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요즘 읽고 있는 모리 히로시의 S&M 시리즈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F가 된다’로 유명한 시리즈인데요, 이공계 사람들이 등장하는 신본격 미스터리입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저희가 흔히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저희가 이해할 수 없는 동기, 자신만의 철학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죠. 그런 점이 이 시리즈를 재미있게 만듭니다. 살인동기에 대한 무관심. 네 번째 책인 ‘시적 사적 잭’에서 주인공 사이카와 교수는 범인의 동기는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합니다. 만약 이 범인이 누군가에게 이 정교한 언어로 자신의 욕망, 동기를 설명할 수 있고 이해받을 수 있었다면, 과연 그는 살인을 저질렀을까요? 실제로 많은 살인사건의 동기들은, 범인이 굳이 천재가 아니더라고 해도, 저희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전부터 미스터리 소설의 “설득력”을 담당하던 살인동기를 무시하고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어떤 묵직한 메시지를 남겨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제가 제 생각을 정리하는데 서툴러서요. 제가 이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아마존 몰리’라는 작품 역시 천재의 동기가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성 생명공학자는 어째서 자신이 실험동물 취급을 받았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주인공의 생각이 옳다면, 그리고 우리가 정말 평범한 인간이라면, 내 바로 앞의 사람이 자신을 아예 수준이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 부모님이 지금까지 저를 키워주신 이유가 만약 인간의 성장과정에 대한 분석과 실험을 위해서였다고 한다면……, 아뇨, 아닐 겁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와 다릅니다. 이 소설은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작가가 일관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었어요. 상당히 노골적이라 이 소설이 아예 이러한 소설일 것이라고 처음부터 받아들이고 읽을 수 있었어요. 학계에서 꽤 흔하게 일어나는 미소지니의 모습과 그것을 대하는 주인공의 시니컬한 태도의 반복은 독자에게 설득력의 기반까지 마련합니다. 어떠한 설득력이냐면, 바로 마지막에 드러나는 과학자의 의도에 대한 주인공의 추측이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설득력입니다. “그는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다,”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도 실제로 그것을 실제 실험으로 옮길 수 있는 과학자는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그런 추측에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이 과학자의 태도와 주인공이 평소에 느꼈던 학계 남성들에 대한 이미지가 서로 겹쳐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습니다. 설득력의 기반을 차곡차곡 쌓아올릴 뿐만 아니라 독자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유발하는 소설의 구조, 놀랍고 기발하지만 나름 튼튼한 개연성까지 갖추고 있는 사건의 진상, 그리고 소설이 던져주는 묵직한 메시지. 그러나 저는 이 과학자와 실험동물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네요. (한마디로 작가님의 의도에 기꺼이 넘어가겠다는 것입니다, 히힛.)
윤리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여성의 행동은 분명히 문제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동의도 없이, 알리지도 않고, 그를 단지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즉,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뜻이니까요. 거창하게 말하면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했다고 말해야 할까요. 저 역시 주변에 ‘우웩, 이 놈이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데’라고 생각하게 되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그것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어쩌겠어요, 다 같은 인간이라는데.
한편, 남성이 정신적으로 망가진 이유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살짝 어리둥절해집니다. 결국 이 남성은 실질적으로 무엇을 잃었는가, 그는 자신이 좋아한 여성과 좋은 시간을 보냈고 심지어 육체적 쾌락까지 즐겼습니다. 여성을 쫓아 실험노트를 발견한 것도 결국 남성의 미련과 호기심이 원인이었죠. 그렇다면 남성이 무너진 것도 따지고 보면 스스로 무너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게 됩니다. 자신이 이 여성에게 실험동물 취급을 당했다는 사실은 분명 남성의 자존심에 커다란 문제가 되었겠죠. 은근슬쩍 아는 척도 하고 나름 분위기를 주도했다면서 좋아했던 그의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 폭력으로도 이어졌죠―어라, 저희 이거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요?
저는 이를 일종의 메타포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남성은 학계의 흔한 미소지니를 상징하는 인물. 그것도 대놓고 남성우월주의를 표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미소지니라는 걸 눈치 채지 못하는 그런 인물(실제로 이런 사람이 더 많죠). 그렇다면 여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저는 이러한 미소지니에 대한 복수, 또는 반발의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성차별적인 현장을 보며 답답했던 속이 주인공의 추측과 함께 무너지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아요. 또한, 이 여성은 앞으로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점을 의미할 수도 있겠죠. 더 이상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는, 남성에게 의지하라고 강요받지 않는 그런 사회. 만약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가능해야죠. 가능하다고 믿어요.
지금까지 저의 추측이었습니다. 어쩌면 혼자 흥분해서 장황하게 풀어쓴 확대해석일 지도 모르겠네요. 그만큼 저는 이 소설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과연 작가님이 이런 반응을 원하신 건지는 전혀 알 수가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 SF와 사회비판(?)적인 요소가 섞일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점을 다 떠나서 읽는 걸 멈출 수 없는 작가님의 필력도 너무 좋았어요. 앞으로도 좋은 소설 많이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