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족의 5대 왕 아니디아-3

17년 5월

아니디아 왕자는 햇살이었고 등불이었고 빛이었다. 왕께서는 “사제의 기도가 아니라 이 아이의 미소가 나를 정화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사바왕 시절의 폭우 때 왕자는 홍수로 집과 가족을 잃은 마니들에게 손을 내미셨다. 왕자는 비구름 사이로 금실처럼 가늘게 비치는 햇살이셨다.

아니디아 왕자는 목소리가 홀릴 듯 아름다웠다고 전해진다. 사바 왕께서는 왕자께서 옹알이를 하시고 말문이 트일 즈음에 찬가부 사제들 중 목소리가 아름다운 자들을 선발하시어 왕자께 말을 가르치게 하셨다. 왕자의 목소리는 묘려했다. 사바왕께서는 사제들을 시켜 왕자께 노래를 가르치게 하셨다. 왕께서는 진수화 제사장에게 “왕자는 누구에게든 사랑받을 겁니다. 목소리가 부드럽고 밝고 아름다우니까.” 라고 하셨다. 폴리테이아 왕비께는 “왕자의 목소리 정도라면 여자의 귓가에 사랑의 밀어를 속삭여 줄 수도 있겠군”이라고 하셨다.

 

사바 왕과 아니디아 왕의 시대에는 아샤루카타이신에 대한 숭배가 성행했다. 농경민족이던 마니족이 원래 섬기던 신은 땅의 신이신 드미트에 여신과 하늘의 신이신 하타 신과 그 일족이었다. 드미트에 여신께서 창조하신 땅을 뒤엎어버리고 그 땅에 나무를 자라게 하시어 농토를 숲으로 바꿔버리시고 호수에 인어를 풀어넣으시고 독초와 독버섯, 독 있는 동식물들을 만드신 아샤루카타이 신과 그 일족은 마니족에게 파괴와 궁핍을 뜻했다. 그러나 사바 왕과 아니디아 왕의 시대에 마니족의 손으로 마니족 영토의 지도를 바꾸는 대공사를 하면서부터 아샤루카타이 신은 창조주이신 드미트에 여신에 대한 피조물인 마니들의 도전을 의미하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붉은 소를 길들여 우경을 하게 된 것도 아샤루카타이 신의 숭배에 한 몫을 했다. 소는 아샤루카타이 신의 상징이며 제물이었다.

왕께서는 아샤루카타이신을 피해 숲의 호수를 떠나 강이 되셔서 평야로 흐르시고 아샤루카타이신을 변신케 한 독약을 만드신 미르혼 신의 강에 아샤루카타이 신의 상징인 검은 수소를 넣어 도발하셨다. 검은 소가 급류를 헤치고 강을 건넜다. 야샤루카타이 신이, 마니족이 강의 신과의 대결에서 이겼다. 그렇게 시작된 치수공사는 시행착오를 거치고 재정과 마니족의 기력을 고갈시켜가면서 아니디아 왕자께서 청년이 되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의 목표는 수재를 방지하고 황무지였던 등활에 물을 대어 등활을 농토로 바꾸는 것이었지만 공사가 계속되고 기술이 축적되면서 사바 왕 말기에는 지금의 거의 모든 둑과 제방과 수로가 완성되었다. 아니디아 왕 대에는 상하수도까지 정비되었다.

 

공사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서서히 마니족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경험이 없다 보니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경험을 쌓아야 했고 이론이 실제와 다른 경우가 허다했다. 공사 중의 사고로 죽은 마니들도 있었고 홍수에 제방이 터져 버리는 일도 많았고 기술의 미숙에서 오는 시행착오로 인해 몇 번이나 공사를 중지해야 했다. 사제들은 경전 연구보다 수로 공사에 쓰일 이론과 기술의 연구에 몰두해야 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고 신에 대한 도전을 멈출 것을 촉구했지만 소용없었다. 설린 제사장은 저수지에 빠져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스스로 몸을 던진 것인지 누가 밀은 것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진수화와 왕은 신을 이기려고 공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신을 이겼던 걸까.

 

신에게도 도전한 마니족이 왕을 거스르지 못 할 리 없었다. 홍수가 반쯤 만들던 둑을 터뜨려 버렸던 어느 날, 드디어 마니족은 붉은 소를 외양간에 넣어버리고 삽을 땅에 박아 버리고 왕을 찾아왔다. 왕께서는 왕자를 대변인으로 내세워 마니들과 맞서셨다. 왕께서는 아니디아 왕자께서 말을 배우신 후부터는 거의 대부분 언사를 왕자께서 대리하게 하셨다.

“왕이시여 저희의 말을 들어주소서-.

