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리디북스 전자책으로 읽고 쓴 황금가지 앤솔러지 <연차 촉진 펀치>의 서평단 참여 리뷰 글 일부입니다.
[ 누구에게나 한계가 있지 않은가? 다들 내게는 한계가 없어야 하는 것처럼 굴지만. ]
악마와 계약을 맺는 이야기는 늘 비싼 대가를 치른다. 그런데 <이제는 작별할 때>에 등장하는 이 악마는 나쁜 악마가 맞나. 원한을 팔면 돈을 주겠다는데, 귀가 솔깃해지는 좋은 제안처럼 들려온다. 손해 볼 일도 없어 보인다. 세상에는 완전한 공짜가 없기에 오히려 수상했어도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었을 것 같다. 대책 없이 회사를 퇴사하고 먹고살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문지을이라면 더욱더.
하지만 원한을 주고받고, 사고파는 것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쓰이게 될까? 충분한 돈이 된다는 건, 타인의 원한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돈을 지불할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없던 사람에게 원한을 주거나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원한이 쌓이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이용할 수도 있겠다. 현실에서도 누군가는 원한으로 돈을 버는데, 누군가는 원한을 사고 원한이 커져만 간다. 그러고 보니 작가님이 이 단편을 쓰게 된 모티브가 ‘원한을 산다’는 표현에서 발전된 이야기였을 수 있겠다. 왜 원한은 산다고들 말할까? 그런 걸 사고 싶어서 사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생겼을까?
그런 상상을 해보니 주인공에게 무슨 위기가 닥칠지 불안해졌다. 생각 없이 팔았던 원한을 사버린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주인공의 선택이 아슬아슬한 절벽 줄타기 같이 느껴진다.
[ 원래 은행 일이란 게 악마의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은행은 돈을 모아 세상 전역에 돌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만 문지을 고객님과는 별 관련 없는 이야기랍니다. ]
악마와 계약하는 것이 은행 업무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악마가 문지을 같은 고객들에게 사들인 값비싼 원한을 통해 무슨 일을 벌이는지는 자세히 묘사되지 않고 흘러간다. 그렇지만 그 문장들을 통해 나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사고들을 떠올리게 된다. 작고 크고 단순하고 복잡한 원한들은 돌고 돌면서 영향을 끼친다.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빠른 속도로 쓰러지고 있는 거대한 도미노의 물결 같기도 하다.
문지을은 원한을 팔아 생활을 안정시키고 삶의 만족도가 올라가지만, 그런 문지을에게 악마는 또다시 찾아온다.
[ 원한의 이자는 계속해서 불어나겠지요. ]
원한은 원인이자 근본인 기억이 아니라 결과물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문지을은 돈을 얻었지만 고통은 없애지 못했다. 근본적인 원인 해결을 얻지 못했다. 행동하게 될 거라는 예고이기도 하다.
[ 잘 생각하고 내리신 결정인가요? 이 거래는 번복될 수 없습니다. ]
결말에서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