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사이버펑크’ 장르는 가장 큰 적을 두고 탄생했답니다.』
2.『위협에 고문 받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3.『그럼에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의미 있는 발버둥이죠.』
4.『‘신인류’라는 이름에 도달하기 위해….』
<본 리뷰는 “VONN”님으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작성한 리뷰이며, 리뷰가 올라가는 시점까지 연재된 회차 분을 전부 감상한 후 작성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1.『‘사이버펑크’ 장르는 가장 큰 적을 두고 탄생했답니다.』
흔히 ‘환상(Fantasy)’으로 대표되는 특정 장르들의 탄생에는 당대 기술로 구현 불가능한 배경의 확장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면, 이 ‘사이버펑크(Cyberpunk)’라는 장르는 단순히 배경의 확장 이상으로 실질적인 ‘위협’이 깔려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지점입니다. 기술의 발전과 전환에 따른 위협,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선두를 주도하는 기업에 대한 위협, 그런 발전의 끝에서 몰락을 경험할지도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수많은 창작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죠.
인간 사회는 언제나 새로운 기술을 경계해왔습니다. 그것이 가져올 이득과 손해를 끊임없이 따져보며, 더 먼 미래에 끼칠 영향에 심도 있는 고민을 나누기도 했죠. 그런 경향은 이 장르를 다룬 수많은 작품들에서 바탕이 되는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적 삶의 몰락’이 대비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당연히 고도로 발전된 문명에서 많은 것을 누리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짐에도,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비천해진 인간들의 모습은 마치 삶과 권리를 잃어버리고 만 디스토피아(Dystopia)나 다름없습니다. 인간사회의 기술적 발전에 후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면, 마치 보이지 않는 출구로 내달리는 듯한 불안의 감각이 이 장르를 이끄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이번에 읽은 <탈피 : 신인류 문명서사>(이하, <탈피>)라는 작품 또한 이런 고도로 발전 된 미래 문명을 배경으로 하되, 그런 기술의 발전으로 나타난 위협에 시달리는 인간들을 그리고 있는 ‘사이버펑크’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갑니다. ‘코어(CORE)’라는 계급으로 주거지역이 나눠진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는 이 소설은, 정체불명의 실험체에 의한 살인사건을 조사하게 되는 1부를 건너, 모종의 음모로 부모를 잃고 형사가 된 주인공 ‘태오’가 본격적으로 ‘코어(CORE)’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조사하게 되는 2부와 3부로 그 이야기를 확장하는 중입니다. 간혹 전체적인 함의에 치중한 나머지 현실적인 개연성을 놓치거나, 거대한 배경에 비해 생략되는 묘사들로 힘을 잃는 등 소설의 기술적인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하지만, 마땅한 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 하고 쇠락해버린 인간들의 사회를 실감나게 조형하며 독자들을 사로잡는 매력만큼은 독자로서 높게 평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자면, 3부 10회차까지 진행된 현재 시점에서 저는 부제에서 언급된 ‘신인류’에 걸맞은 소재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하지 못 했습니다. 분명 작품 내에서는 비인도적인 실험과 그에 따른 피해들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것이 ‘신인류’라고 명명할 수 있는 신화적인 바탕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감평문에서는 현재 작품 내에서 묘사되고 있는 인물과 사건의 구조 및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를 구현한 듯한 배경에 대해 초점을 두고 의견을 나눠볼까 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내용은 일개 독자의 주관적인 감상에 불과합니다. 혹여 불편한 내용이 있더라도, 앞으로 작가님께서 받으실 수많은 감상 중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위협에 고문 받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앞서 ‘사이버펑크’라는 장르의 탄생에는 미래와 기술에 대한 위협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언급했던 만큼, 그 공식에 애정을 표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또한 인간들에 대한 위협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AI의 발전과 정보의 통제로 대표되는 현실 사회의 불안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작품의 소개 자체도 그런 방향으로 잡히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작중 인물의 대사로 드러나는 이 세상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로 데이 이전, 인류는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급속도로 발전했지. AI는 이미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었고, 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였네. 그래서 모든 국가는 AI를 권력으로 삼았지. 더 나은 AI를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반도체가 필요했네. 그리고 결국…… 2140년. 전쟁이 터졌지. 우리는 그걸 ‘반도체 전쟁’이라 불러. 혹은 희토류 전쟁.”
