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소설을 좋아한다. ‘전쟁’을 하는 소설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중에 일어난 사람들의 극한 이야기가 언제나 마음에 와닿기 때문이다. 극한의 상황이 되면 모두 자신의 안위를 위해 가식을 던져 버린다. 화장하지 않는 민얼굴을 볼 수 있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가슴 아프지만 오랫동안 천착해 읽었다. 자신이 사는 곳에 사람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자신과 아들만 살아있다는 사실도 끔찍한 생존현장이지만, 시체들이 나뒹굴고 언제 어디서 나를 물어올지 모르는 것 또한 극한의 상황에 직면한다.
<네버랜드> 속 주인공인 ‘한겨울’은 일행들과 떨어져 홀로 생존 중이다. 무서운 한파가 오듯, 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좀비들이 올까봐 오들오들 떨고 있다. 마지막 양식을 아껴가며 먹고 있다가 옆에 온 고양이에게 자신의 양식을 조금 떼어 줄까, 말까 고민하는 심성을 가진 소년이기도 하다. 긴 고민 끝에 고양이에게 비스켓을 조금 남겨주었고, 겨울이 생각하는 고양이의 외양과 달리 먹이를 먹고 나서는 거침없이 뛰어 달아났다.
고양이의 보은이랄까 홀로 생존 할 수 없었던 그는 옥상에서 목숨을 끊으려 하지만 고양이로 인해 우연히 재이를 만나게 된다. 홀로 생존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 나약한 자신을 구해 줄 천사같은 그녀에게 겨울은 재이에게 매달린다. 그러나 그녀는 겨울을 구해 주었을 뿐 함께 동행 할 수 있는지에 대해 확신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몸을 떨며 재이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낸 겨울을 가까스로 재이를 비롯해 대장 ‘선우’, 장의원, 최소위, 경호와 함께 그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
언제 어디서 뛰쳐나올지 모르지만 그들은 요새 같은 농장 ‘네버랜드’ 속에서 그들은 불안한 마음 속에서도 평온하게 지낸다. 몸은 편안하지만 늦게 합류한 겨울에 대한 싸늘한 눈초리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특히 장의원은 어디가든지 소리가 나는 인물이었고, 언제쯤이건 한방 터트릴 것 같은 인물로 그려진다. 죽으면 끝이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다시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좀비물은 언제 읽어도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라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극한의 상황을 맞이하고, 몇몇 생존자간의 혈투는 늘, 영화나 드라마 책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익숙한 이야기였고, 싸움 조차도 경중이 다를 뿐 가볍고 격한 격투들로 인해 자신의 몫을 더 챙겨나가는 인물들을 악하게 그려낸다. 그 대척점에 선 인물이 주인공인 이야기.
재이에 대해 말하자면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사람을 파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자주 사용하는 한 가지는 그 사람에 대해 먼저 알게 되는 것들로 그 사람을 정의하는 거다.
예를 들면, 장의원은 앉은 자리에서 자기 자랑을 오십 번쯤 하는 사람이고, 최소위는 재밌어 보이는 걸 하루에도 오십 개쯤 마주치는 사람이고, 경호는 길을 가다 위험해 보이는 게 오십 개쯤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재이는 싫어하는 것보다 오십개쯤 먼저 알게 되는 사람이다.
그들을 지켜줄 농장에서의 평온함이 깨어지고 평이했던 인물들은 회차를 거듭하면서 색채를 더해간다. 언제 그들이 들이 닥칠지 모를 생존의 재난 현장이 더 급박해져 온다. 각각의 색깔이 드러나면서 보여지는 생존의 본능 속에서 나는 어떤 얼굴을 드러내고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한사람님의 작품을 읽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각각의 이미지들이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데 재이는 강단있으면서도 알쏭달쏭한 인물이고, 대장인 선우는 이야기가 자칫 선과 악의 대립 사이에서 묵직하게 중심이 무너지지 않도록 잘 잡아주고 있다. 장의원은 속빈 강정처럼 여기저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내실있지 않는 행동을 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 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또다른 에피소드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킨다. 좋은 쪽이든 좋지 않은 쪽이든.
현재 5장을 끝으로 1부 이야기는 끝이났다. 그들이 요새를 잃고 함깐 일행들도 잃어버린 상황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생존의 이야기를 이어갈지 궁금하다. 2부에서는 조금 더 다른 생존 본능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더 깊이 진전되기를.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면 좀비 이야기에서 보여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다르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