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과 예술과 연애와 행운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사랑해, 송곳니 (작가: 파랑파, 작품정보)
리뷰어: 뇌빌, 23년 7월, 조회 12

제목만 보면 내가 선뜻 골라 읽었을 것 같지 않지만, 이벤트 글을 보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옛 신문 기사를 오려 붙인 듯한 도입부와 산뜻하고 경쾌한 전개에 휘리릭 즐겁게 읽은 흡혈귀 연애담.

흡혈귀 뱀파이어의 주요 특징이라면 아무래도 피를 마신다는 점과 죽지 않는 점일 텐데, [사랑해, 송곳니]의 흡혈귀 목란/하진은 흡혈에 대한 고민이나 어려움은 상당히 적은 상태로 지내는 듯했다. 죽지 않는 점에 대한 이야기를 예술에 빗대어 이야기가 펼쳐지는 점이 재미있다. 어떻게든 순간을 포착해 영원으로 남기는 화가와, 죽은 지 오래된 것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살로 붙여 살아나게 하는 학예사 사이에서, 죽음 그 자체가 된 흡혈귀가 연애하며 살아나는 이야기. 국중박 주니어 학예사이자 워커홀릭으로서 다현의 일 묘사도 생생하고 재미있던 부분. 흡혈귀의 매력으로 복원사 취직한 부분은 얼렁뚱땅 넘어갔지만 귀여우니 괜찮다. 그래도 일 못한다고 잔소리 듣는 장면이 있어서 전문성 정의를 보여준 것 같기도…

연애에 있어서는 목란/하진, 완선, 다현이 모두 용감하고 단호하고 귀여운 점이 있는 인물들이라 시원시원하고 좋다. 뭔가 고민하고 망설이는 대신에 고백하고 준비해 실행하는 사람들이라 단편/경장편에 딱인. 그러다 보니 조금 아쉬운 점도 있는데, 완선의 급한 퇴장과 다현의 흡혈귀 불감증이랄까. 흡혈귀와의 관계는 얼핏 동성애 은유로도 읽혔지만 모두들 그 어디에도 얽매이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집안 망하게 한 목란의 전 남편이나 정체성 실마리만 주고 떠난 다현의 전 남친도 은근히 웃긴 지점. 관능적이면서 깔끔한 스킨십 묘사도 좋았다. 뜨끈 끈적한 피나 침 대신 아이스 블러드 한 잔 테이크아웃한 정도의 온도.

다만 하진을 살려내는 마지막 부분의 급한 마무리가 조금 아쉬운데, 완선의 그림에서 그 방법을 읽어낸 것도 잘 설명되지 않고, 오해를 풀기도 전에 와장창 지나간 목란과 완선의 이야기도 완선은 별로 안 절실했나 싶기도 했다. 편지는 멋드러지게들 쓰면서 대화도 좀 하시지 ㅠㅠ 다현이 알아낸 방법도 독자로서 확신이 없으니 그냥 같이 죽어도 좋아 모드인가 싶었는데, 그래도 같이 살아 서로 따스한 손으로 동그란 송곳니 만지며 지낸다니 흐뭇하고 좋았네. 좀 바꿔 말하면, 사랑 없이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뭐 이런 걸까요? 완선이 찾아갔던 흡혈귀 마을 흡혈귀들도 저마다 달콤한 사랑 찾아 적당한 날에 죽으셨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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