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쓰는 슬랩스틱(slapstick) 코미디의 아쉬움 // 스포일러로 시작됩니다. 공모

대상작품: 케이크래 판타지아 (작가: 유권조, 작품정보)
리뷰어: 리컨, 19년 1월, 조회 56

“케이크래 판타지아”(이하 케판)는 비밀을 간직한 옹주와 가진 건 서투른 사랑 뿐인 소년의 우연한 만남이 주는 여운을 그리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의 “미래소년 코난”이나 “천공의 성 라퓨타”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케판은 남자 소년 주인공을 현대소년소년 코미디 로맨스물(?)에 등장할 법한 – 갑갑할 정도로 순박하고, 감정조절이 어려워 곧잘 들키면서도,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제대로 하는 건 드문 착한 문과생같은 – 작고 체력 좋은 심부름꾼으로 바꾸고, 신비한 능력을 가진 소녀 주인공을 굉장한 비밀을 가진 연상의 아가씨로 바꾸어 아기자기하고 순수한 풋사랑의 추억으로 변주하고 있다.

첫사랑은 대개 풋사랑이고, 풋사랑은 서투름으로 대변되는데 케판은 이런 서투름을 슬랩스틱으로 표현하고 있다. 말을 더듬거나 틀리거나 과도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옹주와의 만남에서 무릎을 꿇어야 편하다는 둥) 소년이 아주 순수하다는 걸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런 과장은 작품 전체적으로 자주 사용되게 되면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다. 순수하게 묘사되어야 할 캐릭터가 지겨워지거나 비호감으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 캐릭터가 순수하다는 건 초반의 한두가지 사건이나 몇몇 대화장면에서 충분히 드러났기에 그 이후로는 이런 순수함이 성장해가는 과정이나 역경을 극복해가는 자양분이 되는 스토리가 되는 것이 서사적으로 바람직할 것 같다.

아쉽게도 케판은 소년이 직접 만든 케이크에 “케이크래 판타지아”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소확행(!)을 수행함으로써 여정을 마치고, 언덕에 앉아 추억으로 간직하겠다는 밋밋하게 끝내버린다. 언제든 엉덩이를 훌훌 털고 일어나 옹주를 다시 만나겠다고 후속작을 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이쯤에서 작가가 언급한 서사의 구성, 인물과 대화의 자연스러움, 이야기의 재미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을 먼저 요약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세가지 요소들은 미성숙의 소년 캐릭터나 풋사랑의 추억에 과도한 집착으로 인해 희생당했다. (“개인적으로”를 두 번 연이어 사용했습니다. ^^;;)

작가분이 어떤 범주에서 “서사”를 언급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네이버 사전에 동음이의어가 많다. ㅡㅡ;;) 아마 “내러티브”와 비슷한 뜻으로 추측된다. 이 경우 캐릭터와 사건은 어떤 클라이맥스를 향해 방향성을 가져야 하고, 발생하는 사건들과 그 사건들을 겪게 되는 캐릭터는 개연성(자연스럽고 그럴싸해 보이는)을 가지는 것이 좋다. 16세 소년이 첫사랑을 경험하게 되고 끝내 좌절한다는 건 별 문제 없는 “서사”지만, 너무 많이 사용되서 너무 평범하다.

사건을 통해 위기나 궁금증을 유발하지 못하는 서사는 매력이 없다. 소년의 순수함에는 많은 문장, 동작, 대사들을 할애하지만 정작 사건은 “사건”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은 소소하거나 어설픈 상황극 수준이다. 임금님의 15번째 따님을 모시는 군병 스무명이 외지에서 옹주를 호위하면서 한자리에 우루루 모여있는 건 아예 군기가 없는 패망직전의 무능한 왕국이거나 고대 씨족사회일때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아림이 두번째로 여관에 갔을 때는 군병에 들켰으니 군기가 없는 건 아닌 것 같기에 더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임금님이 끔찍하게 아끼는 15번째 공주를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호위하는 경우, 공주가 안전한 마차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군병들이 건물 안의 위험인물이나 위험요소를 충분히 점검한 뒤에 눈으로 충분히 경계가 가능한 위치에 병사들을 자리잡게 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 같다. 이런 경우에 소년 주인공들은 지역민들만 알고 있는 루트나 방법을 통해 타지인의 눈을 속이고 들어가게 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본다. 아림은 여관 주변을 뺑 둘러싼 군병들의 눈을 피해 4층이나 5층 높이의 옆건물에서 길고 튼튼한 대나무 하나로 장대높이뛰기하듯 여관 옥상으로 올라가는 방식을 취해야 했을 것 같다. 장대는 여관 옥상과 옆집 옥상을 이을 만큼 길어서 골목으로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고, 발각되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돌아보는 군병들의 시선들 사이의 틈을 노려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손에 땀을 쥘 만큼 독자를 사로잡지는 못하겠지만 어설픈 느낌을 주지 않을 것 같다. 

