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말을 포함한 소설 전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미 지어진 글을 보고 그 모난 부분을 짚어내는 것은, 글을 짓는 수고에 비하면 훨씬 간단한 일일 것입니다.
이 리뷰는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독자의 개인적 의견에 불과하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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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아트를 이모지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연재는 어느 날, 이모로부터 ‘바통’이라는 신기한 물건을 받게 됩니다. 바통은 과거로 ‘정신’을 보내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도구인데요, 연재는 바통을 사용해 과거 시점의 코인을 매수해 두었다가 현재로 다시 돌아와 매도하여 차익을 남기는 방식으로 돈을 벌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일어난 부작용으로, 연재의 분신이 생겨나고 그들과 대립합니다. 적사각 작가님의 <바통>은 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갖가지 사건과 갈등을 생동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짧지 않은 분량에도, 안정감 있는 톤으로 진행됩니다. 인물 간의 다양한 갈등과 현실감 넘치는 묘사 또한 여러 회차에 거쳐 드러납니다. 타임리프에 관한 설정과 장면 역시 기존의 작품에 비해 신선한 점이 돋보입니다.
여러 장점이 있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저의 솔직한 감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흥미로운 상황이 계속 펼쳐지긴 하지만, 그 전개를 논리적으로 온전히 공감하긴 다소 어려웠다.
분명히 이야기 한 회, 한 회 자체의 볼거리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를 작품 전체로 보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소개팅도 하고, 신비한 아이템으로 시간 여행도 하고, 코인 떡상을 갈망하고, 도플갱어1에 습격도 당하고, 분열을 통해 새로운 복제 자아도 생성하고, 분신끼리 역할 분담을 하다가 혼란도 겪고, 싸우고, 대립하고, 걱정하고, 고민하고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릅니다.
그런데 제 이해력이 부족한 탓인지, 이야기의 전제가 잘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좀 있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이야기를 ‘그러려니’ 하고 따라가게 되어, 온전히 몰입하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이유를 종합해 보면,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설정이 다소 흐릿하게 느껴집니다.
둘째, 인물의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본 리뷰에서는 이 두 가지 문제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고, 그 밖의 표현 및 서술상의 특징에 대해 짚어보려 합니다.
다소 흐릿해 보이는 설정 1 – 바통과 사고 패턴
제목이기도 한 ‘바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모가 설명한 바통의 사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바통은 ‘사고 패턴’으로 작동된다.
2. ‘사고 패턴’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사용자마다 원하는 ‘이미지의 연속된 장면’을 머릿속으로 재생하는 것이다.
3. ‘사고 패턴’은 이미지가 완벽하게 일치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잘못 외운 날로 돌아가면 뭔지 모르지만 큰일이 난다.
이 설정은 ‘이게 가능한 일인가’라는 작품의 외적 논리와, ‘100% 일치한다는 걸 어떻게 판단하는가’는 작품의 내적 논리를 납득시켜야 합니다.
우선, 이 설정이 얼마나 가능한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고 패턴’을 재현한다는 건, 결국 완전히 동일한 이미지를 (말하자면 아주 세밀한 그래픽으로 완전 똑같이) 기억한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건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판단됩니다. 예를 들어, ‘태정태세문단세’를 외우며 특정 왕의 어진을 떠올린다고 할 때, 임금의 수염 길이나 눈동자의 위치 같은 세부 정보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억해야 한다는 말인데요. 이는 인간에게 ‘완벽한 포토그래픽 메모리가 가능하다’는 전제를 필요로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바통의 설정은 구조적으로 두 단계의 전제를 내포하게 됩니다.
첫째. 인간은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실현할 수 있다.
둘째. 이 전제를 바탕으로, 사고 패턴을 이용해 과거로 기억을 보낼 수 있다.
문제는 첫 번째 전제가 작품 안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독자가 두 번째 전제를 받아들이려면 첫 번째 전제를 먼저 납득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저 같은 독자에겐 설정 전체의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질 수 있겠죠.