다만 ‘반도체가 필요해서 전쟁을 벌였다’는 배경은 어디까지나 배경상식 정도로만 다뤄지는 편입니다. 이 배경의 개연성을 따지자면, 외교 관계로 복잡하게 얽힌 현 시대의 세계질서가 어떻게 전쟁을 벌일 정도로 이기심이 극에 달했는지와 같은 정보가 동반될 필요가 있습니다. AI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시대에 다다랐는데, AI를 만들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는 것도 썩 모순되는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런 설득력의 여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 사실 이 작품에서 AI의 발전에 대한 위협이란 부수적인 것, 혹은 무시하고 지날갈 만한 맥락적 배경(Lore) 정도로 느껴지는 감이 있기에 독자로서는 이 위기감 넘치는 설정에 동기화되는 것이 힘든 편입니다. 실제로 그런 AI에 대한 정보들을 거의 머릿속에서 배제했음에도 3부에 이르기까지 스토리 전개 면에서 사건적인 걸림돌이 거의 없는 편이었던 것도 그런 감상의 근거 중 하나였습니다.
눈에 띄는 위협은 더 보편적인 인간의 사회로 집중됩니다. ‘코어(CORE)’라는 이름의 주거지가 그것이죠. 눈에 띄는 ‘코어’에 대한 언급을 살펴봅시다.
카터의 눈이 가늘어진다. 제로데이 이후 모든 가축의 반입은 금지되었다. 하지만 특권층이 사는 CORE 1에는 여전히 동물이 남아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곤 했다.
CORE에서의 물 절도는 중범죄다. 보통이라면 CORE7 추방 조치가 내려질 사안이다.
“그런데 엔지니어면 최소 코어3이나 4에 거주하셨을 텐데, 어떻게 코어 7에 계십니까?”
“지금 코어 7은 행정 자체가 마비된 무법지대입니다. …(중간생략)… 쉐도우는 코어 7의 거주 체계를 다시 세우려 합니다.”
작중에서 묘사되는 배경인 ‘코어’는, 말 그대로 ‘계급’의 형태화입니다. 1에서 7까지 나눠진 거주지에 따라 거주민들의 지위가 바뀌고 생활이 바뀌는 것을 노골적으로 강조하고 있죠. 물과 음식조차 배급이 없으면 해결하지 못 하는 열악한 환경인 것은 당연합니다. 언급들을 보면 개인의 능력에 따라 거주지가 오를 수도, 혹은 내려갈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이 거주지 전체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일단은 그 경계에 대한 해석 자체가 모호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게 됩니다. 가령 최상층과 최하층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에서는 이동이 자유로울 수도 있다, 혹은 공무를 맡는 이들에 한해 움직일 권한이 생긴다, 같은 규칙들을 가정해볼 수 있겠죠. 작중에서 CP라는 치안업무를 맡는 직종이 등장합니다만, 이들의 권한과 제약이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짐작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이런 사회적 시스템의 디테일이 무시되거나, 소설 밖 현실의 모습을 인용하는 수준에서 그치곤 하는데, 만약 이런 부분들을 더 세심하게 보충할 수 있다면 몰입감의 농도가 극명히 높아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인물들의 시점이 맞춰져 있는 ‘코어7’입니다. ‘코어7’은 이 주거지의 가장 최하층이며, 희생을 강요받게 되는 유배지나 마찬가지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 내막에는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작중 등장인물인 ‘린’의 사정에서 그 음모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 코어 엔진의 심각성을 보았네.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신핵융합 발전. 사실 그건… 검증되지 않은 이론뿐이었네. 전쟁으로 인해 게이트를 닫아야 했고, ‘일단 닫고 나서 마무리하자’는 식이었지.”
“코어6, 코어7… 공시, 수질, 폐쇄 생태계. 우리는 이미 살 수 없는 구역을 운영하고 있었던 거야.”
