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평등함과 유대감 공모(감상)

대상작품: 호적수의 우정 (작가: 아일랜드노벨153호,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2시간 전, 조회 7

이 소설은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독특한 형태의 연대감과 동질감을 그린 작품이다. 몽골과 고려, 침략자와 피침략자라는 대립 구도 위에 놓인 두 인물이지만, 보르테와 송우랑은 각자의 신념과 존엄을 가진, 적이면서도 서로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존재가 된다.

두 사람은 어떤 면에서도 접점이 없다. 한 사람은 세계를 정복하는 제국의 전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정복에 맞서는 약소국의 무장이다. 언어도, 문화도, 신앙도, 성별도, 싸우는 이유도 다르다. 그러나 칼끝을 맞댄 순간, 두 사람은 같은 것을 가리키고 같은 것을 느낀다. 상대의 칼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상대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결투는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두 존재가 가장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식이자 고도의 소통이다.

필자는 이런 것을 높이 사고, 글에서도 자주 보이고자 하는 편이다. 그 어떠한 접점도 없을 것 같은 상반된 존재 둘이 동시에 같은 것을 가리키는 기적같은 순간. 그래서 마무리는 조금 아쉬운 소설이었지만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조금 그래서 추가해보자면, 마지막에 [보르테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을 기다렸다. 오래간만에, 전장이 기다려졌다.] 정도로 끝마무리를 지었다면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싶기도.

필자의 소설 [칼 끝에 맺힌 사랑]에서 부부가 10년 넘게 칼을 맞대며 오히려 서로의 존재를 증명해가는 것처럼, 이 소설의 보르테와 송우랑 역시 그러한 역설 위에 서 있다. 전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행위가 동시에 상대를 온전히 인정하는 행위가 되는 것. 서로 완전히 달라서 접점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두 존재가 칼끝에서 같은 것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유대감이 싹튼다.

그 소통의 방식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격투가 끝난 뒤의 대화다. 보르테가 “그대는 무엇을 위해 싸웠소?” 하고 묻고, 송우랑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라고 답하는 장면. 이 짧은 문답은 두 사람이 칼로 먼저 나눈 대화의 언어적 번역처럼 느껴진다. 이미 상대의 검에서 그 신념의 무게를 읽었기 때문에. 송우랑의 검이 철갑 뒤로 틈새를 숨기고 체력이 소진될 때를 기다리던 인내심에서, 보르테는 이미 그가 지키려는 것의 크기를 느꼈을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보르테라는 인물의 내면이다. 그녀는 전장에서 동등하게 인정받기 위해 싸우는 여성이다. 동료도, 부하도, 심지어 아버지조차 자신을 때로는 도구로 활용할 뿐이지만, 오직 칼을 겨누는 적들만이 그녀를 “한 명의 전사”로 대우한다. 완안진화상의 회상 장면에서도 드러나듯, 보르테에게 호적수란 단순한 강적이 아니다. 세상 어디서도 얻기 어려운 진정한 평등을 건네주는 존재들이다. 송우랑이 웃통을 벗어젖힌 보르테를 향해 주저 없이 “아주 훌륭합니다”라고 감탄하는 장면은 그 점에서 묵직하게 읽힌다. 그는 보르테를 이성으로도, 적국의 아녀자로도 보지 않는다. 그저 전장에서 단련된 한 명의 전사로 본다. 보르테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리는 것은 그래서다.

전투 묘사도 좋다. 단순한 액션 장면이 아니라 각 인물의 전투 철학과 경험이 녹아 있다. 이도류의 체력 소모 단점, 곡도와 직도의 용법 차이, 철갑 상대 전법, 수박과 부흐의 대결까지, 고증을 녹여낸 서술은 몰입도가 높다. 그리고 그 디테일들이 단순한 볼거리에 그치지 않고, 두 사람이 서로를 읽어가는 과정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다.

소설은 세 번째 대결을 예고하는 열린 결말로 끝난다. 아쉬움보다는 여운이 더 크다. 전쟁이 끝나는 날, 적도 아니고 동료도 아닌 이 두 사람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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