“말해보라. 마니족이여. 그대들은 수천수만이 무리 지었고 이쪽은 나와 왕 뿐이다. 그러니 말해보라. 마니족이여. 무엇을 요구하는가.

“왕이시여, 이전에 약속하셨던 것은 풍요이나 지금 저희 눈앞에 있는 것은 빈곤이고 비옥한 새 농토를 약속하셨으나 지금은 농사를 짓지 못 하고 물을 다스리는 데에만 매달리느라 전에 일구던 농토도 황무지이며, 관개시설은 커녕 홍수에 휩쓸린 잔해만 남았으니, 짓다 말고 이건 아니었댄다 부수고 다시 짓고 홍수 오면 강 넘쳐서 짓던 거 무너지고 무너진 거 다시 짓고 내 집 살림 못 돌보고 내 땅 농사 못 지으며 새벽부터 밤까지 뼈빠지게 고생 해도 쌀 한 톨이 더 나오나 밥 한 알이 더 나오나. 있는 밥이 줄어들고 반찬 가짓수가 줄 어들고 처음에는 끼니를 챙겨주더니 나중에는 도시락 싸오너라 처음에는 십일조세 나중에 는 반분세 처음에는 집집마다 한명이더니 나중에는 집안 사람 다 나오라니 왕이시여 왕자 님이시여 공사를 중지하라 명하소서.

왕자가 답가를 부른다.

“마니족이여 눈을 들어 저 먼 미래를 보라. 오늘의 미숙이 내일의 숙련이 될 것이며 오늘 의 빈궁이 내일의 풍요가 될 것이며 오늘의 홍수는 내일의 치수가 될 것이라. 이른 봄에 수확을 바라는가. 밭 갈고 김매지 않고도 수확이 있는가. 오늘의 곤궁과 피로에 대해 후손들이 칭송하며 감사하리라.

“왕이시여 신께서는 우리를 돕지 않으십니다. 홍수로 우리를 벌하십니다.

“신께서는 왕자와 붉은 소를 내리셨다.

“왕이시여 이 공사가 정녕 왕의 명예가 아니라 마니족의 번영을 위한 것입니까?

“그렇다. 진실로 그러하다.

“왕이시여 약조하소서. 풍요를. 미래를. 이게 왕의 욕심을 위한 공사가 아니라는 것을. 왕 자님을 걸고 약조하소서.

왕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셨다.

“약조하소서. 왕자님을 걸고 약조하소서.

왕자께서 노래하셨다. 목소리가 예전보다 성숙했다.

“약조하리라. 내가 약조하리라.

왕자께서는 궁으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셨다. 우비를 벗으시고 상의를 벗으시자 매끈한 등이 드러났다. 왕께서는 왕자의 등에 있는 흰사슴을 어루만지셨다. 왕자와 함께 자라온 흰사슴이다.

“변성기가 되면 사슴의 뿔을 그려준다고 했었지. 지금이 그 때인것 같구나.

왕자께서 자세를 고쳐 길게 누우셨다. 왕께서 먹바늘을 잡으셨다.

“아플지도 모르니 노래라도 부르면서 참거라.

왕자께서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셨다. 흰사슴의 머리에 한 쌍의 뿔이 돋아난다. 왕께서 한땀 한땀 새기실 때마다 흰사슴의 웅장하고 화려한 뿔이 휘고 가지가 생긴다. 한 마리의 당당한 숫사슴이 완성된다. 왕자께서는 그대로 누워 계셨다. 피부 속으로 먹물이 스며든다. 찬 밖으로 해가 떠오른다. 흰사슴의 젖은 몸이 마르고 뿔이 단단해진다. 태양이 젖은 땅을 말린다.

 

발특마의 치수시설들이 완공되고 등활의 관개공사가 시작되기 전날 진수화 제사장이 사망하였다.

“왕이시여, 진수화 제사장이 쓰러졌습니다. 의원의 말로는 곧 임종할 거라고 합니다.

왕께서는 소식을 전하러 온 사제를 돌려보내시고 곁에 있던 왕자를 돌아보셨다.

“네가 다녀 오거라. 진수화 제사장이 보고 싶어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니까.

진수화 제사장은 쓰러질 때도 지도며 도면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제사장은 죽기 직전까지 치수 공사에 광적으로 매달렸다. 왕은 손에 들고 있던 등활의 지도를 탁자 위에 놓으셨다. 진수화 제사장은, 신을 이긴 것일까. 두루마리 지도가 탁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진수화 제사장이 죽으면 이 공사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진수화 제사장이 방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테오게이아 신(수명을 관장하는 여신)은 끝내 이기지 못 했군. 유언이라도 남기셨는가?

왕자가 왕의 손을 꼭 잡았다. 따뜻하고 축축했다.

“신을 이기지 못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아무 것도 남은 게 없다고요.

