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고 싶어 애써 USB에 모아놓은 것 같은 기록 감상

대상작품: 루세온 : 진실의 기록 (작가: 기록관리인, 작품정보)
리뷰어: 일요일, 3시간 전, 조회 9

같은 이야기라도 전하고자 하는 방식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이야기를 소설적 형식으로 보는 것과 이렇게 공식 문서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는 것은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루세온의 세계는 이미 상당히 넓다. <진실의 기록>만이 아니고 여러가지 단편들이 이미 발행되어 있다. 이전에 단편의 형식으로 만났던 루세온 이야기는 충격적으로 재미있었다. <우리가 먹지 못할 때>에서는 아직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 몰입감이 높았고 세계가 단순한 설정 몇개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탄탄한 설정을 기반으로 잘 쌓아올린 이야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단편이 이렇게까지 재밌었던 것은 <진실의 기록>과 같은 탄탄한 구성과 증거물로 구성된 이야기들 위에 쌓아올려졌기 때문이었던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루세온 바이러스와 관련된 설정의 상당한 부분을 <진실의 기록>에서 발견하거나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라는 클리셰에서 상황, 설정, 소재는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세계를 보는 해상도를 높이고 독자를 진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반갑다.

<진실의 기록>은 루세온이라는 인체감염증 바이러스에 관한 각종 기록이다. 대체로 한국식 공문서, 혹은 이런저런 문서의 형태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의 집합은 짧더라도 강렬하다. 그 안에는 대체로 문제의 핵심과 관련된 이야기를 집중하여 다루고 있다. 루세온 바이러스가 어떻게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그것이 법정 기록에는 어떻게 남았고 각종 보고서들에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지 등이 상세하게 담겨있다.

그 안에 사람들의 사적인 감정들도 바이러스의 이야기와 함께 전달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주된 내용이 아니다. 소설로 전달되는 이야기였더라면 아무래도 사건과 서사를 인간이 담당하게 된다는 점에서 바이러스가 언제나 주인공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고서에서 바이러스는 이야기의 중심에서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준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플러팅의 의미를 담아 전달하는 편지와 보고서에서도, 시시비비를 가리는 법정의 기록에서도 바이러스는 그 자체가 얼마나 거대한 사건이었고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사람들의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무게감있게 느끼게 된다.

이야기와 이야기의 사이에서 전해지는 짧은 증거였더라도 강렬하게 전해졌을 법한 이 각종 문서의 더미들은 마치 이 사건의 전모를 전부 캐내어 알고 싶었을 것 같은 기자가 집요하게 모아놓은 증거더미의 일부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젠가는 르포의 모습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이 이야기들은 내가 형사나 기자가 되어 이야기를 수색하고 추적해나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소설의 형식이 아니기에 더욱 파격적이고 아찔하게 느껴지는 내용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현실의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법한 모습으로 전달되는 것이 읽는 내내 몹시 흥미로웠다.

너무나도 즐겁게 읽었기에 루세온이 퍼져나간 세계에서 일어났을 많은 일들이 궁금하고 앞으로도 이어질 연재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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