이 작품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육체가 이동하는 대신, 기억만 과거로 보낸다’는 설정은 이미 그 자체로 신선하고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이어 나오는 ‘사고 패턴’이란 개념도 창의적이고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이 ‘사고 패턴’을 기억 이동의 구현 ‘수단’으로 삼아버리는 순간, 복잡도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 독자가 설정을 납득하기도 더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가장 쉽지만 추천하지 않는 방법은 ‘사고 패턴’이라는 수단을 제거하는 겁니다. ‘이미지를 완벽하게 기억해 내면, 과거로 기억을 보낼 수 있다.’라는 설정을, 오즈의 마법사에서처럼 ‘은색 구두를 세 번 부딪히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라는 수준으로 아예 낮춰버리는 거죠.
하지만 ‘사고 패턴’이란 독창적 개념을 이대로 그냥 폐기해 버리기는 너무 아깝습니다. 이게 빠져버리면 그야말로 ‘버튼 한 번 누르면 과거로 가는 흔한 SF 설정’과 크게 차이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사고 패턴’이란 설정을 살려두되, 난이도만 낮추는 방식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단어를 기억하는 것은, 특정 사과의 이미지를 그대로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쉽겠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기억을 가장 안정적으로 저장하는 방식이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라는 과학적 이론을 작품 내에 깔아두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바통을 사용하는 규칙 역시, ‘특정 단어를 외우면 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설정할 수 있겠죠. 이렇게 되면 ‘사고패턴’의 흥미로움은 어느 정도 챙기면서도, 동시에 설정에 대한 진입장벽은 낮추는 절충적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미 바통이라는 ‘결정적 매개장치’가 있기 때문에, 설정 자체를 굳이 고난이도로 설계하지 않아도 작가님께서 충분히 몰입감 있는 서사를 만들어내실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다음, ‘인간의 포토그래픽 메모리가 가능하다’는 전제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어떻게 일치 여부를 판단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작품에선 이를 오로지 머릿속의 자의적 판단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만으로 ‘완벽하게 일치했는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는 다소 의문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방금 떠올린 세종의 어진이 평소보다 왼쪽으로 0.2도 정도 미세하게 기울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하는 모호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러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패턴이 일치했다고 판단되면 확실한 피드백이 주어지는 겁니다. 바통에서 ‘불빛’이 나오는 거죠. 초록불이 켜지면 성공, 빨간불이 켜지면 실패, 이런 식으로요. 이모가 ‘처음에는 잘 안되지만 연습하면 될 거야’고 조언해 줬는데, 실제로 연재가 며칠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 날 드디어 초록불이 켜지는 장면이 나오는 겁니다. 이렇게 된다면, 독자 입장에서도 설정을 더 쉽게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선, 이러한 요소에 대한 고려 없이 다소 두루뭉술하게 설정되었다는 감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안타깝게도, 이 룰을 위반했을 경우 생길지 모르는 리스크에 대해서도 충분한 긴장감을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와 대비되는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가령, ‘빨간 선과 파란 선 중에서 하나만을 잘라야 시한폭탄이 터지지 않는다’는 설정 같은 게 있다고 할 때, 이런 설정은 현실성 여부를 떠나서 전제 자체가 명확하므로 독자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제가 말씀드린 점들이 조금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이 소프트 SF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핍진성을 강조하는 까닭은, ‘바통’이란 물건이 이 소설의 존재를 뒷받침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바통을 제대로 사용하느냐 마냐’가 주인공의 운명을 갈라놓기 때문에, 독자는 설정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독자들이 모호한 의문을 품기보다는, 비현실적일지라도 내부 논리에 설득되어 작품에 몰입하는 쪽을 기대하실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고 패턴’과 ‘바통’이라는 설정은 작가님께서 창안하신 독창적인 아이디어입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초광속 비행이나 궤도 엘리베이터, 뱀파이어와 같은 장치를 사용했다면, ‘미리 구축된 토대’ 위에서 간편하게 이야기를 꾸려나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작가님께서는 새로운 설정을 손수 만들어내셨기에, 그 토대를 작품 내에서 어느 정도 단단하게 직접 구축하셔야 독자를 제대로 설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소 흐릿해보이는 설정 2 – 명확한 설명 필요