저 거대한 둑과 제방과 저수지와, 저 드넓은 등활을 두고도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진수화의 곁에 남은 마니는 아무도 없었다. 범우형도 유소도 결국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 했다.

“또 뭐라고 하였는가.

“제게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나와 너 외에 네 문신에 대해 알고 있는 마니는 진수화 제사장 뿐이었지.

“그리고, 아버지를 찾으셨어요.

“나를 왜?

“참 잘 하고 계시다고요.

“냉소적으로 말이냐?

“아니요. 제 귀에는 진심으로 들렸어요.

“굳이 거짓말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제사장은 그런 말을 할 마니가 아니다. 단 한 번도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제사장이 왜 죽을 때가 되어서야…….

 

진수화 제사장이 임종했다는 소식에 마니족은 환호했다. 공사를 주도하던 제사장이 죽었으니 이제 공사도 끝나지 않을까 해서였다. 단상에 오른 왕을, 마니족은 간절한 눈빛으로 보았다. 왕께서는 그 눈빛들을 하나하나 보셨다. 피곤에 절은 눈빛들이었다. 왕께서 왕자의 입을 빌어 말씀 하시려던 순간, 폴리테이아 왕비께서 앞으로 나서셨다. 왕비도 공사의 핵심이셨다. 왕께서 주로 현장에 계시면서 진수화 제사장과 큰 틀을 잡으시고 공사를 진행하셨다면, 왕비께서는 주로 궁 안에서 사제들을 다스리시고 이론과 행정을 연구하셨다. 왕비가 나오시자 왕자께서 뒤로 물러나셨다. 왕비께서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셨다. 마니족의 기대에 찬 시선들이 왕비의 입술에 모인다.

“지금가지 치수공사가 이만큼 이루어진 것은 모두 마니족의 공이요 신의도우심이다. 그간 마니족이 굶주림과 노동으로 고생한 것을 신께서는 아실 것이다. 마니의 노고를 위로하고 성취를 자축하며 신께 감사드리기 위해 축제를 열 것이니 모든 마니들은 베틀에 실을 걸고 이 공사와 등활을 주제로 베를 짜라. 그것으로 축제를 장식할 것이다. 가장 훌륭한 베에는 상을 내릴 것이다.

왕이나 사제들과 단 한 마디의 상의도 없었다. 왕께서는 궁으로 돌아오시어 문을 걸어 잠그시고 왕비와 마주하셨다.

“왕비께서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십니까? 아직 우리의 목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등활 에 아직 물이 스며들지 않았습니다. 등활은 아직 농토로 쓸 수 없습니다. 여기서 수문을 닫으면 폭우 몇 번에 다시 홍수가 납니다.

“저도 잘 압니다. 왕비가 되고 나서부터 이 공사 외에는 마음 쓴 일이 없는 제가 왜 모르 겠습니까. 두고 보십시오. 저도 다 생각이 있으니.

“왕비께선 이 공사밖에 마음 쓸 곳이 없었다고 이 일을 방해하시려는 겁니까? 나에게도, 왕자에게도 마음을 둘 수 없어서 여자가 아니라 왕비로만 살았다고? 그래서 내게 항의하는 의미로 이 일을 중지시키려는 겁니까?

왕비는 왕을 곁눈질로 보시더니 피식 웃으셨다.

“저는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합니다. 공적으로는 협력자가 되어 드리지요. 사적인 감정을 이유로 공적인 일을 망치지는 않을 겁니다.

“왕비께서는 그 ‘사적인 감정’ 때문에 아니디아를 그렇게 대우하시는 겁니까?

“왕께서는, 왕자의 생모를 대했던 것에 비해서는 왕자에게는 끔찍하시군요.

왕께서 주먹을 꽉 쥐신다. 손찌검을 하시고픈 충동을 억누르시느라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진수화 제사장께서 제게 유소와 이데아에 대해 말씀해주신 것처럼 저도 언젠가 왕자에게 그 이야기를 해 줄 생각입니다.

왕께서 이를 악무시고 한 글자씩 끊어서 말씀하셨다.

“왕, , , , , , , , , , , , , , .

“왕께서도요.

 

진수화 제사장은 왕비께서 결혼하신 첫날밤에 왕비에게 유소와 이데아에 대해 말했다. 왕비께서 그 이야기를 들으시던 그 시간에 휘장 안팎에서는 왕과 유소, 이데아가 뒤엉켜있었다. 왕비께서 제사장의 방에서 나와 신혼 침실로 가니 왕께서는 아무 일 없이 계속 기다리셨다는 듯 침대에 계셨다. 왕비께서도 제사장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말씀하지 않으셨다. 알아서 뭐 어쩌란 것인가. 혼인을 신성시하는 마니족에게 이혼이라는 것은 처벌받을 만한 짓이었다. 간통은 은밀하고 이혼은 공개적이다. 왕비께서는 속으로 ‘나는 마니족의 왕비이지 왕의 아내가 아니다’고 수도 없이 되뇌이셔야 했다.

