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직장은 없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신입사원 (작가: 이시우, 작품정보)
리뷰어: 해리쓴, 3월 28일, 조회 15

1.

예전에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라는 소설 속 대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죠. 노동의 가치가 왜곡되기 일쑤인 고도 자본주의 세상에서 조금만 일하고 많은 보상을 얻는 건 아마도 대다수의 꿈일 겁니다.

<신입사원>의 주인공 세일은 그런 꿈의 직장을 만납니다. 하는 일이라곤 가만히 앉아서 시계를 바라보다가 비상시에 문손잡이를 당기는 것뿐. 하지만 보상은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평생의 꿈인 아파트도, 외제 차도 티셔츠 사듯 손쉽게 얻을 정도네요. 말만 들어도 애사심이 들끓으며 회사에 뼈를 묻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보상이 어마어마하다면, 일 또한 어마어마하기 마련. 게다가 이유 없는 보상은 함정일 때가 많습니다(픽션 속이라면 더더욱). 과연 세일이 해내야 할 일,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인가. 그것은 <신입사원>의 핵심 내용이기도 합니다.

 

2.

<신입사원>은 중심 사건의 내막과 전말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는 종류의 소설은 아닙니다. 핵심은 곳곳이 가려져 있고, 그 주변과 핵심으로 이르는 길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불가사의하고 불분명한 내막과, 그 내막이 만들어 내는 의문과 긴장감이 좀처럼 책에서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핵심이 가려져 있다는 건 그 핵심에 다양한 해석이나 상상을 대입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필연적으로 독자에게 적극적인 해석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은 취향에 따라 조금은 번거롭게, 혹은 무책임하게 느끼는 독자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구성입니다. 그런 구성의 소설들은 읽고 나서도 곱씹을 거리도 많고, 다시 읽을 때도 새로운 재미와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신입사원>을 읽으며 든 의문들을 중심으로, 어떻게 읽고 느꼈는지 적어보려 합니다.

 

3.

[거인-꿈꾸는 자는 누구인가?]

거인. 혹은 꿈꾸는 자. 세일의 꿈속에서 세일에게 말을 거는 존재. 작품에서는 ‘개미들이 거인의 몸에 왕국을 세웠다’ ‘원숭이가 거인으로부터 불을 찬탈하여 문명을 일으켰다’는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이야기가 반복해 등장합니다. 그리고 ‘거인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꿈꾸는 자가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에 문명은 끝장날 거라는 경고도 이어집니다.

이 존재를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러브크래프트입니다. 크툴루. 바다 밑 도시에 잠들어 있다는 옛 지구의 지배자. 예민한 종복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다시 지상으로 나올 날을 기다린다는 초자연적이고 막강한 힘을 지닌 존재. 거인-꿈꾸는 자는 여러 면에서 크툴루를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두 존재는 여러 측면에서 다릅니다. 거인-꿈꾸는 자는 암시적인 정보로서만 존재할 뿐 크툴루와 같은 구체성(이 또한 상대적일 뿐이지만)은 거의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인-꿈꾸는 자는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사는지, 어떤 차원의 존재인지조차 불분명합니다. 그러한 비구체성은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부채질함과 동시에, 상징적인 해석 쪽으로 손짓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자연’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릅니다. 철학사 한 토막을 끌어들이자면, 퓌지스(Physis)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차츰 자연이 인간에게서 분리되어 정복과 이용의 대상이 되면서 근대 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성적 사고가 중심이 되면서 거기에 포착되지 않는 것들은 미신과 꿈, 무의식의 영역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렇게 문명은 눈부시게 발달했지만, 자연은 날이 갈수록 파괴되었고 인간의 정신은 반쪽짜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번영을 위해 파괴되고 밀려난 것들이 되돌아와 끝내 문명을 무너뜨리고 말지도 모른다는 불안. 거인-꿈꾸는 자의 실체는 어쩌면 그런 불안감일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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