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켠 작가님의 <해피 고 럭키>를 읽었습니다. ‘전일도 사건집’인가 했지만 전탐정은 등장하지 않았고, 이야기 색깔로 봐 사건집에 넣을 수 없는 전일도 외전 정도일까 했는데… 뜻밖에 SF더군요. (아니, 한켠 작가가 SF를?)
아주 멋진 SF 작품이어서,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을 위해 소개해 볼까 합니다.
1.
<해피 고 럭키>는 작품의 태그처럼 ‘직장 내 총기난사 사건’을 소재로 합니다. 그것을 취재하는 기자의 보도, 정신과 의사의 녹취록, 범인의 유서, 유가족의 보고서 등 ‘전혀 일맥상통하지 않는 기록들’을 나열하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작가가 종종 쓰는 방식인데, 툭툭 던져놓은 듯한 단편적 서술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작가가 몰아넣는 방향으로 흘러가 어떤 정서와 대면하게 되지요. 한켠 작가님의 장기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도 그래요. 기록들을 따라가면서 독자는 직장 내 총기난사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고, 관여자(?)들 정서를 느끼게 되고, 범인의 상황과 의도(?)까지 파악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제3자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구조적 현실과의 직면입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미래학자들이 예측하는 머지않아 사라질 직업군 중 하나의, 조만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의 한 단면)에 관한 예견서예요.
2.
제가 이 작품을 (어감이 안 어울리지만) 멋진 SF라고 생각하는 건, 사건의 기저에 ‘뉴스 큐레이팅 자동화’라는 SF 설정이 깔려 있기 때문이예요. (이제 클리셰처럼 느껴지는 A* 단어는 생략.)
또 제가 이 작품에 감탄하는 것은, 그 SF 설정을 기저에 ‘짙게’ 깔아놓고 있으면서도, 이야기가 전혀 SF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한 비극적 사건의 관련 인물들에 대한 무덤덤한 보고서처럼 느껴질 뿐이죠.
아마도 이 이야기의 범인은, 자신의 분노가 어디서 왔는지 끝내 몰랐을 거예요. 스스로도 피해자들 잘못이 아님을 알지만 그들을 탓할 수밖에 없었죠. 다른 인물들도 원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예요. 그건 지금 우리 주변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일부니까요. 늦가을이 되어서야 세상이 초록에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는 걸 깨달을 뿐이죠.
이 작품을 읽고 (결은 많이 다르지만) <앨저넌에게 꽃을>이 떠오르더군요. 한 남자의 지능이 만개했다가 서글프게 사그러지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감탄했었고, 뒤늦게 그 작품이 SF 고전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는 놀랐었는데… 이 작품도 그와 같은 기능과 정서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SF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으면서 현실의 문제를 SF적으로 통찰하고, 그 통찰은 작품 속 상황이 머지 않아 현실에서도 벌어질 것 같아 (저에게는) 어떤 착작함을 불러 일으키네요. 그건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일 거예요.
3.
SF 팬으로서 저는, 이 작품이 제대로 평가를 받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SF 공모전도 좋겠고 (이왕이면) 브릿G 추천작도 좋겠지요. 제가 보기에 이 작품은 SF적 ‘설정’을 전면에 내세우며 인간(또는 개인)을 탐구하는 다른 SF 작품들과 분명한 차별성이 있거든요. 요즘 소강상태인(?) 우리 SF에 신선함 또는 자극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또 SF 팬으로서 저는, 한켠 작가께서 SF에 관심을 더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을 읽고 한켠 작가의 SF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거든요. 저는 밀도 높은 ‘한켠표 역사물’의 찐팬이고. 전일도 사건집에서 현실의 부조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까발리는 작가의 시선을 리스펙트하는데… 현실을 드러내는 데에는 SF도 작가에게 좋은 무기가 될 수 있거든요.
끝으로 제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서 한번 더, 이 작품이 ‘제대로’ 평가를 받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작은 독자의 관심이겠지요. 많은 분들이 잃으시고 평가가 쌓인다면, <해피 고 럭키>의 본모습이 자연스레 드러나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님의 건필과 건투를 빌며.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