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전해지며 비평

대상작품: 청녹동 괴담 기록 – 육교와 흉가 (작가: 녹차빙수, 작품정보)
리뷰어: NahrDijla, 21년 12월, 조회 70

두 개의 기록 이면에는 이야기꾼이 존재합니다.

이야기꾼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기이합니다. 그 것은 체험적인 ‘나’의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로부터 이어진 ‘너’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너로써 명명된 이야기는 타자들의 말과 말로 이어지며 확산됩니다.

구술 매개는 불안정한 수단입니다. 글로 적혀진 것이나 녹음된 것과는 달리 가변적이고 변형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작위적인 상상이 덧대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 소설은 그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한 세계는 구술하는 자의 체험으로 변질됩니다. 그리고 불확실한 개인의 체험으로써 존재하는 세계는 환상 세계와 닮아있습니다.

 

누군가가 추락하여 사망했지만 아무도 그 실체를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살점들이 폭발하듯 퍼져 산산조각나 있었다고 전해질 따름입니다. 그런 시체 훼손의 사유에 대해서는 세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덤프트럭 같은 차량에 치였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말로 어느 높은 곳에서 추락했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육교 아래에 존재하는 기묘한 관벌레 같은 것에 의해 사지가 찢겼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느 가설이든 타당할 않을 이유가 있고, 누가 봤다는 언술만 있을 뿐 실제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점진적으로 비현실성을 지니며 최후의 관벌레에게 삼켜져 사지가 찢겨졌다는 이야기는 일종의 고래의 뱃속으로 진입하는 이미지와 흡사합니다. 켐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 따르면 고래의 배속으로의 진입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영웅의 도식이 아닌 한 부분만을 채집하여 제시함으로써 그 것은 일그러진 신화의 파편이 됩니다.

시체로만 존재하는 풍경은 그로테스크할 뿐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망했다는 객관적인 사실은 호러스럽다기 보다는 끔찍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의 그로테스크함은 누군가의 눈으로부터 전해지는 구술 종류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체훼손의 이미지는 불확실한 세계에 상이 맺힙니다.

 

폐가와 흉가의 차이는 엄연합니다.

트위터의 방과후 괴담부에서 폐가와 흉가의 차이에 대해 이런 글이 올라온 적 있습니다.

https://twitter.com/HOKAGOHORROR/status/1279629097904177154

요는 관리를 하지 않아 세월에 의해 마모되고 삭아버린 건물이 폐가라면, 외관은 의외로 멀쩡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살지 못하게끔 요사스러운 기운을 풍기는 건물이 흉가라는 이야기 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학예사는 폐허를 소재로 한 전시 기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의 흉가를 찾아가게 됩니다. 흉가에는 뭔가 감각적인 구도로 적힌 명언들이 있었고, 화살표가 있습니다. 그 화살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그 안에는 충격적인 모양새인 피를 흘리는 것 같은 마네킹들과 함께 너는 12시간 안에 사지가 찢겨 죽는다는 문구가 적혀 있고, 열린 결말로 끝납니다.

이 소설 역시 흉가의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고래의 뱃속으로 들어가며 죽음으로의 진입과 맞물려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미술관 학예사라는 직업이 미적 기준의 초월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매개합니다. 때문에 이미지의 등장을 암시하는 장치임과 동시에, 전문성을 가진 그의 공포로 하여금 이미지가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지 않은 충격적인 범주임을 환기 시킵니다. 여기에 보조적으로 선택이란 측면을 다루는 명언들의 반복 강조를 통하여 강박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끝내 결말은 여러 설이 있다는 결말은 이 이야기의 구술성을 보여줍니다.

이미지는 호러스러운 분위기를 환기하는 장치임과 동시에 명징한 사진이 아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특징으로 하여금 환상으로써의 전복을 진행합니다. 그 것은 고정적인 이미지가 아닌 붉음과 광기에 의하여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는 불확실한 체험으로써의 환상입니다.

 

두 이야기가 결합되는 지점에서 

가상 공간에서 펼쳐지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 자체로 형성되는 공포는 ‘너’의 이야기기 때문에 그다지 와닿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호러는 현실의 억압되고 은폐된 모순이 금기의 위반과 전복을 통하여 드러나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의 공포는 누군가의 입에서 입으로 전개된 이야기의 기묘할 정도의 분위기에 있습니다. 사실성이 확보되지 않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일지라도, 구술의 불확정성을 통하여 그 것은 자체적인 생명력을 얻은 채로 우리의 상상 속을 배회합니다.

그렇게 두 이야기의 교점이 구술에 의하여 조직되는 순간, 이 두 이야기의 힘은 원시의 구술문학이 가졌던 신화성의 모방이 됩니다. 구술문학은 기록문학으로 진행되며 하위모방적인 리얼리즘 문학의 토대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영상 문화의 잉태는 새로운 구술 문학으로의 전도이며, 동시에 고대의 신화와 전설이 가졌던 환상성을 현시대에 다시금 재생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죽었다’는 어떤 현대의 초상은 다시금 전설의 맥락으로 재생합니다. 이 소설의 가변적인 불확정성은 그 과정이 어떻게 환상을 매개로하여 진행되는 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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