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사랑하는 이들이여 감상

대상작품: 도서연체의 말로 (작가: 유우주, 작품정보)
리뷰어: 난네코, 2시간 전, 조회 7

독서를 사랑하는 이들이여

 

 

 

 

난네코

 

 

 

 

1. 도서 연체라는 죄

도서관을 애용하는 독서가들에게 있어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삼한의 여러 나라에서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드리던 소도(蘇塗)와 같은 중립 구역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무공을 뽐내는 10대들이 즐비한 학교라는 강호에서 도서관만큼은 유일한 불가침의 중립 구역입니다. 제 학창 시절을 회고할 때면 도서관이라는 별읍(別邑)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내성적인 학생들이 교실이라는 야생에서 벗어날 수 있던 유일한 도피처로 기억됩니다. 이는 학교라는 강호에서 도서관이란 무(武)와 협(俠)이 한뜻 안에 머무는 무림이기에, 진정한 대협은 도서관에서 하찮은 무공을 행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설령 학교 도서관 내에서 소협이 자신의 조잡한 힘을 행사하더라도 ‘사서 선생님’이라는 검황(劍皇)의 제지가 있습니다. 도서관은 소란 행위를 용서치 않는 중립 구역으로서 그 누구도 무공을 선보이지 아니합니다.

그런데 소란 행위보다 더 용납될 수 없는 불법 행위가 있습니다. 바로 ‘도서 연체’입니다. 누가복음 19:45-46에 따르면, 예수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며,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며 나무랐습니다. 도서관의 책을 연체하는 행위는 불법입니다. 도서관의 책은 도서관의 소유물이자 인류의 공동 재산입니다.

그러므로 도서 연체는 도서관의 책을 강제로 빼앗은 행위입니다. 대한민국의 형법에서는 이런 불법 행위를 저지른 자에게 벌을 내리도록 명시되어 있습니다. 곰인형과 보냉백과 인형의 집이 주인공에게 행사한 납치, 감금, 모범적인 독서인으로 재교육시키는 합법적인 행위 및 처벌 집행은 적법합니다. 불법의 앞에 평등은 없습니다. 단 1일 연체라도 도서 연체는 도서 연체입니다.

저 역시 고등학생 시절에 도서부장을 맡을 정도로 독서를 사랑했으며, 대학생 시절과 대학원생 시절엔 학교 도서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던 사람입니다. 도서관에서 연체로 인해 원하는 책을 빌리지 못하고 하염없이 기다릴 때 얼마나 무력함을 느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예약 대출을 걸어 놓고 매일같이 책의 반납 여부를 확인하던 마음은 결국 분노로 바뀌어 도서를 연체한 자들에게 무공을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파의 법도가 아니기에 그런 폭력을 사용할 생각은 버렸습니다.

제가 읽고 싶은 책을 누군가가 도서 연체하면 반납하길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곤 도서 반납을 잊어버려서 도서 연체를 한 학생들은 높은 확률로 해당 도서를 분실했습니다. 그럴 경우 사서 선생님이 도서 연체자나 도서 분실자들의 목록을 만들어서 그들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지 못하게 제한을 걸어 놓으셨습니다. 『도서 연체의 말로』는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거나 비슷한 심정을 가진 분들이라면 통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2. 문학의 메타적 상호 텍스트

『도서 연체의 말로』는 독자에게 단순히 감정을 공유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독서 경험을 나눌 것을 요구합니다. 납치, 협박 등의 소재들로 충분히 공포 소설이나 추리소설 쪽으로 분위기가 흐를 수 있었으나, 이 작품은 텍스트의 향연을 정신없이 펼치며 독자에게 웃음과 매력을 선물합니다. 이 작품에선 다양한 장르의 도서들과 잡지들이 언급됩니다.

『꽃과 뼈』, 『양들의 침묵』, 『서바이브 더 나이트』, 『브이 포 벤데타』, 『살육에 이르는 병』, 『폭풍의 언덕』, 『소나기』, 『마지막 잎새』,『위저드 베이커리』, 『스노우맨』, 『점성술 살인 사건』, 『드래곤 라자』, 『이기적 유전자』, 『호모 데우스』, 『넥서스』, 『택견의 기술』, 「해리 포터 시리즈」, 「관 시리즈」, 『개구리』, 『아프니까 청춘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계간 미스터리》, 《스켑틱》. 또한, 작중에선 ‘정교하게 만들어진 벨트’, ‘잔인한 살인이 벌어지는’, ‘나는 단수가 아니다!’, ‘혼다 데쓰야 소설을 읽는 놈치고 제정신인 놈이 없다’, ‘기다림으로 점철된 여러 소설’, ‘논리적 추론 능력이 상당하군. 애거서 크리스티의 독자다워’, ‘앨러리 퀸 전권을 읽은 사람다워’, ‘분서갱유 체험’, ‘데미안의 구절’, ‘페코짱’, ‘앎의 힘’, ‘디어스토커 모자를 쓰고 런던 베이커가 221B 앞에 당도했을 때’, ‘원래가 그런 세상이라고. 좋은 사람도 사람이고. 나쁜 사람도 사람이고. 우린 그냥, 사람일 뿐이라고’, ‘김난도 지음. 프롤로그.’, ‘기억하라. 너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등의 문장이 인용됩니다.

『데미안』의 내용 중에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얼굴이 성인 남자의 얼굴이며, 단순히 외형이 어른스러운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훨씬 성숙하다는 사실을 인지합니다. 이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불안함에서 탈피한, 혹은 해탈한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싱클레어 역시 작중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극복하고 이겨 내며 어른이 됩니다. ‘알을 깨고 세계로’라는 작품의 명문장은 이를 함축적으로 제시합니다. 『도서 연체의 말로』에서도 이 문장은 다소 코믹하게 변주되는데, 불안으로 점철된 감금 시설에서 안정적인 바깥으로 나가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데미안』의 독서 경험을 놓치지 않고 옮겨 낸 듯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은 『데미안』을 포함하여 이 모든 장르의 독서를 가리지 않고 잡식성으로 읽은, 1급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된 독서가입니다. 독서 인구는 보호종인 가는동자꽃 혹은 귀이빨대칭이와 동급이라는 작중의 묘사처럼 희귀합니다. 따라서, 1일 동안 도서 연체를 저지른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주인공은 희귀한 멸종 위기종이라서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체벌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 무엇이 있겠습니까? 바로, 읽지 않는 분야의 책을 강제로 읽게 하는 것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자기계발서는 주인공의 막대한 독서 아카이브 목록에 들어가지 않은 카테고리입니다. 읽기 싫은 도서류를 억지로 읽게 하는 끔찍한 형벌은 독서가의 영혼과 정신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처벌이라고 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유우주 작가님의 『도서 연체의 말로』를 20번 넘게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이 작품은 독서를 매우 사랑하지 않으면 쓸 수가 없는 소설입니다. 양고기도 못 굽는다고 질책받고 ‘책책박사’라고 조롱당하면서도 먹고 자는 욕구 따위는 모조리 잊고 탐독(耽讀)에만 빠져 있는 너, 나, 우리, 모두에게 바칠 만한 작품입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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