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와 자아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추방 (작가: 적사각, 작품정보)
리뷰어: 소금달, 3월 31일, 조회 32

원래 리뷰란 것이 쓰는 이의 개인적 생각을 많이 반영할 수 밖에 없는 것이겠으나, 이 글은 특히 더 그렇게 될 거 같다. 따라서 매우 매우 주관적인 감상임을 미리 밝혀두고 시작한다.

1. 좋았던 점 : 재밌다.

전부터 작가님의 다른 글들도 몇 읽었었는데, 전작들에 비해 훨씬 재밌었다. 이유가 뭘까 궁금했는데, 전개 과정에서 적절한 갈등의 활용이 탁월하다고 느꼈다. 이야기가 지나치게 잔잔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격하지도 않고, 조금 지루하다 느껴질만한 상황에서 하나씩 하나씩 갈등 요소들이 생겨나고, 그걸 또 자연스럽게 해결하는 과정이 좋았다.

또 글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 갈등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커지도록 잘 배치되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덜컥이며 위로 오르듯 차츰 차츰 긴장이 고조되고 갈등이 높아지게끔 잘 구성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비교적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라는 기본 흥미를 놓지 않고 집중해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또한 개별 갈등의 해결 방법이 작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작품 전체의 흐름과 잘 맞게 구성된 점도 좋았다. 읽을수록 긴장감이 쌓이는 훌륭한 전개였다.

 

2. 좋았던 점 : 결말

주인공은 대단히 영웅적 행보를 보이지만, 헐리웃 영화의 영웅서사처럼 마지막에 모두가 ‘새로운 선구자’로서 주인공을 따르는 식의 결말이 아닌 것도 좋았다. 그 부분이 작품 전체의 주제를 잘 반영한다고 느꼈다. 모두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자유와 의무가 있으며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모세를 찾듯 주인공을 따르는 게 아니라 그들 나름의 판단과 결정으로 선택한다. 특히 ‘올디’들의 선택 부분에서 그러한 점이 잘 드러나지 않았나 생각하고, 그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3. 아쉬운 점 : 제목

주인공이 ‘추방’당하는 건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으로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글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조금 편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멋대로 추측컨대) 소일장으로 시작된 글이라 앞부분의 가장 주요 사건이라 제목을 그리 짓지 않으셨을까 생각하는데, 작품이 많이 확장, 발전된 지금에는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제목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4. 아쉬운 점 : 후반부의 전개

주인공은 추방당했다 조력자의 도움으로 돌아온 후,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중요 인물을 만난다. 작품내 가장 큰 적대자라 할만한 이 인물과 주인공의 대결은 작품의 하이라이트요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둘의 대결 이후 부분의 전개가 매우 급하게 느껴져 좀 아쉬웠다. 앞선 부분들이 공들여 닦아낸 길이라면 후반부는 급히 닦은 신작로처럼 결말을 위한 사건들의 나열처럼 느껴져 상대적으로 몰입이 어려웠다.

 

5. 궁금한 점 & 생각거리 : 안드로이드는 자아가 있는가?

여기서부터는 작품을 읽어야 알 수 있는 내용을 쓰고자 한다.

주인공과 안티체제(스티스)인 인물의 주요 갈등 요소는 ‘생존’이다. 여기서 이들은 안드로이드로서 인간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야 하는가를 두고 대립한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애초에 인간은 자기들을 위해 안드로이드를 만들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이 편의를 위해 세탁기 건조기 로봇청소기를 만들 듯, 그들은 생존을 위해 안드로이드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안드로이드에서 ‘생존’ 특화 기능을 넣었다면 당연히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능을 넣은 게 아닐까? 그런데 스티스는 어째서 스스로의 생존을 우선으로 둔 것일까? 인간이 스티스를 만들때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구별 없이) ‘생존’ 특화 기능을 넣은 것일까? 그래서 저 유명한 로봇3원칙은 어길 수 없되, 그밖의 상황에선 스스로를 우선시 한 것일까?

스티스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고려한 끝에 ‘안드로이드 자체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판단을 내린다. 그는 이 규칙을 고수하고, 유지하기 위해 일부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쩐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판단하고 결정한다. 이는 굴에 들어갔다 나왔다만 반복하는 다른 안드로이드들과는 명확히 다른 행동이다. 주인공(드벤) 역시 노동 특화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호기심과 모험심을 지니고 있어 외부 탐색을 위해 스스로 추방 당하기를 선택한다. 행동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면, 이들에게 자아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애초에 이들이 고도로 발달한 기계로, 다양한 데이터로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게 설계 된 것이라면 ‘판단’만으로 자아가 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누구에게’ 최적인지를 결정한다. 인간에게 최적인가, 안드로이드에게 최적인가. 집단에게 최적인가 개인에게 최적인가. 이런식으로 가치판단이 들어간다면, 이들에게 ‘자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SF 문외한에게는 이 점이 참 흥미있는 지점이었다. 그들은 ‘안드로이드’라는 이름만 쓰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글은 SF의 외피를 쓴 인문사회학적 소설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떠올려 보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뭐, 아무려면 어떠랴. 이 글은, 재밌다. 작가님 솜씨가 부러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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