“… 코어6과 7의 폐쇄 이전 계획을 추진하려 했지. 사람들을 이전시키고, 이 구역 전체를 비활성하려 했어. 그리고 최고위원회 설득을 시도했지. …(중간생략)… 역부족이었지. 그들은 내 가족을 볼모로 삼았고, 나를 코어7으로 보내 감시 아래 두었네.”
한 마디로, 코어6과 코어7은 거주지의 기능을 잃은 지 오래이지만, 누군가의 의도로 그 형태만은 유지하도록 만들고 있으며, 그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진실에 다다릅니다. 작중에서 ‘코어7로 추방했다’는 언급들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일종의 상위계층에서 수용할 수 없는 불온한 존재들을 버리는 매립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실 독자 입장에서 ‘고도로 발전된 AI’나 ‘세상 모든 정보를 보존해주는 B-pod’ 같은 이야기는 줄거리 내내 머릿속 밖을 겉도는 내내, 이 ‘계급사회 Core’와 같은 이야기에 대해서는 주제도 이미지도 명확하게 다가오는 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던 ‘보편적인 인간사회’의 모습을 익숙하게 재현했기 때문입니다. 현 시대에서도 거리가 먼 이야기는 아닙니다. 당장 38선 위쪽으로 특권계층을 수도에 배치하고, 변두리로 그 생활수준이 급락하는 현상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굳이 이웃나라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라는 말을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일곱 단계로 나눠진 주거지라는 이미지야 크게 낯설 것도 없습니다.
이런 익숙한 이미지 속에서 망가지고 낙오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상당히 생생한 편입니다.
2부에 이르러서 집중되는 배경인 ‘XENO’ 수용소 또한 이런 계급사회의 연장선이자, 가장 밑바닥에도 빛이 들지 않는 구석이 있다는 말을 구현하는 대표적인 지점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교정시설에 가깝지만, 그 실상에서는 사람끼리 유흥을 위해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지는 무법지대이며, 살아남는 것이 최선의 가치로 여겨지는 인간 사회의 극단으로 정의됩니다.
“여긴 심판도 없고 룰도 없어. 살아남는 놈이 이기고, 관중한테 호응 받는 놈이 올라가는 거다. 그 외엔 다 의미 없어. 여기서 잘난 스포츠맨십 같은 건 없어.”
주인공은 모종의 이유로 이 수용소에 잠입했다가, 그 실상 속에서 어릴 적에 통조림 하나를 두고 다투는 일이 당연했던 아동보호시설을 겹쳐보는 등, 인간사회의 그늘 자체가 묘사된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 내면에는 코어7을 지배하는 조직의 핵심 시설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이런 주제적인 측면이 빛바래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적어도 선과 점으로만 묘사되지 않는 사회의 너비를 구현한 것은 상당히 인상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고도로 발전된 나머지 부작용으로 망가진 사회’로 인한 피해에 대한 결과에 해당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결과물 자체가 ‘고도로 발전된 나머지 부작용으로 망가진 사회’ 자체에 어울리는 고찰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면에 서린 조직의 음모라는 소재를 제외하고 보자면, 마약과 폭력으로 점칠 된 수용소의 모습은 쇠락한 어느 지역의 시설이라고 가정해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보편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이런 ‘보편적 이미지’에 집중하는 순간, 그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 또한 익숙한 이미지로 단순화됩니다. 2부부터 본격적으로 구체화되는 ‘더스트’라는 이름이 마약은 코어 최하층 주민들을 좀먹는 요주의 소재로 대표됩니다.
더스트는 이곳에서 돈이었고, 숨이었으며, 다음 싸움을 위한 연료였다.
“최근 코어7 전역에 가짜 더스트가 돈다는 소문 들었겠지? …(중간생략)… 이게 가짜 더스트다. 우리 물건에 싸구려 화학 찌꺼기를 섞어서 싼 값에 팔고 있더군.”
“이곳에선 물 카드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죠. 기회가 될 때마다 조금씩 모아두세요.”
“그것은 더스트 그린 농축액. 시중에 유통되는 알약의 몇 천 배 효과를 가진 고농축 액체였다.”
