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가장 낮은 곳에 임한 두렵고도 아름다운 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도망칠 날만을 기다리며 아버지의 폭력을 견뎌 온 메리 제인에게 유일한 도피처는 그림이었다. 슬쩍한 물감으로 벽에 눈부신 황금 장미를 새기는 순간만큼은 메리 제인은 비참한 현실에서 놓여나 한 명의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런 메리 제인의 일상에 아름답고 신비로운, 하지만 수상한 여인들이 들어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작품 태그에 #뱀파이어 #여성 #퀴어 #로맨스 가 달려 있는 만큼, 갑자기 나타난 매력적이고 수상한 여인들의 정체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괴물 장미’가 내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은 그 흡혈귀들이 흡혈귀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단죄자로서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메리 제인의 현재, 바네사와 멜리사의 과거에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은 이 작품에 등장한 그 어떤 흡혈귀보다도 추악하다. 바네사와 리사가 인간의 목을 자르고 사지를 찢고 피를 들이켜는 모습을 보아도, 메리 제인의 아버지나 이단 심문관과 목사들의 추악한 면모에 비하면 흡혈귀들의 잔인성은 아무것도 아니다. 흡혈귀가 사람을 잡아먹는다지만,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흡혈귀만이 아닌 것이다.
2부부터 펼쳐지는 환상적인 장면들도 매력적이다. 입맞춤으로 기억을 나누는 바네사와 멜리니, 무고한 여인들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잿더미에서 일곱 장의 날개와 함께 인간들의 단죄자를 피워내는 노파, 오직 사랑의 힘을 빌어 인간으로 돌아가 죽고자 하는 바네사, 그리고 과거와 현재에서 빛나는 황금 장미. 메리 제인이던 시절부터 황금 장미를 그려낸 멜리니와 조각보에 황금 장미를 그리던 멜리사는 모두 황금 장미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날 운명을 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백 명의 여자가 죽으면 한 명의 괴물이 태어난다. 천 명의 여자가 살면 한 명의 삶이 돌아온다.’
여자들을 죽음에서 살려내는 방법으로 리사는 죄인들을 죽이는 방법을, 멜리니는 여자들의 초상화를 남기는 방법을 택했다. 어느 쪽이 올바른 방법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사랑하던 단 한 명의 여인, 바네사가 그들에게 돌아왔다는 점이다.
괴물 장미에는 가장 추악한 인간이 그려져 있기에 가장 아름다운 괴물을 마음 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이기보다는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자와, 괴물로라도 살아남고자 하는 자의 마음 모두를 설득력 있게 묘사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