인물이나 대사의 경우도 이에 못지 않다. “람”이라는 애칭을 가진 “람람”옹주는 임금님의 애지중지하는 15번째옹주다. 그런 옹주가 눈, 코, 입, 귀 뿐 아니라 양 발과 허벅지까지 묶여 있다. 

좋게 추측해 보자면 임금님은 람람옹주가 인어공주가 되길 원하는 것 같다. (ㅡㅡ;;) 뭔가 굉장한 비밀이 있을 것 같지만 떡밥을 깔아놓고 회수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 눈길을 끄는 건 시종들(?)의 반응인데 굉장히 무심하다. 자신들의 모시는 25살의 아가씨 옹주가 기괴한 취급을 받고 있음에도 걱정이나 측은지심 혹은 두려움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람옹주가 들을 수 없도록 한다는 설정이 있더라도 아림이 시종들의 대화를 엿듣는 장면을 넣어 독자들이 상황을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도록 배려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시종도 별 관심이 없고, 군병들도 철저히 지킬 생각이 없어 보이는 25세의 옹주가 눈가리개, 코마개, 재갈, 귀마개를 한 체, 발목과 허벅지가 서로 묶인 채로 여행을 다니는 상황은 무슨 상황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람에게 건네는 대사는 아주 자연스럽다. 오히려 자유롭게 생활하는 아람의 대사는 캐릭터가 자멸하는 수준이다.

람람옹주와 마지막으로 만나는 장면에서까지 말을 더듬는 건 말더듬이이거나 무능이다. 게다가 더듬는 대사를 통해 개그나 재미요소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지만 이런 슬랩스틱스런 대사들은 좀 유치한 감이 있다. 현실에서는 저런 사람이 있겠지만 소설에서는 저러러면 이유가 있거나 납득할만한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 바람에 독자에게 숨긴 람람옹주의 귓속말이 별로 궁금해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리뷰공모와 관련한 약간의 모순이 있다. 만일 이 작품이 100부작으로 기획된 장편 판타지 모험소설의 도입부라면 납득할 만하다. 이런 답답하고 순진한 소년이 운명적인 첫사랑을 찾는 모험 끝에 이렇게 변했어요라는 엔딩이라면 초반은 이렇게 답답해도 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리뷰공모에 대한 상세한 기준을 제시해서는 안됐었다고 본다. 헛점으로 보이던 대부분의 요소들이 대미를 장식할 설정으로 엮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뷰공모를 했다면 서사, 인물, 재미를 점검해 보기보다 일차적인 감흥이 완결된 것인지 뒷얘기가 궁금해질만한지를 묻는 대략의 감상을 요청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만일 이것으로 완결된다면 매력없는 남자주인공의 밋밋함에 돋보기를 들이댄 중단편 작품쯤 될 것 같다. 다만, 작가는 이런 남자주인공에 뭔가 매력이 있다고 판단하거나 굉장한 애정을 가진 것 같다.

이 작품의 이야기 재미는 하층민 소년과 왕족 옹주의 애틋한 사랑이었다가 될지 어떤 모험을 통해 어떻게 이루어질까하는 차이라고 보여진다. 옹주의 들려지지 않은 속삭임과 소년이 상단과 만나면서 케이크래 판타지아의 레시피를 되새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래소년 코난”처럼 체력만 좋은 이 소년이 모험을 떠나게 될 것 같긴 하다. 이야기의 재미는 그 모험담을 봐야 조금이나마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다.

“유권조”작가는 적극적이고 실험적이면서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작가로 추측하고 있다. 이번 중단편 리뷰공모는 이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보다 다른 무언가를 테스트해 보고 싶은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대하장편 판타지 소설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면 좀 웃길 것 같긴 하다. 아니면 500골드에 리뷰가 달리는 양을 측정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리뷰공모에 투자되는 골드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골드를 할당해서 얻고 싶은게 뭔지가 더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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