“지금 제가 있는 제노 수용소는… 아니, 코어7은 B.M.G에 장악됐어요. …(중간생략)… 수용소 자체가 그들의 아지트이자 조직 양성소입니다. 코어 전체에 퍼진 마약 ‘더스트’ 또한 이들 것이고요.”
“Z-Dust. 더스트라고 불러. 부작용도, 금단도 없어. 몸을 망치는 대신– 오히려 강화시켜주지.”
작중에서는 꾸준히 ‘마약’으로 정의되고 있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단순 ‘마약’으로 취급하기에는 그 무게감이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마약 그 자체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범죄자가 등장하는가 하면, 그 마약이 곧 화폐나 다름없는 가치를 갖는다는 묘사가 등장하고, 그 마약을 신봉(?)하는 사이비 종교가 등장하는가 하면, 더 나아가 이 마약을 전문 제조하고 힘을 얻기 위해 개조까지 이르는 조직의 실체가 공개되면, 더 이상 ‘마약’으로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로 변질됩니다(물론 애초에 본질 자체가 마약으로 소비될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는 인식은 주고 있습니다). 이 조직 내부에서 인간을 괴물로 개조하고 있는 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작중에 등장했던 괴력을 발휘하며 외형이 기괴하게 뒤틀려버린 주민들 또한 이 마약의 영향이라는 추측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정독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사이버펑크’라는 장르 특유의 고차원적인 기술과 쇠락한 삶의 대비라는 주제의 감각은 적은 편입니다. 그것은 이 ‘코어(Core)’라는 사회의 속성에서 비롯되는데, 이 사회는 주거민의 삶이 일곱 단계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현재 시선이 집중되는 하층민 입장에서는 그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것 이전에 혜택을 관찰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상상으로 조형된 미래도시로서 이점을 살리는 것이 불가능한 환경이라는 의미입니다. 작중에서 가장 최상층이 코어1이 함부로 발을 들이는 것 외에 그 실체를 확인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고 있다는 듯한 암시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의도된 가림으로도 느껴지지만, 결국 독자 입장에서는 관찰되는 묘사를 바탕으로 이 세상을 더듬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출생 기록과 가족 이력이 전혀 없습니다. Z.Y 20년 이후의 기록들 뿐이에요. 그 이 전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 같습니다 …(중간생략)… 제로데이(Zero Day) 이후에 행정망이 꼬여서 한두 가지 정보가 누락되는 경우는 봤어요, 이렇게 통째로 비어 있는 건 처음 보는군.”
그럼에도 이 작품 내에는 보편적인 범죄들을 들춰낼 때 번뜩이는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1부의 핵심이 되는 사건이 그것입니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에게 살해당하는 사람들과, 그 가운데 얽혀 있는 공백에 가까운 인물은, 모든 정보를 통제한다고 믿는 이 진화된 사회에서 불청객이나 마찬가지라는 인상을 주게 됩니다. 더 나아가, 소설은 그 불청객을 암막에 감춰진 용의자로 놔두지 않습니다. ‘리트’라는 가명으로 숨어 살고 있는 현재를 묘사하며 동정과 공감을 유도하는 등, 그늘뿐인 세상에서 또 다른 그늘로 숨어들 수밖에 없는 사정을 지적하기에 이르고 있죠. 이에 독자들은 인물의 사정에 집중할수록, 이 코어라는 도시의 비정상성에 함께 주목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소설적 구상에 대한 감각이 충분하다는 증거입니다.
