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한 맛이 있는 소설, 뒤로 갈수록 아쉬움이 남다 비평

대상작품: 바다가 태풍을 가르듯 (작가: 권선영,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4월 29일, 조회 16

이 소설 <바다가 태풍을 가르듯>, 1화가 참 좋았다. 제목이 끌려서 1화를 봤고, 그 김에 쭉쭉 달렸을 만큼 가독성도 좋았다. 다만 절반 정도 읽고 나자 약간의 한계가 느껴졌다. 개인적인 취향과 결부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처음이 좋았던 만큼 아쉬움도 커서 조심스럽게 리뷰를 남겨 본다.

 

 

첫째, 저마다 다른 백그라운드를 지닌 네 캐릭터의 ‘캐릭터성’이 뒤로 갈수록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잘 사는 집안의 외동아들이지만 결핍을 지닌 소진, 바다에서 궂은 일하며 자신을 키워낸 홀 어머니에게 복잡한 감정을 지닌 해주, 아버지와 누나에 대한 복잡한 마음을 가진 형오, 형오의 누나이자 위태로운 듯 단단한 단오. 이 네 인물이 소설의 주요 캐릭터로 각각의 ‘특징’이 확실하고, 고유의 서사가 있어서 소설을 읽기 시작한 초반에는 좋았다.

네 인물의 이야기를 골고루 다루면서 서로의 관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보는 게 마치 옛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사건 위주 혹은 ‘임팩트 있는 장면’을 먼저 던지고 흥미를 끌어가는 게 요즈음 꽤나 나오는 장르 소설의 흐름이라면 이 소설은 어쩐지 예전에 읽었던 ‘상록수’ 같은 옛 소설의 정취가 있었다. 좋은 의미로 잔잔하게 읽는 재미가 있었지만, 중반이 지나가면서는 아쉬워졌다.

자라나서 대학시절을 보내고 커 가는 과정이 보여질 뿐, 저마다의 ‘고민거리’랄 게 분명하지 않아서다. 다 함께 선이나 결혼 혹은 연애, 그리고 돈 벌이에 관심 있는 모습을 보이는 건 이해가 갔는데 ‘보편적인 고민’ 외에 각 캐릭터만의 ‘고민’이 없다고 해야할까. 더불어서 네 인물 사이의 갈등 요소도 없어서 점점 단조로워졌고 집중력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같은 뉘앙스의 이야기가 별다른 변화 없이 반복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인물들은 그저 ‘살아갈’ 뿐이었지, 소설의 캐릭터로는 더 이상 기능하지 않고 있었다.

하다 못해 외적인 사건이 있거나, ‘어떠한’ 동력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내적 서술의 연속이었다. 물론, 중간 중간 캐릭터들끼리 다툼이 있긴 했지만 그게 큰 변화를 이끌기보다는 ‘아주 작은 해프닝’에 불과한 걸로 그려져서 그럴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이 소설에는 <중심사건>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또한, 네 캐릭터가 지닌 공통점인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 없다. 다들 내적으로 고민하고 내면으로 서술할 뿐, 적극성을 띄지 못하고 주저하다 보니 무언가 고여 있다는 느낌이 드는 점도 아쉬웠다.

 

둘째, 이 소설 전체를 이끄는 중심 사건, 중심 이야기가 없다.

중심 사건이란 건 거창한 게 아니다. 이를 테면, 나는 영화 <클래식>을 좋아하는데, 그 영화의 서술 방식도 이 소설과 유사하다. 특히나 ‘과거’ 시점에서 3명의 주인공을 다룰 때 말이다. 영화는 국회의원의 딸 주희와 평범한 집안의 아들 준하, 준하의 절친이자 꽤나 유력한 집안의 아들인 태수의 삼각관계를 다룬다.

하지만 ‘핵심’ 이야기는 ‘과거’에 있지 않다. 현재 시점에서 주희의 딸인 지혜가 엄마의 연애 편지와 일기장을 발견하면서 ‘그것’을 매개로 과거 사건이 보여질 뿐, 이 영화 <클래식>의 핵심사건은 과거에 이루지 못한 주희와 준하의 사랑의 그들의 자식인 지혜와 상민이 이룬다는 현재의 ‘중심 이야기’로 ‘인연’애 대하여 다룬다.