이야기의 초반부를 따라가기 힘들었던 주된 이유는, ‘바통을 통해 시간여행을 하고, 돈을 버는 방식’이 잘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좀 더 명확하게 보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회에서는 이모가 노트에 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이 장면에서 이모가 ‘여기 첫 번째 줄에 2007/03/02. 11:11 ~ 11:16. 과일.’이라고 적혀 있는 건, 2007년 3월 2일 11시 11분부터 11시 16분까지 과거에 머물렀다는 의미야’와 같은 설명을 해주는 대목을 추가하면, 독자가 설정을 더욱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어 5회와 6회에 걸쳐 ‘바통의 사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돈을 모으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릴지, 그리고 연재가 그 긴 세월을 얼마나 막막하게 느끼는지에 대한 묘사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장면보다,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먼저 제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잘 와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은 어떻게 생기는 거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바통에서 현금이 튀어나오는 건가?’와 같은 의문이 계속 남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고생해야 할 거’란 내용에 공감하거나 몰입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이게 가능하긴 한 거야?’라는 의구심이 먼저 해결된 후에야, ‘그게 그렇게 오래 걸려?’라는 다음 단계의 의문으로 순조롭게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소설에서는 전반적으로 감정 표현이 풍부하게 드러나는데, 원리 설명이 부족하여 그 감정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6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재가 ‘태정태세문단세’를 외우며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아직 그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렇다 보니 연재의 고조된 감정에 공감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감정이나 상황이 앞서나가고, 원리는 나중에 설명되다 보니, 독자 입장에서는 왜 초조해하고, 왜 기뻐하는지 알 수 없어서 한 발 뒤처져 따라가는 느낌이 듭니다. 다시 말해,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독자를 잘 이끌지 못하고 먼저 출발해 버린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인물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인물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 1 – 연재에게 바통을 주는 이모, 신영에게 바통을 주는 연재
연재는 이모가 ‘불현듯’ 생각나서 방문합니다. 4회에서는 이모가 연재에게 바통을 내어주며, ‘바통이 네 삶을 베어 물 거’라고 경고하지만, 그 부작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이모는 불길한 암시만 남긴 채, 그걸 받아들일 각오가 되었냐고 묻기만 합니다. 어째서 이렇게 막연하게만 얘기하는 걸까요? 감정적 위협이든, 무엇이든, 바통에 어떤 위협이 따를 수 있다면, 사랑하는 조카에게 충분히 설명해 주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바통이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유물이라면 이렇게 해도 될지 모릅니다. ‘경고 – 당신의 삶을 흔들어놓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써두기만 해도 불길한 분위기를 충분히 형성할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인생을 바꿔놓을지도 모르는 중요한 물건을 이모가 조카에게 너무나도 쉽게 내어준다는 인상을 줍니다. 관점에 따라선, 마치 ‘감당하기 어려운 물건을 떠넘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설령, 정말 그런 이유로 조카에게 떠넘기는 처지라면, 굳이 어떤 경고를 할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르죠.
이어서, 연재가 바통을 신영에게 건네는 장면도 유사한 의문을 자아냅니다. 이야기 전반부에서 신영이 직접 등장하는 건 한 회차에 불과합니다. 그 한 회차에서 연재는 인도로 떠나려는 신영과 술집에서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술김에’ 바통을 건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저는 ‘저걸 왜 주나?’라는 의문에 사로잡혔습니다. 연재는 바통으로 인해 이미 ‘어지러움’ 등의 혼란스러운 일을 경험한 인물이지 않습니까. 술에 취해 충동적으로 결정했다고 치더라도, 독자 입장에서는 그 행동이 인물의 자연스러운 동기보다는 서사를 진행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연재가 몇 년 만에 이모를 찾은 이유는 단지 ‘안부 인사차’였습니다. 신영과 연재가 만난 이유도 ‘인도 가기 전에 얼굴 한번 보자’ 정도입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표면적인 목적은 사소할 뿐이고, 정작 스토리에서의 중요한 전개 요소는 ‘바통 주고받기’입니다.
