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사람 다운 냄새, 사람이 아닌 냄새 감상

대상작품: 정령의 거주지 (작가: 하늘소금, 작품정보)
리뷰어: NahrDijla, 22년 2월, 조회 28

본 리뷰는 2월 15일 기준으로 완결이 난 <눈꽃 마을>까지를 다루며 작성되었습니다.

 

<정령의 거주지>는 사람과 정령의 관계를 풀어낸 동화 같은 옴니버스 소설이다.

<꺼지지 않는 모닥불>은 실수 투성이인 샤샤와 모닥불의 요정의 이야기이다. 샤샤는 자신의 할머니가 지키는 모닥불에 실수로 물을 부어 꺼뜨릴까 두려워 한다. 그러나 샤샤의 할머니는 모닥불은 그리 약하지 않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렇게 샤샤가 할머니의 일을 이어 받게 되고 샤샤와 불의 정령은 교감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날 비가 찾아온다. 모닥불은 비가 몰고 오는 번개의 정령을 쫓아내며 마을을 수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것에 샤샤는 감사해 하며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풀잎이 너울 거릴 때>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이랑과 조화를 깨뜨리는 검술을 쓰는 선초향의 이야기이다. 선초향은 이랑을 거두지만 제대로 된 검술을 가르치지 않고 하인처럼 부리기만 한다. 그렇게 이랑이 회의감에 젖을 무렵, 이랑은 정령이 깃든 빗자루를 발견한다. 정령은 이랑에게 조화를 이루는 법을 일깨우도록 도와주고, 이랑의 실력은 일취월장한다. 그녀의 실력을 본 선초향은 그녀에게 검술을 가르치게 되고, 어느날 홀연히 사라진다. 이후 선초향이 반역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퍼진다. 이랑은 그의 죄를 단죄하기 위해, 혹은 구원하기 위해 그를 마주하고 죽인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눈꽃 마을>은 유란과 눈의 정령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눈꽃 마을의 특산물인 눈꽃을 채취하는 것을 염원하던 유란은, 마을의 관습대로 홀로 눈꽃을 채취하러 올라갔다가 눈의 정령인 설화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과 마을은 친한 친구처럼 자라게 되나, 아이들이 자란 어느 날부터는 소원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설화가 외로움을 느낄 무렵, 설화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마을 전체를 얼어붙게 만든다. 유란은 그런 그녀와 마을에게서 떠나며, 도시의 기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죽는다.

 

정령은 인간과 다르면서도 결을 같이 한다.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살고, 변덕스러우며, 자신의 속성에 따라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외로움을 느낀다. 같은 세상을 공유하는 입장에서 그러한 외로움으로 말미암아 서로를 원하게 되고 거리를 잰다.

거리를 잰다는 것은 중요하다. 너무 멀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해야만 우리의 삶의 관계는 유지될 수 있다. 한 축이 벗어나는 순간 그 구조는 망가지기 마련이다. <눈꽃 마을>의 경우 너무 짧은 거리로 말미암아 한 마을이 단절되었고, <풀잎이 너울 거릴 때>는 너무 먼 거리로 말미암아 파국이 벌어졌다. 적당한 거리. 그 것은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줌과 동시에 자신을 지킬 줄 아는 현명함이 필요한 지점이다.

그 것의 책임을 온전히 한 사람이 지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할지도 모른다. <눈꽃 마을>에서의 파국은 순백의 설원에 사람의 발자국이 닿았기에, 그 발걸음을 행한 모두가 지게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저에 놓여 있는 것이 사람다운 온정이라는 점은 어쩐지 서글프다.

그리하여 마을이 아직 자연과 함께 호흡할 때, 그리고 아이들이 아직 순수함을 간직할 때엔, 마을과 정령은 함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마을 사람들은 정령을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비자연적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눈꽃 마을>에서 정령이 선택한 것은 모든 것을 자신의 세상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얼음의 숨을 쉬게 하는 풍광은 환상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슴이 어쩐지 서글픔을 머금게 만든다.

 

일상과 현실의 경계는 판타지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명료해진다.

영웅은 2차 세계로 진입하여 모험을 겪고 귀환한다. 그 과정에서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하기도 하고 영약을 찾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영웅의 변화하는 내면과 위기의 극복에 따른 성취이다. 세계는 각자의 생활을 묘사하기 위해 인물을 조망하고 여기서 우리들은, 또 다른 세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허나 <정령의 거주지>는 일상의 단란함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정령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빛나지만, 그 기저에 남아있는 삶은 어쩐지 우리의 오래된 이야기를 보는 것처럼 정겹다. 그 중 <꺼지지 않는 모닥불>에서 다뤄지는 정령은 언 듯 신처럼 묘사된다고 주인공은 이야기한다. 마을 사람의 소망을 먹고 그 것을 들어주고 지켜주되, 자신을 섬기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령이라는 이세상의 존재가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묘사한다. 동시에 그와 대화할 수 있는 자들을 소수로 제한함으로서 이 공간이 평범한 공간이 아님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한다. 작품은 그 선택 받은 인물의 행동 양상과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이세상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언 듯 목가적인 풍경에 가까워 보이는 이들의 삶에 비자연적인 요소들, 즉 기계적이거나 콘크리트적으로 표상되는 자연 정복의 이미지들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최근 챕터인 <0에서 1까지>에서는 초중반부, 기계적인 요소가 짙게 드러나지만 맥락상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목적성이 눈에 띈다. 그 것은 정령들의 존재가 자연과 한없이 가깝기 때문에, 그들의 곁에 있기 위해서는 사람 역시 자연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정령과 함께하는 존재는 사람 사는 냄새를 낸다.

사람이 사람 다움을 유지할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것은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발전해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이다. <풀잎이 너울 거릴 때>는 수라의 길을 걷는 자와 사람의 길을 걷는 두 존재를 다룬다. 사람의 길을 걷는 자는 수라의 길을 걷는 자에게 검의 가르침을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수라의 길을 걷는 자는 그런 사람의 길을 걷는 자에게 무관심하다. 그러다 사람의 길을 걷는 자는 정령이 깃든 빗자루를 발견하게 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검을 쓰는 법을 서서히 체득한다.

정령들과 부대끼는 삶이 오히려 더 사람 다운 냄새를 내는 것은 어째서일까.  검술을 쓸 때마다 자연이 망가지는 스승 선초향의 검술과 주인공 이랑의 검술을 대조된다. 그 것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수라의 길을 걷는 자라서 더욱 그러하다. 정령이 말하는 것처럼 선초향의 검술은 생명력을 강제하는 기술이다. 인위를 꾸미는 기술. 그렇기에 이랑의 조화가 그를 이기는 것은 인간 개인이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상징과도 같다.

이 지점에서 정령들은 기이한 힘의 담지자로써 현현한다. 환상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함을 제시하면서, 존재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문화의 제한을 드러낸다. 그렇게 정령들은 사회가 추구하는 자연적 사회의 면면을 투사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렇기에 정령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그 것은 선초향이 가진 사람이 아닌 냄새와는 대조되는 따듯한 무언가이다.

 

결과적으로 <정령의 거주지>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들이다.

세 이야기 모두 정령이라는 존재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루며 그 곳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으로써의 자격을 이야기한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살아는 가겠지만, 그 사람 다움을 잃어버렸을 때, 즉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영역으로 영락시키려 들 때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파국과 맞닿아 있다. 그러면서도 그 이야기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까닭은, 사람 다움으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에 기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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