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한다는 카리스마 공모(비평)

대상작품: 피어클리벤의 금화 (작가: 신서로, 작품정보)
리뷰어: Justine, 17년 7월, 조회 340

포식자가 선언한다.

“너를 먹겠다.”

먹이가 반문한다.

“왜 제게 그러한 선언을 하셨습니까? 완전히 불필요한 것이 아닙니까?”

그 물음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한다.

“…먹지 않겠다.”

 

드래곤이 살려보낼 뿐만 아니라 지켜보기로 작정한 ‘말거는 먹이’. 본 소설의 주인공이다. 아닌게 아니라 주인공의 비상한 면모는 드래곤 등허리에 올라타거나 하는 대신 시종일관 ‘말거는 것’이고 이 자체가 극의 중요사건이 되곤 한다.

울리케가 대뜸 말을 걸 때마다 죽음의 옥문같던 드래곤의 입이 멈칫, 양떼를 움키고 찢으러 왔던 고블린의 눈이 꿈뻑, 엄혹한 삭풍이 휘몰아치던 겨울조차 묵묵. 그러다가 이 이형의 존재들은 거의 엉덩방아를 찧다시피 협상테이블에 앉아가지고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난 어리둥절 하면서도 나 못지않게 어리둥절 하고 있는 인물들을 보며 재미있어 한다.

글을 읽다보면 17살난 주인공이 딱히 아폴론의 혀를 가진 것도 아니고, 인물간에 논변과 설득 역시 그리 탄탄하다 말하긴 힘들다. 도리어 인간, 고블린, 초월자 등의 대화는 녹슨 철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우왕좌왕하며 앞으로 간다. 그래도 그들이 저마다 말함으로써 관계와 이해, 상황과 사실, 선악이나 가치 등을 다시 구성할 때 이 판타지소설엔 이채가 감돈다. 드래곤이 묻는 부의 의미, 고블린 전사가 간파하는 대화와 폭력, 겨울이 참전한 소유권 논쟁 등이 그렇다.

작중 세상을 창조한 에다의 노래를 깨달아 행할 수 있는 마법과 공감을 핵심으로 하는 류그라 마법이 나오지만 이 둘을 한데 합친 것 같은 언어행위, 세계를 다르게 발견하고 관계 지어 가는 인물들의 ‘말하기’야말로 이 소설의 마법이자 카리스마다.

교섭을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다소 반복적인 전개 속에 갈등의 고조와 해소가 단조로워지고, 그래서 인물들이 하나같이 논객이 되거나 그렇지 못하면 방청객으로 겉도는 점은 아쉽다. 그러나 아직 소설은 인물등판과 세팅을 막 마친 단계고 작가의 유려한 입담은 이미 읽은 글보다 아직 쓰이지 않은 글들을 좋아하게 만든다.

피어클리벤 안팎으로 늘어가는 많은 인물들은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될 것인가. 그들의 말하기는 드라마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계속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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