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신앙을 지닌 사람에게 성서가 경전이라면, 신앙이 없는 저와 같은 사람에게 성서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책입니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때로 신화적이고 때로 인간적인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지요. 생각해보면 전 성서를 경건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마 그래서 더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겠죠. 그런 저에게 「종막의 사사」는 굉장히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스핀오프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독자는 구약 성서의 사사기에 등장하는 몇몇 사사들의 다분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게 됩니다. 엘리와 삼손, 사무엘은 유일신 엘로힘에게 사사로 부름 받은 특별한 자들이면서, 동시에 불완전한 인간의 심신을 벗어날 수 없었던 존재이기도 합니다. 슬픔과 두려움, 불안과 좌절은 때마다 찾아와 이들의 내면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흡인력은 바로 그 흔들림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결국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들은 모두 얼마간 흔들리기 마련이지요.
이야기에 쓰인 핵심 모티브는 모두 주인공 사무엘이 여성이라는 설정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어머니 한나는 아기를 갖기를, 정확히는 아들을 낳기를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그런 한나의 입장에서 볼 때 딸로 태어난 사무엘은 제 기도에 대한 절반의 응답인 셈이죠. 젖을 막 뗀 후부터 주님의 집에 바쳐진 사무엘은 일 년에 한 번씩 한나를 만나지만, 모녀의 만남과 둘 사이 오가는 감정에선 왠지 모를 이물감이 느껴집니다. 사무엘은 당연하게도 어머니의 딸로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싶을 테지만, 한나의 사랑에는 언제나 이러저러한 타산이 섞여 있습니다. 사무엘은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 만으로 이미 제 어미의 기대를 한 번 저버린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의 태생적 한계를 넘어 일종의 원죄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사무엘은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일 년 만에 만난 어미에게 당신이 얼마나 아들을 소망해왔는지 따위의 얘기를 들어야 하지요.
이것은 물론 한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한나가 그토록 강박적으로 아들을 원하는 이유는 그를 둘러싼 세계가 여성으로 하여금 아들을 내어 놓으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한나가 남편 엘가나의 또 다른 아내 브닌나와 소모적인 자식 경쟁을 벌여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지요. 남성 위주로 기술된 역사의 막후에서 여성이 치러야 했을 갈등과 고통이 얼마나 치열하고 또한 소모적이었을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나지막이 흘러가던 서사는 익숙한 삼손의 등장으로 전환점을 맞습니다. 삼손은 선이 굵고 성적 매력이 뚜렷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남성이지요. 이 담백한 사실 만으로도 삼손과 사무엘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긴장감이 형성됩니다. 게다가 이 긴장은 복잡한 플롯에서 오는 긴장보다 훨씬 강하고 효과적이에요. 따라서 이 작품의 백미는 단연 사무엘과 삼손의 케미스트리―또는 로맨스―에 있습니다. 두 사사는 각자 상대로부터 기인하는 낯선 감정에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정작 본인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서툰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은 조금 사랑스럽기까지 하지요.
예컨대 주의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무엘은 무도한 언행을 일삼는 삼손에게 불경함을 느끼면서도 왠지 모를 연민을 느끼고, 반대로 억세게만 보이던 삼손은 사무엘과 그 어머니의 사정을 알고는 힘 없이 슬퍼합니다. 이름난 사사들조차 인간적인 고뇌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독자는 오래된 세계에도 필연적으로 존재했을 갖가지 군상들을 막연히 떠올려보게 됩니다. 그건 분명, 성서로만 읽었을 때는 만나볼 수 없었던 굉장히 매력적인 세계일 거예요.
아마 「종막의 사사」를 잇는 후속작이 언젠가 나올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사사들의 흔들림을 그리는 ‘가려진 세계의 서막’이라 볼 수도 있겠군요.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