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런트> 감상 공모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에런트 (작가: 이동건, 작품정보)
리뷰어: 선작21, 19년 1월, 조회 35

제 TMI로 리뷰를 시작해보죠. 저는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 ‘저는 소설을 고등학교때 처음 쓰기 시작했습니다’ 라고 하지만, 사실 그건 거짓말입니다. 전 제 소설을 초등학교 시절에 처음 썼습니다. 왜 그걸 숨기냐고요? 님들 같으면 그걸 공개할 수 있어요? 여하튼, 그 때 이후로 고등학생까지 소설에 손도 안 댔으니 어느정도 맞는 거라고 둘러대기는 할 수 있겠군요.

조금 멋대로 짐작해보자면, 이 글은 아무래도 작가님이 처음 쓰신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작품은, 혹은 진짜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후회 없는 글’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글은, 한 몇 달 지나고 보면 문제투성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가장 처음 쓴 글’은 다들 각별한데,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그건 개개인에게 있어서 흑역사 덩어리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흑역사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톨킨도, J.K. 롤링도, 김훈도 다자이 오사무도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를 인용하자면) 우리와 똑같이 귀 두 개에 손 두 개인 사람들입니다. 뭐? 첫 작품으로 데뷔를 했다구? 그런 인간은 없습니다. 야구장에서 하늘 보고 작심해서 등단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뒤져보면 대학생 때 집필 활동 많이 했습니다. 처음부터 매끄럽게 쓰는 인간은 없는 겁니다. 그건 노력 없이 성공했다는 소리와 똑같거든요. 오히려, 저는 그 분들이 자신의 첫 글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첫 글입니다! 첫번째로 자신의 상상을 적어놓은 글이라고요! 대단하지 않아요? 작가로서의 첫 발을 뗀, 상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인 겁니다. (물론, 생리적인 거부감은 어쩔 수 없긴 하죠. 당장 저도 제 첫글을 네이버 카페 깊은 곳에 파묻어두었습니다. 지금쯤 폐쇄되지 않았으려나, 그 카페…)

몇 년 뒤에 작가님이 이 글을 다시 보시면, 이 글이 매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이 글의 퀄리티가 절망적이라고 파묻으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접시의 모양이 다르다고 내용물이 허접한 게 아닌 것처럼, 글의 외향적 모양이 다르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상상까지 폄하하는 것은 – 특히나 그 상상이 ‘첫 발자국’이라면 – 옳지 않은 겁니다. 그러므로, <에런트>는 좋은 글입니다. 개선점을 말씀드리기 전에 이 부분을 확실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글의 모습이 썩 좋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작가님도 공감을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즐겨찾기가 저조한 부분도 작가에게는 그다지 즐거운 징조가 아니죠. 왜 그런 걸까요?

글을 면접에, 상상을 면접자의 퀄리티에 비교해보겠습니다. 면접을 볼 때 중요한 건 면접자의 내용이 아니라 면접자가 자신의 ‘내용’을 ‘어떻게 잘 전달하는가’에 있습니다. ‘글의 퀄리티’라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적 상상력을 어떻게 전달하는가, 가 중요한 부분이 되겠습니다. 저는 비루하고 못난 작가, 번번이 낙방하는 면접자지만 – 그래도 조금 조언을 해 드리자면, <에런트>는 기본적 토대를 탄탄히 다지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 글의 기본적 토대는 무엇일까요. 면접이라면 바로 옷차림에 해당합니다.

대기업이라면 정장을 입고 가겠죠. IT면 조금 널널하고, 스타트업이라면 완전 프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때와 장소에 ‘어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족이 길었는데, 줄이자면 맞춤법에 신경쓰시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깃털’을 ‘기털’으로, ‘발뺌’을 ‘발뻄’으로, 띄어쓰기에 유의하지 않는 작은 디테일 하나 하나가 독자에게 나쁘게 작용하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예, 귀찮습니다. 저도 귀찮아요. 문창과도 안 나왔는데 그런 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지만 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요. 맞춤법은 모든 글의 토대입니다.

그리고 또, 시나리오라면 지나칠 수 없는 다른 토대가 하나 더 있습니다. 면접으로 치자면 발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나리오를, 상상 속의 세계를 전달하는 구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글의 구조를 조절해야 합니다.

독자는 기본적으로 작가 속의 세계의 주민이 아닙니다. 독자가 세계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단계의 조절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고유명사, 고유 설정의 사용 빈도입니다. 소설은 영화, 만화, 게임이 아니라 비주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쿠아맨>이나 <반지의 제왕>같이 압도적인 오프닝 비주얼로 독자를 몰입시킬 수가 없다는 소리입니다. (이것도 사실 진짜 고수분들은 할 수 있습니다만… 아직은 미뤄두도록 합시다.) 즉, 우리는 독자분들을 천천히 몰입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고유명사의 사용 빈도를 줄이고, 이미 있는 설정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이미 있는 세계의 재활용 – 즉 소위 말하는 구파일방으로 알려진 ‘무협지 세계’ , 헌터와 게이트의 ‘현대 판타지 세계’, 반지의 제왕 풍의 ‘정통 판타지 세계’같이 독자 분들이 이미 숙지하고 있는 배경이 아니라면 잦은 고유 명사와 알지 못하는 설정의 서술은 몰입을 방해합니다. (본문 안에서는 세례명이 있는 삼천 개의 영혼 같은 게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자면, 글의 첫 문장을 신경써서 써 주세요. ‘제국력 xxx년’을 도입부로 쓴 소설은 많지만 성공한 소설은 아주 드뭅니다.


기본만큼 힘든 것도 없습니다. 기본, 기본 하니까 기본이 검정고무신 기봉이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진짜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기본이 제일 힘든 겁니다. 재밌는 건 그런 사람들도 정작 자기 분야에 가면 기본 연습하느라 뼈빠지게 힘들어 합니다. 농구 선수들은 자유투를 몇천 번씩 던지고, 프로게이머들은 미니언을 몇천 마리씩 죽이고, 음식점 하시는 분들은 같은 메뉴만 몇천 접시 만들죠. 작가도 똑같이 같은 문법, 같은 언어로 몇천 문장을 써 갑니다. 구성과 맞춤법을 체크한다, 말만 쉽지 이것만큼 힘든 일도 없습니다. 제 공부법좀 봐주실래요? 라는 질문에 ‘국영수 위주로 공부하십시오’ 같은 대답입니다… 저도 좋은 리뷰어는 아니군요. OTL.

제 경험으로 말씀드리자면, 책을 많이 읽는 게 도움이 됬습니다. 웹소설보다는 순문학이나 고전 판타지 위주가 좋았습니다. 대가들이 어떤 식으로 책을 시작하는지, 어떤 식으로 문장을 구성하는지, 단순히 보는 것 만으로도 배우는 게 많았지요. 먼저 간 선배들이, 먼저 면접에 합격한 합격자들이 어떻게 면접을 봤는지 책이라는 ‘녹화 영상’을 보면서 연습합시다.

<에런트>는 좋은 글입니다. 이동건 작가님의 글을 나중에 메인에서 마주할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그 때까지 작가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작가님 글이 메인에 올라가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냐고요?

그 때가 되시면 건투가 아니라 질투할 겁니다. ㅂㄷㅂㄷ… (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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