이 지점을 고려하면, 작품 전반부에서 인물들이 움직이는 실질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연재가 오랜만에 이모를 방문하는 건 이야기 구조상 ‘바통을 전달받기 위해서’입니다.
2. 이모가 연재에게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어본 건, ‘바통을 내어줄 명분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3. 연재가 신영을 만나는 건, 결과적으로 ‘바통을 건네주기 위한’ 상황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4. 신영이 인도로 떠나는 건, ‘연재 일행과 바통을 물리적으로 분리’시키는 플롯을 구현하기 위함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모는 ‘바통’을 무대 위로 올리기 위해, 신영은 그것을 무대 밖으로 수거해 나가기 위해 움직이는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대가 정리된 뒤에야, 본격적인 이야기 – 도플갱어들 간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저는 이 두 인물이, 이야기의 본격적인 무대를 세팅하기 위해 다소 기능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들이 이야기 속에서 실제로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을 조금 더 입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존재로 그려내고자 했다면, 단순히 ‘안부차’ 혹은 ‘술김에’라는 사소한 이유보다는, 보다 개연성 있는 동기를 부여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 떠오른 의문점은, ‘도플갱어 간의 갈등’이라는 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반드시 타임리프가 필요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신선하다고 느낀 설정은 ‘신체가 아닌 정신만 과거로 보낸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흥미로운 설정을 바탕으로 파생될 수 있는 이야기가 매우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정작 최종적으로는 그 소재가 그저 핵심 갈등의 배경을 마련하는 데 그친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요리에 비유하자면, 아주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써서 국물만 우려낸 느낌이랄까요. 더 훌륭한 음식으로 탄생할 수 있는 재료였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과 전개를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인물의 등장과 퇴장이 다소 도식적인 연출로 보이는 것은 작가님의 의도일지 모른다고요. 작가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인물의 역할을 축소하여, 다음과 같이 메타포가 돋보이도록 의도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이모가 연재에게 바통을 넘기고, 연재가 다시 신영에게 그것을 건네는 과정에는 뭐 이렇다 할 특별한 갈등이 없습니다. 중요한 건, 연재가 바통을 가지고 달리는 자신의 레이스 동안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연재는 (이모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신영에게) 바통을 넘겨줬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의 기회 – 즉, 자신의 턴에서 연재는 과욕을 부리고 실수를 하여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립니다.
제목이 ‘바통’인 진짜 이유도, 차마설과 같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 길 인생에서 무언가가 우리의 삶에 잠시 주어졌을 때, 그것이 각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조명하고 싶었던 의도일지도 모릅니다.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농담이 아니라,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바통’이 왜 제목이겠습니까. (게다가 작가님께서는 특히 제목에 남다른 의미를 두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각 인물은 ‘바통’이라는 장치를 기준으로, 아래와 같은 대비 구도를 이룹니다.
