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괴담 마니아들이라면 ‘쿠네쿠네’ 괴담은 익히 들어보셨을 겁니다. 논밭이나 인적 드문 시골에서 춤을 추는 듯 몸을 배배 꼬는 하얀색 괴생명체. 어쩌면 이미 피크를 찍고 난 뒤 내리막을 걷는 괴담으로 여기실지도 모르겠네요. 쿠네쿠네 괴담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듣고 퍼뜨린 괴담이니까요. 쿠네쿠네 괴담 열풍은 제 기억 상으로도 약 5~6년 전에 한국에 처음 발을 들였습니다. 중학교 같은 반 친구가 쿠네쿠네를 언급한 것을 또렷이 기억하니까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 친구는 일본 괴담이나 서브컬처에는 관심이 없었는데도 말이죠. 이미 일본 괴담 마니아 판을 넘어 범-인터넷 상으로 퍼진 괴담이라는 의미겠죠. 그리고 그게 이미 5년 전이니, 이를 소재로 삼는다는 건 자칫하면 이미 한참 플로우가 지난, 소재로서는 철저히 철이 지난 것을 소재로 차용한 작품이 되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소재가 진부할 수는 있지만, 진부한 소재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 작품은 자칫 진부하고 루즈해질 수 있던 쿠네쿠네라는 소재를 작가님만의 센스를 녹여 만든 좋은 코믹 호러 작품이 되었습니다. 쿠네쿠네라는 괴담의 베이스는 잘 잡혀 있으니, 어떻게 간을 해 맛을 내는지에서 갈리는 승부였는데 그걸 잘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쿠네쿠네라는 괴담의 베이스라인은 꽤 조밀하게 잡혀있는 편이니 말이지요. 전체적으로 널리 퍼진 ‘쿠네쿠네’ 괴담의 특징들을 살펴보면,
● 하얀색 기다란 물체로
● 산이나 논밭, 경우에 따라서는 해변 등 인적이 드문 곳에서
● 구불구불한 몸으로 춤을 추고
● 멀리서 보면 괜찮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관찰하게 되면 그것을 ‘이해’하게 되고
● 그것을 ‘이해’ 하면 미쳐버린다.
정도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괴담이 제공하는 것은 기본적인 괴담으로서의 ‘베이스라인’일 뿐, 단편소설과 같은 형식의 이야기를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런 류의 글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기껏해야 엽편 정도의 짧은 펄프 픽션들만이 만들어지겠죠.
하지만 엄성용 작가님은 본작 「쿠네쿠네 롸이롸이」에서 작가님만의 상상력을 더해 쿠네쿠네라는 존재를 구체화하고, 어떤 습성을 가지는지, 그것이 작품 내의 상황과 어떻게 관계가 되는지 설득력 있게 그려냈습니다. 모든 흡연하고 싶어 애가 타는 대학생들을 유혹할 만한 ‘담배 피우기 아르바이트’가 왜 하필 담배는 마을 아무데서나 피우면 안 되고 산에 들어가서 피워야만 하는지, 왜 온갖 수상한 요구를 들며 담배를 피우라고 하는지, 흡연실은 왜 검은 천막으로 덮여야만 하는지. 모든 배경설정은 정확히 맞물리고, 아주 잘 쓰였습니다. 그 점에서, 이 소설은 고평가를 받을 만 합니다.
하지만 매력적인 배경 설정에 비해, 작품이 어떤 형태를 띠는지,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는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던 게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하는 작품의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어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꼭 작품을 열람하신 뒤에 읽어주세요!)
먼저, ‘연지’의 갑작스러운 전향입니다. 물론 연지가 주인공 ‘성식’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은 이해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강제적으로 키스하고, 자신이 미쳐버리게 할 가능성을 만든 사람임에도 그런 작업에 순순히 넘어갈 만 했을까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설명이 너무 부족하고, 그만큼 성의 없이 캐릭터를 조형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초반부, ‘경식’의 존재는 차라리 맥거핀이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실제 역할에 비해 비중이 과도하게 설정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중반부 미스터리가 증폭되는 시점에 문자를 보냄으로써, 산에서는 전파가 터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긴 하지만, 초반부의 비중으로 인해 기대되는 정도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빈약한 활약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스토리의 밀집성은 다소 떨어지며, 초반부에 사람을 잡아둘 수 있는 능력이 조금 떨어진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제가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일본 오컬트 및 괴담 마니아 영수의 설명을 듣고도, 사태가 얼마나 커질 지 모르는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하고 탈출하고자 꾀한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마을 사람들과 영수는 ‘쿠네쿠네’가 어떤 존재인지 상세하게 설명해줍니다. 이 작품에서 쿠네쿠네는 오염된 공기를 먹고 깨끗한 공기를 뱉어냅니다.(혹은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담배를 피운 사람은 이 쿠네쿠네를 보면 미쳐버립니다. 하지만 담배를 한 번도 피워보지 않고, 간접흡연도 하지 않은 사람은 쿠네쿠네를 봐도 멀쩡합니다. 미친 사람은 쿠네쿠네를 찬양하는 롸이롸이롸 하는 노래를 부르며 청기백기 춤을 추게 됩니다.
이 쿠네쿠네라는 존재를 마을에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 마을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마을의 깨끗한 공기라는 ‘이익’을 위해 쿠네쿠네를 잡아두고 있지만, 거꾸로 이것이 쿠네쿠네의 폭주를 막는 방파제가 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함이 드러납니다. 쿠네쿠네를 계속 마을에 잡아두는 이유를 일행은 훌륭히 추리했고, 탈출 계획을 만든 것 까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과연 탈출을 위해서 마을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면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고 있었을까요? 인물들의 무식(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었습니다. 작가님에 대한 공격으로 읽힐 수 있는 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이, 결국 더 큰 공포를 불러오게 될 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건 조금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좋은 작품이고 코믹 호러로서는 괜찮다고 생각됩니다. 네, 코스믹 호러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작품의 내용을 고려했을 때 코스믹 호러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여기에서 가장 큰 공포를 유발하는 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