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nc et in hora mortis nostrae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목차
1. 글을 시작하며
2. 피에타(pietà)
3. 칠죄종(los siete pecados capitales)
4. 실낙원(Paradise Lost)
5. 글을 마치며
1. 글을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추천리뷰어 난네코입니다. 추천리뷰어로 영전한 뒤론, 브릿G에서 활동 중인 문학가들을 위해 좋은 글을 만들어서 선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낱 인간으로서, 모든 이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사헬란트로프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에서 출발하여 현생인류(Homo sapiens)까지 도달한 위대한 여정은, 더 발전하고 싶은 인류의 오랜 욕망에서 시작된 진화라고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미묘(微眇)하고, 천미(賤微)한 난네코라는 개인조차도 과거의 나보다 더욱 발전하고 싶고, 더욱 성장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수백만 년전 조상들도 생물학적인 진화(進化)를 이루었고, 현존재인 우리도 과학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진보(進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024년 3월에 작성하는 두번째 리뷰는 2023년 6월에 작성했던 첫번째 리뷰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강렬한 리뷰로 조형해내고 싶습니다. 저는 선연 작가님을 위하여 두번째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선연 작가님의 <피에타>는 2023년과 2024년에 브릿G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2024년 3월 30일 기준으로 9173매라는 굉장한 분량의 서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선연 작가님의 3번째 작품인 <피에타>는 선연 작가님께서 7부작으로 계획하고 있으며, 현재(2024년 3월 30일) 5부가 연재 중입니다. <피에타>의 첫화인 1화 프롤로그부터 최신화인 215화 i. 주데카(13)까지 쭉 정주행하면서, 선연 작가님이 창조한 세계를 이해하고자, 선연 작가님의 사고의 흐름을 쫒아가면서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연 작가님이 <피에타>의 세계관을 창조하기 위해 주조한 언어들, <피에타>의 기원과 어원들을 찾아보았습니다. <피에타>를 읽게되실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난네코라는 미물이 미미한 제물을 바치겠사옵나이다.
2. 피에타(pietà)
[Figure 1]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Republic of Florence, Carprese 1475-1564 Rome), Michelangelo’s Pietà (Pietà di Michelangelo), Marble sculpture of Jesus and Mary, 174cm × 195cm × 69cm, 1498-1499, Saint Peter’s Basilica(Basilica Papale di San Pietro), Vatican City.
[Figure 2] Giovanni Bellini(Republic of Venice, Venice 1430-1516 Venice), The Dead Christ Supported by the Virgin Mary and St John the Evangelist (Pietà), tempera on panel, 86cm × 107cm, 1465-1470, Brera Art Gallery(Pinacoteca di Brera), Milan, Italy.
위의 두개의 도상은 ‘피에타’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서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그림들입니다. 첫번째 도상은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피에타’ 조각상이고, 두번째 도상은 이탈리아의 브레라 미술관에 있는 ‘피에타’ 회화입니다. 두개의 ‘피에타’는 각각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조반니 벨리니가 제작했습니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는 말로서 특별히 십자가에서 내려온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묘사한 예술 작품을 망라하는 예술 주제입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일생 가운데 3개의 피에타 상을 조각하였습니다. 위에 [Figure 1]는 미켈란젤로가 24살에 완성한 것으로 프랑스 추기경 장 드 빌레르(Jean de Bilhères)의 장례 미사 기념비로 주문을 받아 제작된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피에타입니다. 수많은 피에타 작품 중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독보적인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이탈리아 조각중 미증유의 구도와 조형미, 생동감 넘치는 세부묘사, 또한 예수의 죽음과 마리아의 비탄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 때문입니다.1