이모 – 바통을 최대한 성실하고 신중하게 잘 활용한 인물
연재 – 바통을 잘못 사용한 인물
신영 – 바통이 손에 주어졌지만, 아무것도 안 한 인물
다현 – 바통을 보지도, 만나지도 못한 인물
독자가 풀이하는 바에 따라 ‘바통’이 의미하는 건 인생의 기회일 수도 있고, 시간이거나 인연, 혹은 그보다 근원적인 무엇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굳이 하나로 정의하기보다는, 지금처럼 문학적 은유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이 작품만의 매력을 잘 살리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인물의 행동 2 – 견재, 연재, 면재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옹고집전을 비롯한 복제물에 등장하는 유서 깊은 단골 클리셰 – 원본 논란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원본과 사본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고, 각 등장인물은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본디 분열에서는 ‘원본’과 ‘사본’의 구분 자체가 없습니다.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에 따르면, 무성 생식 중에서 ‘분열’이란, 원본 사본의 구분 없이 플라나리아처럼 하나의 개체가 완전히 동등하게 쪽 갈라지는 것입니다. <바통>에서는 ‘연재’로부터 ‘면재’가 떨어져 나왔으니, 엄격한 생물학적 용어로는 분열이 아니라 ‘출아’가 맞을 겁니다. 물론 ‘분열’이란 단어가 어감상 더 와닿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 용어를 사용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현상을 설명해 낼 적당한 단어를 만들거나 찾아내는 것도 좋겠죠.
그리고 이 ‘분열’에 의해 파생된 세 인물이 주요 갈등의 축을 이룹니다. 연재, 견재, 면재. 그런데 제가 볼 땐 이름이 좀 이상합니다. 기역(ㄱ)으로 시작하는 견재는 과거에서, 미음(ㅁ)으로 시작하는 면재는 미래에서 온 것 같은데, 딱 그렇게 정확하게 매칭이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즉, 세 개의 이름이 주는 상징성과 관계 자체는 분명한데 그 이유를 추적해 보면 다소 의아합니다. 혹시라도 이게 자칫 어떤 혼란을 유발하지는 않을까 우려됩니다.
도플갱어 간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중•후반부는 전반부보다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이들은 처음에 대립하고 역할을 나누다가, 결국 서로 살해하기에 이릅니다. 이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왜 그들이 서로 죽일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작품은 ‘왜 도플갱어는 서로를 죽이려 하는가’라는 일반적 통념에 대한 작가님 나름의 탐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물들이 다소 기능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1. 견재는 등장하자마자 칼을 휘두르고, 이후엔 의외로 쉽게 물러납니다. 이 흐름은 극적인 첫 등장을 위한 연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연재가 견재에게 가방을 요구하고, 견재가 이를 순순히 내어주는 장면도 마치 가방 안의 물건을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적 구성처럼 보입니다.
3. 연재와 면재가 번갈아 가며 생활하는 구도는 설정 자체로는 흥미롭습니다. 일터에서 벌어지는 혼선이나 실수 장면도 유쾌하게 읽힙니다. 하지만 하루씩 교대하는 방식은 현실적인 설득력보다는 극적 효과를 우선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연인을 공유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이미 서로를 ‘타인’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에 관해 너무 쉽게 합의를 본다는 느낌입니다.
4. 아무리 도플갱어라지만 그래도 자기 분신일 텐데, 분열된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죽이자’는 결론에 좀 쉽게 도달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독자로서는 서로 떨어져 산다든가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공존할 방법을 최대한 모색해 본 다음, 궁여지책으로 ‘죽이자’는 결론을 내리는 편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5. 연재는 견재의 과거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견재는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등장한 걸까요? 견재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려 해도 연재는 외면합니다. 실제 인물이라면 가장 먼저 궁금해할 법한 요소인데, 작품에서는 그냥 ‘연재의 성향’정도로 설명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인물들이 ‘서사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이 종종 드러납니다. 비유하자면, 왜 싸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싸움 자체는 잘 만든 액션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표현 및 서술상의 특징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저는 중후반부가 전반부보다 더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그 재미의 핵심은 생생한 묘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액션 장면에서 뛰어난 강점을 보여줍니다.
강렬한 시각적 임팩트가 돋보이는 장면이 여럿 있었고, 그중에서도 트랙 위로 정체불명의 인간이 불쑥 끼어든 장면은 특히 인상에 남습니다. 이 장면은 여러 가지 은유로도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자신의 분열체(또는 도플갱어)가 이런 식으로 독창적으로, 또 선명하게 등장하는 장면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인상적인 씬이었습니다. 제게 명장면을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이 장면을 첫 번째로 고르겠습니다.
