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스하이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런닝맨 Running man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루돌프, 18년 6월, 조회 41

이 작품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희솔의 생일에 벌어진 재앙에 관한 이야기다. 그 재앙은 전염력이 있는 좀비의 출몰로 이 작품의 장르는 호러, 스릴러 중에서도 좀비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좀비라는 소재는 영화, 드라마, 웹툰, 게임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공포 캐릭터이다. 좀비가 등장하는 작품들마다 좀비의 설정은 각양각색이지만 크게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주인공(일행)에게 시련을 주고 성장시키는 장치이다. 이런 유형의 작품들에서는 좀비는 비록 강력하지만 파훼법이 존재하며 주인공은 고난과 역경 끝에 좀비들을 물리치거나 혹은 그들에게서 살아남아 희망의 상징이 된다.

반대로 주인공(일행)에게 끝없는 절망을 안겨주어 인류가 멸망하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런 유형에서는 좀비는 극복불가능한 대재앙으로 인류의 잘못에서 비롯된, 죄악의 결과물, 심판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개 좀비물에서 좀비의 발생 원인으로는 바이러스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원래 기원은 부두교 흑마술이다). 이조차도 자연발생, 혹은 돌연변이,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실험의 부산물과 같은 다양한 설정을 두고 있다.

좀비얘기를 마무리하자면 좀비물에서 이야기는 좀비라는 캐릭터의 성격상 좀비의 등장으로 인해 인물들이 겪는 고난, 그 원인분석, 극복 혹은 패배(멸망)라는 구조를 필연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많은 작품들은 인간vs좀비라는 메인 갈등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인간) 간의 갈등, 세계와의 갈등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도외시 할 수 없는 갈등의 종류 하나가 윤리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좀비라는 재난상황에서 법치는 불가능해지고 세상은 아노미상태에 빠지게 된다. 좀비를 죽여도 되느냐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나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하지 않음에도 힘만 있으면 약자에 대한 생살여탈권까지 지니게 되는 모럴해저드는 다양한 갈등의 양상을 창조해낼 수 있어 꼭 쓰인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도 이러한 ‘윤리’의 문제가 여럿 등장한다. 먼저 ‘나’인 김은호는 사고로 하반신마비를 겪고 있는 장애인이다. 비장애인이던 때에 장애인들을 멸시했기 때문인지 현재 자존감이 매우 낮은 상태이며 이런 나에게는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엄마’가 있는데 이런 모자를 사람들은 비난한다.

좀비가 등장하는 극한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이미 윤리의식을 잃어버렸다. 나에게 사고를 안겨다준 희솔은 자신의 입장을 중요시한 탓에 대상이 친구임에도 뺑소니를 쳤으며 그녀는 노래방을 빠져나온 뒤에도 혼자 도망치다 죽음을 맞는다.

은호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불행이 엄마 탓이라 여기며 엄마를 ‘지적 장애인’도 아닌 아이, 즉 ‘저능아’ 취급을 하며 비하한다. 장애인으로서 겪는 불만을 표출할 곳 없는 은호는 마침내 모든 사건의 전말이 알려졌을 때 생명이 위협받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신을 나락으로 몰아넣은 당사자에 대해 격한 분노를 표출한다.

그런 그가 노래방을 빠져나와 엄마를 찾아가는 나가 맞이한 도로는 세기말의 풍경 그대로였다. 작가는 이런 세기말을 맞이한 인간의 심정을 욕설섞인 자조적인 대사로 표현해낸다. 뿐만 아니라 숨만 붙어 있다면 좀비받이로 쓰는 경찰의 비인간적인 면모까지. 이 부분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오히려 운신이 부자연스러운 장애인들을 좀비받이로 쓰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잔학성을 강조하는 데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으로 순서가 조금 바뀌긴 했지만 이 장면 이전에 나오는 비유들과 설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다.

먼저 비유다. 작가는 다른 작품에서도 그렇듯 풍부한 비유를 통해 감각적인 묘사를 자주 선보인다. 그러나 호러, 스릴러에서는 인물의 대사나 행동에 따라 약간씩 바뀌기도하지만 공포라는 작품의 큰 분위기를 어떻게 끌고가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비유도 어디까지나 정황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집중해야지 부차적인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은 사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쥬라기공원에서나 들을 법한 공룡 울음소리”와 같은 표현은 인간이 내지 않을 법한 포효를 잘 묘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염자 수가 물가 치솟듯 솟구쳤다가”나 “갖가지 죽음의 형태들이 건조대에 널린 광경이었다”와 같이 감염자와 물가, 시체와 건조대의 이미지는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있어 다소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다른 적확한 표현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편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설정의 문제이다. 용인사태는 좀비가 최초로 등장했고 희솔의 부모님이 피해를 입은 시기이다. 이 때문에 희솔은 급하게 차를 몰다 사고를 냈고 그 피해자가 은호이니 용인사태=나의 사고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작품 초반부에 노래방에서의 희솔의 대사인 “그러고 보니까, 우리 이렇게 나와 있어도 되나?”와 이어지는 말은 용인사태가 가까운 과거 혹은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뒷부분을 보면 “그런 현상이 3개월 넘게 계속 이어지다가”라는 말에서 용인사태가 최소 3개월 전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척추가 다쳐 하반신마비라는 큰 장애를 앓게 된 내가 3개월의 요양을 했을리는 만무하다. 따라서 저 3개월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용인 사태가 일어나고 3개월 뒤 수습이 됐다는 말일 것이다.

결정적인 단서는 복지관에 도착한 나의 말을 통해 주어진다. 화장실에서 “여자처럼 이렇게 앉아서 오줌을 눈 지도 몇 년 째”라는 말을 통해 사고가 최소 몇 년 전의 일임이 드디어 밝혀진다.

복지관에서 마주친 친구가 전해준 말, 그리고 경찰들의 행동은 작품이 후반부에 접어들었음에도 은호vs경찰(다른 세계)이라는 새로운 갈등양상을 열어보인다. 특히 경찰들이 왜 포대자루에 엄마를 담아 이동 중이었는지는 끝까지 미스테리로 남는다. 그래서 좀비들이 득시글거리는 세계에 던져진 장애인이 주인공인 이야기의 인트로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발각되지 않기 위해 숨고 안도하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을 수용하고자 하는 양가적 감정에서 혼란스러운 주인공. 그런 그가 살기 위해서인지 죽기 위해서인지 밖으로 달려나간다. 은호는 데드포인트(사점)에서 그칠까 사점 뒤의 세컨드 윈드까지 맞이할 수 있을까. 분명한건 지금 그는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믿는 것들(사고의 원인, 엄마)로부터 해방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인생의 어느 트랙에서나 끝을 향해 달리는 자는 아름답다. 그것이 파멸일지라도. 은호의 완주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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