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한다는 것의 어려움 감상

대상작품: 구조구석방원 (작가: 아소, 작품정보)
리뷰어: 뿡아, 4월 30일, 조회 18

 

* 주의 *
이 리뷰는 소설의 전체 내용과 결말을 포함합니다.
작품을 감상하신 후, 리뷰를 보시길 권합니다.

 

이 소설은 ‘집에서 일주일간 문을 닫지 않고 지내면 백만 원을 주겠다’는 여자 동기와 내기를 한 남자가 일주일 동안 겪게 된 이야기를 흡인력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내기에 대하여 – 표면과 내면

이 이야기에서의 내기는 두 가지 층위로 볼 수 있습니다. 표면상으로 보면 이 내기는 ‘문을 열어두고 일주일간 살기가 가능한가’ 라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내기가 있습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범행에 노출된 환경에서 위험한가’ 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주인공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다를 바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동기는 ‘신체적으로 불리한, 여성이 훨씬 위험하다’라고 주장하지요.

그럼 내기의 결과를 살펴봅시다. 남자는 내기에서 이긴 걸까요? 사실 결과는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표면적인 내기, 즉 ‘문을 열어두고 일주일간 살기’에서는 이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버텼으니까요. 하지만 내면적인 내기에서는 남자가 졌습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제 입으로 ‘나 여자 아니라고’라고 말해버리고 맙니다. 즉 ‘여성은 남성에 비해 범행에 노출된 환경에서 위험하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해 버린 셈이지요. 그 발언을 한 순간, 내면적인 내기에서는 패배선언을 했다고 봐도 됩니다.

남자는 표면적인 내기에 치중한 결과, 그 표면적인 내기에서는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백만 원을 얻었죠. 하지만 결국 남자는 참극을 겪었습니다. 백만 원,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남자가 마지막으로 원한 건 그저 문을 닫아달라는 요구 뿐이었죠.

 

 

이해의 어려움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여자인 동기가 주인공에게 말했죠. 너는 남자라서 여자의 처지를 이해 못한다고요. 사실 이 대목에 이야기의 핵심적인 단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이 벌어진 이유는 남자가 진짜로 여자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남자는 여성의 처지를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여겼던 겁니다. 남자는 여자 동기를 보고 ‘사소한 일로 일반화’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태도는 여자 동기의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바로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수도 있는 일을 사소하게 여기는 태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몰이해는 비단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누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에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렇습니다. 이해라는 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처지가 실제로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기의 성별이 아닌 다른 성별을 싸잡아서 욕하고 헐뜯는 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약자 또는 피해자를 이해한다고 쉽게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해는 피상적인 이해에 그칠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직접 당해보지 않고 상상만으로는 다른 이의 처지를 쉽게 가늠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 나라에서 총을 겨누고 내란이 일어나며 큰 홍수나 재해로 수많은 목숨이 죽더라도 우리는 두 발을 뻗고 자며, 코미디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게임에 열중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안온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런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안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런 불상사가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착각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실제로 재난물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의심을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 일이 당장 나에게 닥친 일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내 안위를 지키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자신의 안온한 상태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이로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피해자나 약자가 되어보는 일이라는 겁니다. 이를테면 범죄의 위험성에 노출된 상황에서, 남자가 여자로 되어보는 것이겠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떻게 남자가 여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위협당할 일이 희박하다고 생각하던 어느 안일한 남자에게,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을 직접 겪도록 합니다. 이 소설에서 남성은 일주일 동안, ‘위협을 당하는 여성의 입장’이 됩니다. 즉, 상상력이 부족한 남자에게 직접적인 체험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좀 극단적인 방법이지만요.

 

 

안일함 – 몰랐다기 보다는 간과했던 것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남자의 생각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이빨이 뒤집히는 폭력에 당함으로써, ‘남자도 범행에 있어서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라는 말을 몸소 증명해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남자는 처음에 내기에 한 달은 길다고 생각했고, 동기와 합의하여 일주일로 기간을 줄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자는 이런 만약의 일이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동기 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조차 안일한 태도로 받아들인 겁니다.

그리고 그런 안일함은 곧 그릇된 확신을 낳습니다. 확신은 내기를 하도록 하고 그 내기가 남자를 파멸로 이끕니다. 그 결과, 함부로 놀리던 이빨이 뒤집힘으로써 모든 발언이 자신을 향하게 하는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남자는 자신의 이해를 초월하는 일을 겪어버렸죠. 남자는 스스로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성대결 논리, 혹은 단순히 페미니스트를 무시한 남자에 대한 응징을 그린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인간이 다른 처지에 있는 타인을 이해하기가 그토록 어려움을 말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몰이해는 어떤 현상을 무심하게 받아들이거나 간과하는 태도, 즉 안일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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