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인간적인 주인공 공모(감상)

대상작품: 레코드 (작가: 적사각, 작품정보)
리뷰어: 1648, 5월 27일, 조회 24

고도로 발달한 네트워크, 시스템화된 사회에서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알림에 번개같이 반응하는 사람들. 미래 사회를 상징하는 모습 중 하나다. 본작의 주인공 역시 미래 사회의 주민답게 컴퓨터의 알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일은 알림에 오류가 있다고 안일하게 굴었을 때에 일어났다. 역시 무슨 일이든 일은 안심하는 순간 터지는 법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살피고, 잘못되었음을 깨닫자 경악한다. 다만 그 다음의 행동은 비록 미래 사회 주민일지라도 살포시 웃음이 났다. 큰일 앞에서 자신의 안위부터 걱정하는 모습이라니!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역시 몇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모두 똑같다. 그렇다면 몇백 년 후에도 마찬가지겠지.

설마 무슨 일이 있겠느냐는 합리화를 거듭하며, 주인공은 결국 잘못된 것을 못 본 체 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 이후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진다. 주인공은 여기서도 회피한다. 또 한 번 지극히 인간적인 이 모습에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되었다.

주인공이 발견한 일이 ‘수면 위로 등장한’,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까지 불러온 사건의 진짜 원인이었는지, 정말로 관련이 있었는지 독자는 모른다. 그저 피신을 권유하는 요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을 통해 그럴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

주인공은 또 한 번 현실에서 고개를 돌리지만, 완전히 외면하지는 못한 듯하다. 끝까지 전전긍긍하는 그 태도에서 나는 연민 비슷한 것을 느꼈다. 얘야, 그렇게 불안해할 거면 왜 회피했어? 오류를 처음부터 알렸어야지. 알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끝까지 외면할 줄도 알아야지.

인간의 습성에 초점을 맞추어서 작품을 보았다. 글을 이런 관점으로 읽는 사람도 있다는 의견을 드리고 싶었다.

 

인간적인 면모를 잘 드러낸 글이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날아간 5분의 cctv 영상을 발견했을 때, 주인공의 경악스러운 심정이 조금만 더 날것의 형태 그대로 드러났다면 어땠을까. 긴박한 상황에서는 독자도 함께 그 긴장감을 극한까지 느끼고 싶어한다. 독자의 그 기대감을 한껏 충족시켜줄 때, 그리고 그 긴장을 타파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도피’를 택할 때, 독자는 작품 속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인물을 캐릭터가 아닌, 나와 같은 인간으로 상정할 때 독자는 비로소 작가가 초대한 세상을 흠뻑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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