왕, 제사장, 죽은 인어).”
“우 산. 주 산 하카라누티나(영혼을 주고 목소리를 가져가).”
노래하듯 진행되는 대화. 서서히 인어와 유소의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인어의 시체가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유소가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갔다. 부르트고 물집 잡힌 발이 질질 끌렸다. 아타가 나무 뒤에서 나왔다. 유소가 나무에 기대섰다. 아타가 유소의 부르튼 발에 입을 맞추었다. 유소가 가진 인어의 목소리를 다시 빨아들일 것처럼. 유소가 아타를 꼭 잡았다. 아타가 유소를 업었다. 유소가 아타의 등에서 잠이 들었다. 아린의 걸음은 마니보다 훨씬 빨라서 금방 숲의 경계에 닿았다. 유소는 내리지 않고 업힌 채로 어리광부리듯 아타의 목을 안았다.
“아사라니 마밀레, 류 게이아(인어를 죽여 놓고, 잠이 와)?”
유소는 아타의 등에 볼을 부빌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아사라니 아린, 유 게이아(아린을 죽여놓고도 잠이 잘 왔지)?”
유소가 등에 얼굴을 푹 파묻고 대답하지 않았다. 아타는 유소를 내려놓았다. 유소가 아타 앞에서 빈손을 폈다. 활도 화살도 없었다.
“라리나 살라 탄티아? 마니 후아데 마밀레 니에 아린(우리, 아기를 낳을까? 마니와 인어 와 아린이 모두 섞인).”
그게 유소가 할 수 있는 사랑 고백이자 사죄였다. 이번에는 아타가 대답하지 않았다.
유소와 아타가 잉태한 아이는 태어나지 못 했다. 아기를 밴 아타를 마니족의 왕이 화살로 쏘아 죽였다. 마니는 짝을 짓기 이전의 아린만을 골라 죽였기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 했던 일이었다. 유소가 달려왔지만 이미 생과 사는 갈렸다. 그 상황에서도 옷깃을 여미고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유소가 가증스러워서 마니족의 왕은 유소의 멱살을 잡았다.
“유소,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데아가 기다릴 텐데.”
“왕이시여, 이제 그만 하십시오.”
“네가 그만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지.”
“놓아 주십시오.”
왕이 손을 놓았다. 유소는 아타의 시신을 나무 아래 누이고 귓가에 장송곡을 불러 주었다. 사제의 두 볼 위로 강 같은 눈물이 흘렀다. 입가에 피가 흘렀다. 왕이 혀를 깨물고 죽은 유소를 준비해 온 관에 아타와 함께 넣었다. 두 시신은 그날 밤 다시 숲으로 돌아와 아린의 방식대로 매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