다만 이런 요소들은 사건으로 연쇄되지 못 하고 순간의 ‘키(Key)’로서 작용하며 사라지는 감이 있습니다. 이것이 큰 그림 하에서 복선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집약한다는 중심설정을 두고도 그것이 다음 장면을 위한 이음새로만 작동하거나, 삽화처럼 끼워 넣은 사전지식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실제로도 3부 초반을 넘어가고 있는 작품의 진행 상황을 따져보면, 앞서 지식처럼 제공했던 설정들이 모조리 증발한 채 진행되고 있습니다. 태오의 머리에 심어졌다는 AI ‘노바’ 또한 1부와 2부를 통틀어서 언급도 거의 되지 않을 정도로 텅 비어 있던 설정에 가까우며, 태오 본인의 과거를 찾는다는 소설의 시놉시스에도 불구하고 한철승과 같은 그의 조부에 대한 것 또한 행적과 영향에 대해 언급되는 것이 전부라 소설이 진행될수록 그 설정의 무게감은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만약 그런 설정들이 머릿속에서 배제된 채로도 소설이 진행되는 것이 가능했다면, 처음부터 없어도 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 다다르면, 이 세계에 대한 조형은 두 개의 사회와 설정을 편리한 방식으로 맞물려 놓았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 배경에는 AI, 전쟁, 음모, 통제와 같은 각종 설정들이 놓여 있지만 자리만 지키고 있는 부속지에 가까우며, 오히려 그것들을 배제하고도 작동할 수 있는 계급사회에서 밀려난 빈민가, 그리고 그 빈민가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경찰과 범죄단 및 지하조직 자경단 같은 이야기들이 뼈가 선명한 감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활동하는 주인공 ‘카터’와 ‘태오’와 같은 인물들이 개인의 욕망 보다는 선과 정의 같은 추상적인 가치에 집중하는 어떤 ‘영웅’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도 이런 뼈를 굵게 찌우는 이유에 한 몫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태오가 팔을 자르는 장면 등은 인간적인 공감이 배제된 초인으로서의 면모가 강조되는 편입니다.
어떤 독자에게 이 ‘코어’라는 세상은 극도로 쇠락하고 축소된 고담1에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영웅과 같은 존재가 축을 부여잡고 있어야만 숨을 쉴 수 있는, 그런 어두운 세상 말이죠.
3.『그럼에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의미 있는 발버둥이죠.』
여느 창작자들은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그에 대한 설득력을 걱정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그 세계에 관한 설득력은 배경설정의 완성도 이상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비롯되는 편입니다. 범죄율이 높은 사회에서 외출 때마다 호신용품을 몸에 지니는 주민들의 모습이나,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여 각종 생필품들이 그 가치를 대신하는 장이 열리는 모습들이 그런 설득력 있는 세계의 예시로 떠오르죠.
이 작품에서도 ‘코어’라는 계급사회의 최하층을 누비고 다니는 인물들의 모습을 조명하며, 그 세계의 설득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주인공으로 지목되는 형사 ‘카터’와, 그의 뒤를 이은 ‘태오’가 그런 인물들이죠. 이 인물들의 조형 정도가 얼마나 완성도 있는가는 논의할 수 있겠으나, 사실 그들에게 맡겨진 역할을 떠올리면 입체적인 인물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 내가 코어 패트롤이 된 건, 정의롭고 싶어서였어. 이사회의 명령이 아닌, 진짜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이 대사는 CP라는 집단에 속한 인물의 진심으로, 어쩌면 이 두 사람이 속해 있던 CP라는 집단의 기본적인 속성일지도 모릅니다. ‘정의’라는 가치를 순수하게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은 ‘영웅(Hero)’의 대표적인 속성입니다. ‘카터’ 그리고 ‘태오’도 그 결을 함께 합니다. 언제나 옳은 일을 선택하고, 힘든 일을 선택하지만, 그것만으로 울림을 만들도록 설계된 인물입니다. 누군가는 그런 행동들의 배경에는 사건과 자극에 맞춰 움직이는 인형적인 행동에 불과하다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냉정히 말하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런 반응에 충실하기 때문에 이 둘 만의 문제로 치부하기는 힘듭니다. 다만 그런 설계 때문에라도 독자들은 이 둘을 살아 움직이는 인물 이전에, 이야기를 쫓기 위한 카메라와 같은 역할로 다루게 됩니다. 가장 올바른 곳에 위치하여 주변을 관찰할 수 있는 또 다른 눈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이 속한 ‘영웅’이라는 집단입니다.
“지금 코어 7은 행정 자체가 마비된 무법지대입니다. 쉐도우가 거처를 마련하고는 있지만, 유입 인원이 늘어나면서 포화 상태에 이르렀죠. 우리에겐 구역을 재정립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전문가가 절실합니다. …(중간생략)… 쉐도우는 코어 7의 거주 체계를 다시 세우려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오직 하나. 세상과 싸우기 위함이 아닌, 서로를 돌보고 지키는 것.”