두 번째 명장면은 분열입니다. 완성도나 몰입도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이 장면이 가장 뛰어나다고 여겨집니다. 사실 앞서 말한, 트랙 위로 사람이 끼어든 것은 그 독창성 면에서 점수를 더 준 것입니다만, 이 장면은 딱 여기만 숏츠로만 뽑아내도 시선을 끌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각 회차가 서정적으로 분위기를 묘사하는 문장으로 마무리가 되는 패턴이 많았는데, 이는 독자에게 긴 여운을 남기며 다음 회차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요약하자면, 이 소설은 ‘이미지와 육체로 말하는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표현상의 기교가 무르익은 중 · 후반부에 비해, 전반부에서는 표현과 서술 면에서 아쉬운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금으로도 충분하지만, 보완하면 더욱 좋을 만한 지점도 보였습니다. 몇 군데를 짚어보겠습니다.
1회
선 맥락화 후 설명 : 1회는 ‘기억점’에 대한 다현의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저는 다현의 발언에 집중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개념 자체는 흥미로운데, 독자가 이 정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많은 말들이 쏟아졌기 때문인 듯합니다. 긴 대사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맥락을 형성할 만한 대사를 몇 마디씩 먼저 주고받는다면, 독자가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갑자기 ‘등장 인물의 입을 통해 설정을 전해 듣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조금 더 자연스럽게 접근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관계에 대한 단서 제시 : 독자들은 ‘연재’와 ‘다현’이 소개팅을 하고 있고, 이를 주선한 사람이 ‘신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연재’, ‘다현’, ‘신영’이라는 이름이 중성적이기 때문에, 지금의 단서만으로는 관계나 상황, 인물 파악이 한번에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독자가 인물 관계를 조금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단서나 힌트를 조금 더 주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3회
서술 시점의 일관성 유지 : 3회는 연재와 이모의 대화가 중심이 됩니다. 이 회차에서 눈에 띄는 건, 서술 시점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2회까지는 연재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었지만, 이 회차에서는 연재의 시점에서 벗어나 연재와 은수를 동시에 비춥니다. 또한 인물도 ‘은수 이모’가 아니라, ‘은수’라고 표기됩니다. 축약이 필요하다면 ‘이모’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연재의 입장에서 진행되고, 연재에게는 관계를 나타내는 ‘이모’라는 호칭이 ‘은수’라는 이름보다 더 큰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주인공 : 연재가 기다란 텀블러 같은 걸 처음 본다면, ‘바통처럼 생겼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막대기 같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만약 이 장면이 기시감에 의한 것이며, 기억이 잠재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등의 복선에 따른 거라면, 이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예를 들어 ‘처음 본 게 아닌 듯 하다’는 부연이 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현재로서는 연재가 설정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복선이나 기시감을 분명하게 전달하면 더욱 자연스러울 듯합니다.
5회
경계가 불명확한 서술 : ‘이모와의 회상 장면’의 구분이 다소 불명확해 보입니다. 회상 장면과 현재 장면이 혼동될 수 있는데, 이를 시각적으로 구분 지어 주면 독자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6회
반복적인 문단 패턴 : ‘연재는~’으로 시작하는 문단이, 이후로도 작품 내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시작이 나쁜 건 아닙니다. 다만, 의도치 않게 습관처럼 반복되어 나타나는 결과라면 조금 변화를 주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예를 들어 주어를 생략하거나 문단의 시작을 다른 단어로 바꾸어 본다면 덜 단조롭고, 더욱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맺는 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리뷰는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독자의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합니다.
작품에 대한 칭찬보다는 아쉬운 점을 많이 언급하게 되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을 다룬다고 해서 이 작품이 단점만 많은 작품이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작품 자체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그 매력을 더욱 잘 살리기 위한 보완점을 이야기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고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뷰를 작성하기 위해 거듭 작품을 읽었지만, 그 과정에서 놓치거나 잘못 해석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작가님의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꾸준히 써주시길 응원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