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리 판타지아』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이시우 작가님의 조금 긴 소설입니다. 그것의 분량만큼 감상을 평소보다도 묵직한 분량으로 쓰고 싶었지만, 시간 확보가 조금은 어려워서 브릿G에서는 처음으로 몇 자 안 되는 단상을 씁니다. 이런 형식으로 쓰는 게 처음이라 조금은 어색하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추후 넉넉히 글을 쓸 시간이 확보된다면, 이 소설을 좀 더 깊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과 함께 사는 이물(異物)을 상상하곤 합니다. 그것이 도움이 되든, 해를 끼치든, 인간의 군상에 함께 섞여 산다는 건 조금 으스스한 일입니다. 오늘 아침 버스에서 내 옆에 앉은 사람, 함께 일하는 동료, 어쩌면 가족 중 누군가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상상이나 발상은 그것 자체만으로 충분하게 두렵습니다. 그렇다면 한 마을이 모두 이런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어떨까요. 그저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어 내려간 시골이, 알고 보니 ‘이계’의 존재들로 가득하다면 말입니다.
이시우 작가의 『이계리 판타지아』는 이런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평범보다도 더 평범한 삶을 살던 작가 미호가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던 시골에 귀향하며 생기는 사건들. 그것들은 미호가 원했던 조용한 창작 환경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위태로움을 형성합니다. 아니, 미호의 이계리 생활은 위태로움을 넘어서 날카로운 두려움이 되어 그녀를 비수처럼 위협하기도 합니다. 미호는 취미로 배우던 활을 생존을 위해 다시 잡습니다. 이물들과 함께 사는 것은 이렇듯 위험한 일입니다. 미호는 ‘할머니’지만 외형과 행동이 전혀 그렇지 않은 귀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명 작가 조풍 등 분명히 인간은 아닌 듯한 존재들과 안면을 터 갑니다. 이시우 작가의 특기인 상황과 인물 설정이 소설의 초반에서 크게 빛을 발합니다.
이 마을에서 주인공 미호가 만나는 이물 중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도 보입니다. 강의 신으로 알려진 하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들이 신화나 전설 속에서 어떤 모습을 하는지, 또는 작가가 어디까지 창조해 낸 것인지를 저울질해 가며 읽는 것도 이 소설을 읽는 재미입니다. 이미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듯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미호의 고군분투, 그리고 그런 미호를 곁에서 지켜 주거나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 그들 사이의 관계가 이시우 작가 특유의 유쾌함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사실 이 소설의 진행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헐거워지는 긴장감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대중적인 이물의 등장과 꼼꼼한 사료 조사가 뒷받침되었다면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얻는 즐거움을 주는 소설 또한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욕심 어린 독자로서의 아쉬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신화와 옛이야기의 재창작은 존재만으로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고 소설 『이계리 판타지아』에는 분명 ‘창작되었음’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잘 짜인 소설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들의 재미가 곳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필름 마켓 ‘E-IP’ 피칭작으로 선정되어 받은 주목 역시 이 소설에서 보이는 일종의 영화적 특징을 증명합니다.
이시우 작가의 소설이 또 다른 방향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음을 보이는 장편을 하나 만났다는 기분으로 즐겁게 읽었습니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의 작품을 종종 찾게 될 것 같습니다. 단편부터 장편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독자를 가리지 않고 과감히 글을 쓰는 이시우 작가의 소설이 이번에도 지친 하루에 활력을 주었음은 분명합니다. 『이계리 판타지아』 속에서 노닐었던 시간이 언젠가 작가의 다른 이야기를 찾는 발걸음을 이끌어 주리라고 확신하며 짧은 감상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