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했다. 노란색이 굴러다녔다. 또 술향기가 났다.’
서두에서의 안식처에 대한 묘사는 감각적이다. 시각과 촉각 그리고 후각으로 형상화되는 공간은 새로운 감각을 환기시킨다. 이는 각각 독자적으로 볼 때 죽은 비유의 언어로써 상투적이고 자동화된 언어지만 병렬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일상어로부터의 일탈을 보여준다. 이런 일련의 흐름들은 안식처라는 공간을 별다른 표현 없이 구체화하면서 파뷸라(이야기 재료)가 플롯으로 조립될 토대를 마련한다.
고블린의 존재는 산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공격, 방해하는 지시적이고 개념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고블린의 존재는 과거와 현재의 정치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토대이기도 하다. 그런 암시 속에서 외연과 내포는 새로운 형상화로써 종합되며 긴장을 형성한다.
그렇게 시작된 고블린의 왕비를 납치한다고 진술하는 음유시인의 진술에는 거짓과 진실이 혼재되어 있다. 단지 ‘들은 이야기로써’ 이야기에 신빙성을 찾아야 할 구석은 어디에도 없으며 단지 돈 몇푼에 기대는 흥미만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것이 일견 타당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고블린이라는 대상이 폭력적이고 절도를 일삼는 존재로써 성격이 일관성 있게 묘사되기 때문이며, 그로써 인물의 행동에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이런 초점들이 성립하는 까닭은 작가가 선별한 진실이 구조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납치된 왕녀의 생활 양상에 대해서 의외의 사실이 밝혀진다. 그녀의 생활이 일견 자유로우며, 그녀를 구하러온 마법에게 자신은 생각보다 자유로운 입장에 처해있고, 되려 상황의 위험성을 알리며 되돌아가라고 말한다. 비록 구조에 대해 수긍하긴 하지만 그녀의 태도는 비참한 상황에 처해있을 것이란 추측과 이질적으로 대립하고, 융합되며 아이러니를 생성한다.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통과하는 것은 공포를 동반한다. 그리고 그 공포의 근원에는 야만과 폭력에 대한 환상이 잠재되어 있다. 비록 ‘인간의 말’을 하는 이전 세계의 잔재가 그녀를 위로하지만 크게 소용은 없어보인다. 그런 ‘전락’의 과정에 대해 작가는 인물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규정하며 이전 세계 역시 야만과 폭력이 잠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그 것의 근원을 우리는 추적해 들어가야한다.
고블린 사회에서 고블린들의 여왕으로 ‘전락’한 그녀는 성스러운 의무인 ‘밭’을 일구게 된다. 그리고 고블린 사회에서는 그런 문명생활의 기초를 그녀만이 전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타성에 젖어 다른 이들의 관계에만 종속된 궁정 생활과는 다르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본디 땅은 풍요이자 여신으로써 상징한다. 이 과정은 원초적인 세계로 환원되는 과정이다.
야만성을 추동하는 원질적인 욕망이다. 그러나 그 것은 순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순수하기에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원질적 세계이기도 하다. 폭력과 비폭력을 구분하는 고블린들의 사고는 그 틀 위에 성립된 폭력적인 지배적인 구조를 포착한다. 그러나 고블린 세계의 번영은 역설적으로 한 여인이 자신을 되찾으면서 실행하는 최초의 폭력에 의해 실현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사실인가. 여왕의 범해졌다는 사실에만 골몰하며 희롱하기에 바빴던 사람들은 폭력적인 구조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하는 아둔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고블린들이 학살하는 제노사이드는 피의 현현이 아닌 정화의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줄곧 거짓과 진실이 혼재되어 있던-판단할 수 없었던-극중극 이야기의 진실은 만천하에 밝혀지며, 또 다른 극을 침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