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족의 7대 왕 아나트만-2

17년 8월

아나트만왕 재위 8년째 되던 해였다. 그때까지도 왕과 왕비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왕을 제외한 모든 사제들과 마니들은 대를 이을 왕의 자손을 내려 달라고 신께 기도드렸다. 왕과 왕비 두 분 다 젊고 건강하셨다. 왕께서는 왕비를 사랑하지도 않으셨지만 외면하지도 않으셨다. 왕께서는 왕비께 친절하셨다. 왕비는 알고 계셨다. 왕께서 침대에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시며 “대체 왜 그랬을까…….”하고 중얼거리시는 것을.

모두들 모르고 있었다. 아우라가 자살한 그 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 날 이후 아우라는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다. 아무도 아우라의 시체를 본 마니가 없었다. 왕께서는 마니족 기본 법률을 제정하셨다. 신성모독죄와 사제모욕죄가 특별히 무겁게 처벌되는 법이었다. 왕궁의 재산까지도 제사를 화려하게 올리고 작은 마을에까지 신전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이즈음에는 의원들도 치료를 하지 않고 기도만 할 정도였다. 마을에서는 아샤루카타이신을 모시는 마니들이 늘어났고 사제들은 아샤루카타이신앙을 탄압했다.

마침내 폭동이 일어났다. 마니 하나가 추수 직전의 평야에 불을 지르면서 폭동은 시작되었다. 마니족 평야에 불꽃이 파도처럼 넘실대며 밀려왔다. 마니들은 평야에 불을 질러 제물과 세금을 바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어차피 태워서 굶으나 제물로 바쳐서 굶으나 마찬가지였다. 마니들은 왕궁 앞까지 몰려왔다. 왕께서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으셨다. 왕손만 있었다면 사제들이 왕을 처단하고 마니들을 진정시켰을 상황이었다.

“왕이시여,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은 계시지 않았다. 왕비께서는 침실에서 미동도 없이 앉아 계실 뿐 아무 대응도 하지 않으셨다. 사제들은 왕궁과 신전 안을 샅샅이 뒤졌다. 사제들은 마지막 남은 곳을 화살촉으로 가리켰다. 궁궐 안 가장 깊숙한 곳. 휘장이 쳐진 그 곳. 사제들은 왕비를 끌어냈다. 왕비께서 침실에서 나오셨다. 왕비께서 휘장을 걷고 들어가셨다. 그곳에서 왕비는 보셨다. 부패되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아우라의 시신. 시신의 부른 배. 시신을 안고 계신 왕.

“대체 왜 이러세요…….

그제서야 왕께서는 왕비를 알아보시고 시신을 막아서셨다. 왕께서는 마치 넋이 나가 죽은 마니같으셨다. 왕의 입에서 음이 높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렸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탈루아가 몹시도 화를 냈던 일이 있었어. 화를 낼 때 언 제나 그랬듯이 이성을 잃고서는, 그 날은 물건을 막 집어던지더라고. 아우라한테. 아우라는 피하지도 않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서 있기만 했어. 그래서 내가 아우라 앞을 막아서 서는 탈루아한테 그랬어. ‘미쳤어? 미쳤냐고!’ 그 땐 사제에 대한 예법이고 뭐고 없었어. 근데 사실은 그 말, 아우라한테 하고 싶었어. ‘미쳤어? 미쳤냐고! 대체 왜 아무 것도 안 하는 거야? 대체 왜 이래?’ 라고. 하하하, 그냥 어렸을 때 그런 일이 있었어.

왕의 충혈된 눈이 젖어든다. 왕의 손등에 뼈와 힘줄이 도드라진다. 팔뚝에는 뼈와 가죽뿐이다. 옷이 헐렁하다. 왕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죽은 아우라에게 나누어 주시어 생명을 잉태케 하신 걸까.

“아우라, 말해 줘. 대체 왜 그랬어…….

왕의 몸이 아우라의 시신 위로 힘없이 내려갔다. 왕의 입술이 아우라의 입술에 닿는다.

“말해 줘, 아우라, 말해 줘.

왕께서 아우라의 입에 마지막 숨을 불어 넣으신다. 왕의 두 팔이 힘없이 늘어지고 두 눈이 감긴다. 그리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왕비꼐서는 스스로 어미의 몸에서 나온 아기를 두 손으로 받아 안으셨다. 아우라의 시신에서 물기가 빠져 나갔다. 왕의 시신도. 맞닿은 두 시신은 물기를 잃고 퍼석퍼석해졌다.

“왕이시여, 제게 말해 주세요. 대체 왜 이러신 건가요.

아기가 버둥대며 울었다. 왕비께서는 아기를 품에 안으시고 휘장을 걷고 나오셨다. 사제들이 휘장을 걷고 들어갔다. 왕과 아우라의 시신은 사제들의 눈앞에서 바스라져 가루가 되었다.

법도를 중시하셨던 아나트만왕의 사제답게도 제사장은 왕의 장례를 거부했다. 불륜을, 그것도 사제와 범하셨으니 사후에라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나마 사제들이 아우라가 설마 죽은 채로 살아있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아우라가 그곳에 쭉 살아서 은신해 있다가 사제들이 들이닥치기 전 죽었겠거니 짐작하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아기 왕자를 품에 안으신 바니타스왕비께서 호통을 치셨다.

“지금 하는 행동들은 선왕을 왕으로 예우하지 않겠다는 의도인가? 카르마왕의 후손께 이게 무슨 짓인가!

“왕비님이시여,

제사장이 왕비께 나직하게 말했다. 접견실 안에는 왕비와 제사장뿐이었다.

“선왕께서 카르마왕의 후손이 아니실 수도 있습니다.

제사장은 왕비께 어린 아이 가르치듯 차근차근 아나트만왕께서 사바왕의 핏줄이 아니라 유소 사제의 핏줄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 들었네. 그런 건 제사장들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건가?

“네, 왕비님.

다음 날 제사장은 독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아우라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독이었다. 아나트만왕께서는 아우라의 독과 같은 독을 구하시어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두고 계시었고 왕비께서는 그 사실을 알고 계셨다. 왕비께서는 왕자께 ‘마라’라는 이름을 주셨다. 아나트만왕의 장례가 치루어졌다. 겨울에 얼었던 강이 봄이 오면 녹듯이 왕의 사후에 지나치게 까다롭고 엄격하고 혹독했던 종교는 자연스럽게 마니의 마음을 위로하고 알 수 없는 문제를 설명해주는 원래의 기능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마니족의 질서는 종교와 사제들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아나트만왕 시절보다는 훨씬 나았다. 들에는 곡식이 영글고 나무에는 열매가 열렸다. 그동안 푹 쉰 땅은 이전보다 더 풍성한 수확을 안겨 주었다. 모두들 잘 살았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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