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생일이 되었을 때, 선물을 고르며 많은 고민을 하곤 합니다. 이런 선물을 받고서 행여나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겠죠.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한 사람의 취향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힘들 테니까요. 충분한 숙고를 거친 끝에, 그것이 설령 인사치레에 불과할지라도, 일단 겉으로는 기뻐하는 친구를 보면 안심도 되고, 뿌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반대로 반응이 떨떠름하다면, 한여름날 냉장고에 넣는 것을 깜빡한 물병처럼 뜨뜻미지근하다면 기분이 좋지는 않겠죠. 그런데 만약, 내 선물을 받은 친구가 경악을 하고, 공포에 떨다 밤을 지새우게 된다면 어떨까요? 이 소설은 그런 불가해한 선물을 받은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은 전염병이 퍼진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보통 전염병이 걸린 사람이 격리되는 것과 달리, 주인공은 병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사실상 격리당한 상황입니다. 가족 중 홀로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즉, 주인공은 시작부터 갇혀 있는 셈입니다. 결국 안전과 건강을 위해 시골로 내려가게 되죠. 오랫동안 방치된 시골의 별장에서 지내던 주인공은 마침내 감금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까요? 그럴 것이라 기대한 주인공을 기다린 것은 아직도 감금이었습니다. 도리어 감금당한 이유도 모르니 상황은 악화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하겠습니다.
별장을 방문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오랜만에 찾아온 자유를 마음껏 즐겼지만, 그 자유는 얼마 가지 않아 기묘한 사건과 함께 끝나게 됩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별안간 별장의 문이 열리지 않는 지경까지 와버리게 됩니다. 이 모든 건 꿈에서 어떤 여인을 만나고 그녀의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됩니다. 별장에 사는 기이한 구렁이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주인공은 구렁이가 왜 자신을 괴롭히는지 고심하지만 답은 쉬이 내려지지 않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주인공은 이 별장의 존재조차 몰랐고, 구렁이는 실제로 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끝내 주인공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감금 사건의 범인이 구렁이가 정체를 드러내고 범행 의도를 밝힙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범행이 아니었습니다. 구렁이는 단지 은혜를 갚고 싶을 뿐이었거든요. 마치 방을 청소하겠다며 큰소리치더니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서 당당하게 칭찬을 요구하는 어린아이 같습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웃음을 지을 수도 있는 장면일 텐데, 주인공에게는 그렇지 못하겠군요. 영문도 모른 채 공포에 떨어야 했을 테니 그럴 만도 하죠.
이 소설에서 아쉬운 점은 만듦새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이 제법 눈에 밟힌다는 것입니다. 가령 줄 바꿈이 가독성을 망칠 정도로 반복된다든가, 줄 바꿈과 문단 구분이 혼재되어 가독성을 해친다든가 하는 점입니다. 나뉘어 있는 문장들을 하나의 문단으로 합치고 문단과 문단의 구분을 위해 줄 바꿈을 사용한다면 읽기에 더욱 편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에필로그도 더 길었다면 분량의 배분이 더 균등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구성은 훌륭하게 짜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호러 소설의 문법을 잘 따르고 있는데요, 주인공이 문제의 장소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입을 빌려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향후 이어질 전개를 미리 소개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점입니다. 제목이 ‘갇힌 자’이면서도 주인공이 갇히는 상황은 비교적 늦은 절반 이후에 등장하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부부터 이미 갇혀 있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점은 분량의 비중을 배분하기 위해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주인공이 공포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이유가, 단지 그가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잘해주었기 때문이라는, 그래서 은혜 갚기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반전은 충분히 익살스러우면서 공포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적절한 결말이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버지에겐 존댓말을 하면서 엄마에게는 반말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이는 아버지와 주인공이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면서도 격의 없이 친밀한 사이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별장은 친가 쪽 재산이니 별장에 기거하는 구렁이 또한 아버지와의 관계성이 적용되는 대상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구렁이의 호의가 주인공에게 닿지 않았던 것은, 충분히 친밀하지 못한 관계에서의 상호작용이 누군가에게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상황을 경험시켜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생일날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도리어 경악할 만한 선물을 받은 바로 그 친구처럼 말입니다.
인간 관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여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