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G 독자들을 위해 특별히 쓰여지고 은밀히 감춰진 핏빛 기밀자료들 감상

대상작품: 재난 관리청 특별기밀자료들 (작가: 김병식, 작품정보)
리뷰어: 글풍풍이, 6시간전, 조회 6

20개의 나폴리탄 괴담, 규칙 괴담이 담긴 옴니버스입니다. 서로 다른 설정과 환경, 등장인물이 나오는 독립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멋진 괴담집입니다. 나폴리탄 괴담이 무엇인지 잘 몰라도, 커뮤니티를 떠도는 매뉴얼 형식의 괴담은 다들 한번씩 읽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작가님은 그 괴담을 일정한 톤에 맞추어 양적/질적 확장을 이뤄냈습니다.

단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극도로 제한된 정보 아래에서 주인공이 겪는 기이하고 잔혹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매뉴얼 스타일, 지침 스타일, 편지, 게임, 일지 등 아주 다양한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전체적으로 비슷한 톤이지만 다채롭습니다. 황당한 설정도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의 일상이나 미디어를 통해 한번씩 겪어봤을 베이스 위에서 시작합니다. 덕분에 모든 이야기가 어느정도의 깊이가 있지만 바로 몰입할 수 있는 코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읽으며 굉장히 감탄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환경, 지금 발생하는 사건, 상황 묘사가 자극적이면서도 건조하여 굉장히 사실감과 현장감이 있습니다. 특히 규칙 괴담의 형식상 이미 발생한 일을 후술하는 서술형태가 많은데, 섬뜩하면서도 공포스러운 일들이 큰 설명 없이도 아주 잘 전달되고 그 의도적으로 비워둔 공간에 독자의 상상력이 들어가 이야기를 더욱 끈적끈적하고 다크하게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즐겁게 봤던 이야기를 조금 추려보겠습니다. ‘도쿄의 한 호텔 새벽 두 시 객실 전체 TV에 방영된 방송.’ 은 얼마전에 봤던 악마와의 토크쇼가 생각나는 이야기로 기묘함과 익숙함이 어루러지는 컬트적인 느낌이 좋았습니다.

‘거성대교의 흰색 SUV에 대한 재난관리청 기록.’은 코스믹 호러가 담긴 듯한 글입니다. 게임 ‘컨트롤’이 생각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디스토피아 물로도 느껴지는데 고립된 환경에서 임무를 향해 달려가는 그 고립감이 좋았습니다.

‘실종된 정선현 군의 방에서 그의 어머니가 발견한 편지들.’ 는 저의 최애작품입니다. 편지 내용은 심플하고 설정도 단순하지만 짧은 편지에서 잔혹하고 끔찍한 일을 전혀 묘사하지 않음에도 짐작을 통해 편지를 둘러싼 많은 인물들이 겪었을 끔찍한 일에 대해 상상하게 되는, 음습한 한기로 뒤덮힌 작품입니다.

‘“벽 속의 조선족들”이라는 제목의 일지.’ 는 익숙한 설정이지만 침입자와 거주자의 위치가 전복되어가는 에너지의 흐름이 너무 좋았습니다. 주인공이 겪는 압박감과 회한, 수용에 대한 감정이 짧은 글임에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너무 흥미진진했습니다.

특별히 작가님의 단편집을 추천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요. 메타적인 관점에서 보면, 양질 장르문학이 넘쳐나는 브릿G에서 별사탕 같은 분위기를 제공하고 환기하여 집중력을 높여주는 훌륭한 이야기이기 떄문입니다. 비슷한 류의 글을 많이 보다보면 물리는 감이 있는데 ‘재난 관리청 특별기밀자료들’은 글읽기의 지루함을 덜어내고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어 너무 즐거웠습니다. 브릿G에 너무 잘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작품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의 연재작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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