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말하자면 정체성 스릴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제목을 쓰고 보니 “인간 시리즈”라고 떡하니 박혀 있기도 합니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예전에 읽었던 [내 최애 아이돌의 수상한 고백] 시리즈의 신작인가 싶기도 했어요. 인간이 되고 싶은 산업 로봇 ARP-200의 이야기인데, 그 동기가 최애 아이돌을 더 잘 응원하기 위해서인 거죠. 인간으로의 “개종”을 위해 법적 권리와 의무에 바탕해 ‘허가’가 필요하고 그 허가가 있어야 유기질 의체로 신체 개조를 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재미있는 설정입니다. 어디까지/어디부터가 인간인가 하는 오랜 질문을 어느 조직이 실행하고 있는, 하지만 신뢰하긴 어려워 보이는 허가로 대체한 것 같았어요. 시험을 마치고 나온 수험생처럼 ARP-200은 대답을 잘했나 자문하지만 이야기는 산뜻하게 허가서를 받은 두 달 뒤로 날아갑니다.
오히려 허가서를 받자 신체 개조를 받는 게 맞나 망설이는 마음(?)이 들고, 그래서 더 인간에 가까워졌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최애 아이돌인 지유가 찾아오고, 조금은 전형적인 음모론 스릴러의 막이 오릅니다. 이제 ARP-200은 음모의 한가운데 떨어진 개종 직전의 당사자로서, 개종의 목적을 목전에서 상실한 로봇으로서, 단서들을 모으고 추론을 정리해 지유와 자기의 원수를 찾아나섭니다… 추적과 협상, 숨겨둔 계책이 번갈아 나오는 과정이 읽기 퍽 즐거웠습니다. 실존 아이돌을 쉽게 연상케 하는 아이돌의 이름과 주인공이 집어든 새 이름도 웃음이 나오는 부분이고요. 인물들이 나누는 다소 철학적인 대화들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다만 지유가 제거된 상태에서, 맞서 싸울 상대로 그를 지목하는 마지막 문장은 성급히 마무리하는 느낌도 들어 조금 아쉬웠습니다. 인간의 삶이 좀 그런가 싶기도 한데… 여튼 란마가 된 ARP-200은 어찌 지내고 있을지 뒷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인간 시리즈를 좀 더 찾아 읽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