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믿는 진실이, 권력의 통제 하에 조작된 허상이라면 공모(감상)

대상작품: 추방 (작가: 적사각, 작품정보)
리뷰어: 로온스, 3월 28일, 조회 26

이런 주제는 늘 매혹적이면서도 오래된 담론이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하는지 테크닉이 중요하다. 그 테크닉이 작가의 역량을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결론부터 적자면 독자로서 만족했다.

 

인간을 본따 만든 안드로이드가 살아가는 사회. 빛이 떠오를 때 안드로이드는 원반이라 불리는 에너지 리시버(energy receiver)를 하늘로 뻗어 생명을 유지할 에너지를 얻는다. ‘세례’라 칭해지는 이 행위만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이며 삶의 목적이다. 단조로운 삶 속에서 주인공 드벤은 돔의 ‘경계’ 너머를 동경하고 호기심을 갖는다. 그러나 그 행위 자체가 범법에 해당하는 일이라 예전부터 ‘추방’ 당한 이들이 존재해왔고, 범죄를 꿈꾸는 일은 안드로이들 사이에서도 용인되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솔라구와의 대화(“자신을 잃지 말게.”)에서 드벤은 자신의 열망을 실행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추방’과 죽음을 각오한 채로 금기를 깨고 ‘경계’를 넘어 돔 밖으로 향한다. 스스로를 ‘추방’시킨 것이다.
목숨을 위협하는 철 폭풍을 만나지만 가까스로 생존하고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이를 만나며 드벤은 세계의 진실에 가까워진다.

 

레퍼런스라 부를 만한 여러 작품이 떠오르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전반적 구조는 독자로서 익숙하지만 세부적인 설정은 작가 본인의 참신함이 돋보인다. 소설 전체에 종교적 함의가 담긴 것 같기도 하고-몇몇 부분에서는 가톨릭이 사회를 집어 삼켰던 중세 시대가 연상된다-거시적 관점을 지우고 개인의 영역에 비춰 본다면 살아가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꿈을 추구하는 낭만이 엿보인다.

 

“탐험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

“그 보상은 말할 것도 없고요.”

“훌륭한 마음가짐이네.”

 

질서를 위해 규칙은 필요하지만 그 규칙의 제정자가 진실을 왜곡했다면 그 규칙은 과연 정당한가. 드벤은 그 물음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이야기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작가는 냉혹한 현실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희망을 그리는 결말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주인공은 안드로이드지만 인간 찬가라는 키워드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지점이다. 왜냐하면 소설 내에서 언급됐듯이 안드로이드는 인간을 본따 만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장벽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았’던 드벤이 솔라시리즈와 함께 서서 독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우리는 인간을 본따 만든 존재들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탐구심도 그대로 닮았습니다. 늘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갔던 인간들처럼 우리 역시 모험을 멈춰선 안 됩니다.”

 

*SF를 그리 즐겨 읽지 않은 독자 입장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세계관을 인식하는 게 살짝 힘들었으나 곧 적응해서 큰 문제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 외 아쉬운 점은 특별히 없습니다. 좋은 SF 단편선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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