“왕이시여, 왕자가 왕께서 자신의 생모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면 어떨까요? 그 때도 지금처럼 부자 사이가 다정하진 않겠지요?

“입 다무시는 게 좋으실 겁니다, 폴리테이아 왕비.

“왕자를 그렇게 끼고 다니시면 왕자가 왕의 광기도 닮지 않을까요? 자기가 죽게 한 여자의 자식을 그렇게 애지중지 기르시는 그 광기를.

“왕비께서도 오늘 반쯤은 미치신 것 같군요. 나와 이렇게 사적인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니.

“제사장이 죽었으니까.

왕비와 왕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왕의 목소리가 가라앉으셨다.

“그래도 한 가지는 공감대가 있군요. 진수화 제사장에 관한 건. 지금 허무하시겠습니다, 왕비.”

왕께서는 왕비를 남겨 두시고 방에서 나와 왕자의 방으로 가셨다. 왕자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왕께서는 잠든 왕자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셨다. 이데아를 많이 닮은 얼굴이었다. 왕비가 정말로 왕자에게 다 말을 할까. 그렇게 되면 왕자가 왕을 증오하게 될까. 아니디아에게만은 미움 받고 싶지 않았다. 아니디아는 늘 왕의 곁에 있어주었고 왕을 가장 잘 아는 마니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왕이 어떤 마니인지 몰라서였다. 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왕자는 누구에게도 미움 받지 않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살게 하고 싶었다. 왕자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모두를 사랑하는 마니가 되었으면 했다. 그렇지만 왕비만은 왕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왕자가 왕비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아니디아는 거짓말을 했다. 진수화 제사장은 죽을 때 왕을 찾지도 않았고 잘 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 진수화 제사장이 한 번이라도 왕에게 참 잘하고 있다고 했더라면, 한 번이라도 왕 앞에서 무릎을 꿇었더라면, 왕 앞에서 범우형과 유소를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유소도 이데아도 왕도 왕비도 진수화 제사장도 서로 이런 식으로 얽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일까.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일까.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왕비께서는 왕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하루하루가 초조하고 불안해서 마치 칼날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은 나날들이 흘러갔다. 공사는 중지된 상태였다. 궁 안의 공기와는 달리 마니족의 마을에는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치수 공사를 멈춘 마을에서는 곡식과 열매가 영글고 베틀에는 실이 걸리고 저녁상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집집마다 무늬를 넣어 짠 결이 고운 옷감이 베틀에 걸렸다. 온 동네에 베 짜는 소리가 들리고 베틀가가 불렸다. 왕비께서 다시 마니들 앞에 나서시기 전까지는. 축제를 며칠 앞 둔 날이었다.

“베틀에 걸린 옷감을 잘라버리라.

마니족은 왕비의 말을 의심했다.

“왜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느냐.

그러더니 왕비는 직접 자신의 베틀에 걸려있던 베를 단칼에 잘라 버리셨다. 그리고 가장 잘 짠 베들을 잘라 버리셨다. 마니들도 베를 잘랐다. 베틀들이 엉망이 되었다. 왕비께서는 잘린 베의 끝자락에서 풀리는 실들을 망연히 바라보셨다. 전날 밤, 왕자가 말렸던 일을 기어이 해치웠다.

“제발, 베틀의 옷감을 끊지 말아주십시오. 제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내가 뭘 어떻게 할지 네가 어떻게 알고 이러느냐?

“부탁드립니다. 차라리 제 목을 자르시고 베는 자르지 말아 주십시오.

왕비가 무엇을 계획하고 있었는지는 어떻게 알았을까. 유소처럼 점이라도 친 것일까. 왕자는 무릎을 꿇고 왕비의 옷자락을 잡았다.

“나가거라.

“제발, 저도 뭐라고 설명드릴 수는 없지만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네가 뭔데, 네 까짓 게 뭔데 감히 나에게 이러느냐.

왕비께서는 왕자를 뿌리쳤고 기어이 베를 자르셨다.

“겨우 옷감 하나 자르는 것 가지고 왜 이러느냐. 이까짓 옷감보다 더 크고, 이보다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간 공사는 중지시킨 자들이.

공사가 재개되었다. 물이 등활로 흘러들었다. 마니들은 등활에 씨앗을 부렸다. 장마가 왔고, 저수지에 물이 찼다. 장마가 지난 추수철에 첫 수확을 했다. 그 드넓은 등활에서 마니족은 세상을 창조한 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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