즉, 중심 사건, 중심 이야기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어떠한 메시지’ 혹은 ‘이야기’ 또는 ‘정서’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첫 화와 중반까지는 그것이 미묘한 정서(저마다 다른 네 캐릭터의 백 그라운드와 그들이 서로를 의지하는 과정)’으로 그려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중반이 넘어서자 마치 일일 연속극의 에피소드(메인이 아닌 서브 서사) 같은 이야기만 이어져서 결말까지 읽고 난 뒤에도 이 소설이 과연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서사적으로도’분명 완결이라고 나왔는데도’ 이게 완결이 맞나? 결말이 난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페이지에서 스크롤을 멈췄다.

 

셋째, 시대가 언제인지 모호한데 아예 ‘과거’로 하나의 시대를 콕 집어 정하면 어떨까 한다. 

글램핑과 같이 ‘요즘’에 자주 쓰는 용어들이 나오다가도 선이나 결혼, 연애에 대한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들의 가치관이나 태도가 과거의 그것과 닿아 있고, 무엇보다도 ‘대사’가 문어투여서 더 과거처럼 느껴졌다.

한 마디로, 독자의 입장에서 네 명의 주인공들이 하는 대사들이나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늦게 봐줘도 80년대 혹은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아예 배경을 80년대 후반 혹은 90년대 초반으로 잡고 아예 그 ‘시대적 배경’을 살려줘도 좋지 않을까. 오히려 그때의 시대상을 살린다면 결혼과 취직으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시대를 이용하여 흥미로운 사건 혹은 에피소드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시대를 선택한다면 표현이나 단어들이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네 캐릭터의 삶을 대하는 방식이 2020년대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과거 시대 중에 어느 한 시점을 고른다고 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 된다. 아마 지금과는 다른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나의 경우 과거의 시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과거 이야기들을 더 즐겨보고 좋아하는 편이다.

 

아쉬운 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남겼지만, 그만큼 첫 화의 임팩트가 커서다. 짧게 앞 부분을 소개해 보겠다.

바다에서 보는 하늘은 무섭지 않다.

처음 배를 몰고 바다를 들어가던 날, 해주 엄마는 상욱이 하던 말을 떠올렸다.

“바다를 지배하는 건 하늘이 아녀. 바다는 온전히 바다 것이재.”

“그럼 당신은 바다가 무섭지 않아?”

순진한 그녀의 물음에 상욱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바다와 편먹으면 되지. 내 편인데 뭐가 무서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편의 말을 듣고 있는 아내가 귀여워 상욱은 자신 있게 말했다.

“바다가 태풍을 가르듯 솟구칠 떼면 바다를 이루는 물 한 방울을 생각혀. 그럼 무섬증이 사라지지.”

1화의 시작이 이랬고, 여기서 바다와 편 먹는다던 상욱은 바다에서 죽어 해주 엄마는 남편이 떠난 바다에서 궂은 일을 하며 해주를 키운다. 그것도 급전이 필요할 떼만 여자들이 아쉬워하며 찾는 ‘선주’로. 남편의 생명보험금으로 중고의 소형 선박 하나를 샀다는 점부터 기대됐다. 여자 선주를 다룬 이야기를 많이 본 기억이 없고, 그런 엄마가 키운 딸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까 궁금해서다.

뒤이어 나오는 형오와 단오의 이야기도 ‘다른 배경’이지만 ‘거친 배경’을 지니고 있어서 형오와 해주가 만나게 된다면 어떤 관계가 될까 기대했다. 다만, 두 사람은 소설에서 ‘스치고 갔을 뿐’이었다. 물론, 뒤로 가서는 연이 이어지지만(스포를 막기 위해 최소화한 이야기) 그러기까지 너무 많이 돌아가기 때문에 형오와 해주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메인’이 되고, 두 사람을 메인으로 한 ‘서사’ 혹은 ‘갈등’이 더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순서상 첫 번째로 나오는 인물이 메인 주인공, 두 번째로 나오는 인물이 두 번째 주인공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더 그랬을 터다.

어디까지나 아쉬운 점일 뿐, 꽤 긴 이 소설을 써내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느껴졌다. 진심이 담긴 글이어서 진심을 담아 써 본 리뷰, 이 글을 읽고 소설이 궁금해졌다면 한 번 차분하게 읽어보도록. 읽을 수록 삼삼한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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