“쉐도우는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끝이야.”
‘쉐도우’라는 집단은 그런 이타적인 집단의 대표로 묘사됩니다. 어떤 의미로 그들은 피해자입니다. 모종의 사정으로 ‘코어7’이라는 밑바닥으로 유배된 이들은,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감시당하며 간혹 제거당하고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이런 집단의 탄생에는 스스로를 돌보기가 힘든 나락에서 무력한 서로를 보듬기 위한 발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현재는 그 내부로 향하던 결속이 코어 내부의 긍정적인 변화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는 이들이 ‘그림자(쉐도우)’를 자처하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그런 영향을 거부하는 특정 존재로부터 눈을 피해야하는, 그들의 처지를 암시하는 명칭이겠죠.
‘숨을 쉴 수 있다는 건… 아직 죄책감이 남아 있다는 뜻이야’
‘그래. 나는 오늘도, 내 손으로 만든 독을 팔아 목숨을 이어가고 있어.’
저 괴물들을 만든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야.
문가에 멈춰 선 카이라의 눈에 6년 전의 슬픔 따위는 더 이상 없었다. 가짜 치료약을 빌미로 자신을 이용하고 어머니의 목숨을 저울질했던 남자에 대한 증오만이 남았을 뿐.
당장이라도 그를 죽이고 싶었지만 …(중간생략)… 밉고, 죽이고 싶고, 무엇보다 소름끼치게 무서운 괴물.
‘카이라’는 이런 영웅의 속성에 부합하지는 않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선명하게 고민과 갈등을 행동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오와 카터로 대표되는 집단이 ‘영웅’으로 대표된다면, 카이라는 ‘영웅이 되지 못 한 이들’의 대표격으로 해석됩니다. 그녀는 수용소 ‘XENO’에서 ‘박사’라는 호칭을 받은 채 살고 있으며, 그 내부를 거점으로 삼고 있는 범죄조직에게 실험능력을 제공하며 연명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작중에 등장할 때마다 특유의 혐오감과 분노는 색이 선명합니다만, 그것이 어떤 변화를 꾀하는 원동력보다는 이런 상황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강조하는 효과에 가깝습니다. 그녀가 쉐도우의 수장격인 인물과 가족관계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배치되는 두 집단의 사정은 이 세상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입체성에 관여합니다.
“보일러 하나 못 돌리는 놈이 물을 마셔?” 리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보다 깊은 침묵이 리트의 손끝을 굳게 만들었다.
‘한철승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평생을 따라다녔던 그에게, 정의를 집행하는 형사가 되겠다는 아들의 꿈은 너무나 눈부시고 아픈 것이다.
의외로 제 눈에 주목된 것은 ‘리트’라는 가명으로 숨어 있던 한광명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작중에서 ‘한철승’이라는 핵심 인물의 자손이라는 배경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오히려 저는 그런 배경을 제외하고 보이는 소시민적인 삶에 눈이 갔습니다. 직장 내에서 멸시 받는 그의 처지와, 물 하나 마시는 것도 통제당하는 코어의 분위기, 한편으로는 가족에게 위로를 찾는 평범한 가장의 모습까지도, 작중에서는 거의 묘사 되지 않는 평범한 주민의 모습을 표방하며 비정한 세계를 지탱하는 실질적인 피부처럼 다가옵니다. 후에 나오는 Mr.Kim이라는 인물이 그런 주민 상에 부합하는 면이 있지만, 이 사회를 짊어지고 버티고 있는 어느 시민의 모습이 단편으로만 남은 탓에 어떤 인상을 받기는 어려웠습니다.
어쩌면 이 ‘코어’를 구상하는 것은 주제에 대한 함의와 탄생비화를 비롯한 설정에 가까울지도 모르며, 작품을 읽는 내내 그런 설정 면에서 힘이 치우쳐 있다는 인상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독자는 궁금할지도 모릅니다. 이 ‘코어’라는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숫자로 나눠져 있는 각각의 주거구역에는 그 숫자가 미치는 환경 변화가 어느 정도이며, 그에 따른 주민들의 삶의 방식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이 세상은 소수의 영웅에 의해 바뀌기도 하지만, 영웅이 될 수 없는 다수의 힘겨운 일상에 의해 유지되기도 합니다. 각 구역의 주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삶을 꾸리는지 그 구체적인 생태가 보강된다면, ‘코어’라는 세계는 더욱 견고해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바입니다.
4.『‘신인류’라는 이름에 도달하기 위해….』
이 감평문을 마무리하기 전에, SF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익숙한 대사 하나를 떠올려보고 싶습니다.
“그 모든 순간들이 곧 사라지겠지. 마치 빗속의 눈물처럼.”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빗속의 눈물”로 명명되는 이 대사는 수많은 평론가와 관객들에게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대사로 꼽히며 그 울림을 강조한 바가 있습니다. 이 대사가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은 단순이 언어의 향취만이 아닌, 영화 하나를 관통하고 마무리하는 마침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대사를 읊은 ‘로이 배티’는 작중에서 인조인간이라는 ‘도구’로 정의되었고, 자신의 생명을 부여잡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창조주까지 죽이고 말았던 비정한 ‘살인마’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인공을 살해할 수 있는 순간에 다다르자 오히려 목숨을 구해주고, 일찍이 정해져 있던 죽음 앞에서 기억의 연약함을 토로하며 눈을 감으며 빗속으로 떠나갑니다. 영화에서 질문으로 던지는 ‘무엇이 인간다운 것인가?’에 대한 가장 대답을 정의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사이버펑크 장르를 표방한 소설 <탈피>에는 ‘신인류의 문명서사’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사실 소설의 내용을 떠올려보면, ‘신인류’라는 신화적인 부제가 선뜻 연결된다는 인상은 아닙니다. 제목과 내용에 대한 이질감에는 3부를 넘긴 현재의 전개에서도 새로운 인류라는 거대한 개념으로 명명할 수 있는 존재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물론이며, 본제인 ‘탈피’에 걸맞은 진화적인 생태를 뽐낸다는 인상도 아닙니다. 어렵사리 연결시켜보자면 작중에서 실험으로 변화된 인간이나, AI를 물리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편적인 인간의 한계를 ‘탈피’했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이것도 다소 제 개인의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하여 머릿속에 구겨두고픈 마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작지 않은 도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너무 당연한 전제지만, 현대에는 ‘신인류’라는 개념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당장 ‘인류’ 그 자체를 표방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우리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아직 끝내지 않았을 뿐더러, 논의가 시작될 여지 자체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느 창작물에서 인간의 새로운 막을 제시하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현생 인류의 존속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류가 사는 시대에, 멸망을 이야기하고 신인류를 논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발칙한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탈피>는 그것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부제로 제시된 ‘신인류’에 대한 답을 내놓기 위해 이야기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앞선 계급사회, 지하인류, AI의 발전과 정보의 보존들이 모두 이 ‘신인류’라는 개념의 제시를 위한 밑바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이 지향하시는 방향성을 고려해 제 나름대로 ‘신인류’에 대한 답을 그려놓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개연성이 있는 개념인지, 아니면 엉뚱한 상상에 불과한지는 짐작하기 어려운 편입니다.
어쩌면 마지막 결론에 다다랐을 때 어떤 독자는 그 장황함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또 어떤 독자는 AI가 발전하는 현실과 비교하면 설득력에 감탄할 수도 있겠습니다. 작품의 이정표가 어느 쪽으로 휘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글을 쓰는 저로서는 그 도전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깊고 어두운 골목을 헤매고 다니며 그 너머에서 번뜩이는 음모를 캐치하는 향취는 깊은 인상을 주었고, 카터에서 태오로 이어지는 긴장감 있는 서사들은 이 작품에 대한 애정과 의욕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제는 답이 필요합니다. 어느 인조인간이 빗속에서 흘렸던 눈물 하나로 ‘인간다움’을 정의했듯이, AI를 머리에 심고 싸우는 태오의 이야기로 ‘신인류’라는 개념을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길에 고비가 적지 않으리란 건 예상할 수 있지만, 허락해주신다면 한 명의 독자로서 조심스럽게 쫓아가고픈 마음입니다.
인상적인 이야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집필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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