또한, [figure 2]에서 중세의 비잔틴 교회에서 마리아의 품에 안긴 죽은 예수의 모습은 ‘이마고 피에타티스’(Imago Pietatis) 혹은 ‘비탄의 예수’(Vir Dolorum)라는 이름으로 가장 대표적인 성화로서 성찬식의 전례에 사용했고, 비잔틴 제국과 밀접한 경제적, 문화적 교류를 맺고 있던 베네치아 공화국 역시 그 영향으로 피에타를 성찬 설교에 즐겨 사용했습니다.2 선연 작가님께서 <피에타>의 제목을 지을 때, 위에 언급된 슬픔과 비탄이라는 뜻의 ‘피에타’에서 영감을 받으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다양한 아픔을 내포할 수 있는 단어가 ‘피에타’라고 생각하여, 선연 작가님께서 특별히 <피에타>라는 제목으로 명명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연 작가님의 소설 <피에타>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피에타>를 읽게되실 미래의 독자 분들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선연 작가님의 문체를 감상하길 권장합니다. 문학>소설도 예술의 한 갈래이기에 바라보고, 읽어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 진정으로 작품을 음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3. 칠죄종(los siete pecados capitales)
‘7대 죄악’은 기독교적 개념이기는 하나, 사실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어있는 사항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가톨릭교회에서 5-6세기경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논의를 통해 정립된 인간의 죄악 및 악습에 대한 일종의 불문율적 정의와 분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를 칠죄종(七罪宗, los siete pecados capitales)이라 부릅니다. 7대 죄악은 성경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가톨릭의 전통이 만들어낸 일종의 교훈입니다.3 한국 가톨릭에서는 공식적으로 이 7대 죄악을 교만, 인색, 음욕, 탐욕, 질투, 분노, 나태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 시대부터 일곱 가지 중요한 죄종, 즉 일곱 가지 대죄라는 것에 관해서 논의하였다. 이를 칠죄종(七罪宗)이라 한다. 대죄는 창조된 선, 즉 피조물들에게로 향하는 초자연적 최후 목적에서 일탈함으로써 성립되기 때문에, 모든 대죄 중에는 교만(superbia, 驕慢)과 욕정(Concupiscentia 欲情)이 있다. 그래서 교만과 욕정을 공통의 악덕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 두 가지로 일곱 가지 죄종을 요약할 수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한국가톨릭대사전 10권』, 분도출판사, 2004, p. 7789.
“악습들은 그와 반대되는 덕에 따라 분류할 수 있고, 또 죄종(罪宗)과 연관시킬수 있다. 죄종(peccata capitalia)은 요한 카시아누스 성인과 대 그레고리오 성인의 뒤를 이어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으로 식별되었다.”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p. 693.
가톨릭교회의 ‘칠죄종’은 중세가 끝나갈 무렵에 르네상스의 선구자였던 이탈리아의 시인 Dante Alighieri(Republic of Florence, Florence 1265-1321 Ravenna)가 쓴 『신곡』 (La Divina Commedia)을 통해서 세상에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7대 죄악이라는 것도 사실은 이 단테의 『신곡』을 통해서 세상에 더욱 잘 알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은 지옥, 연옥, 천당이라는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생전에 자신이 지은 죄의 대가를 받으며 천당으로 오르기 위해 참회하는 여러 영혼들이 등장하는 ‘연옥’ 편에서 바로 이 7대 죄악이 묘사되고 있습니다.4
선연 작가님의 소설 <피에타>가 7부작인 것은 가톨릭의 칠죄종과 『신곡』의 7대 죄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피에타>의 1부의 제목은 음욕, 2부의 제목은 탐욕, 3부의 제목은 인색, 4부의 제목은 나태, 5부의 제목은 분노입니다. 앞서 언급된 7대 죄악인 교만, 인색, 음욕, 탐욕, 질투, 분노, 나태와 겹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선연 작가님께서 앞으로 6부와 7부를 연재하실 경우, 그 챕터들의 제목은 교만과 질투가 될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어원을 따라가며 탐독하는 것도 소설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4. 실낙원(Paradise Lost)
1.
비참하여라! 나는 어디로 날아가도
영원한 천벌이고, 또 영원한 절망인 것인가?
어디로 날아가도 지옥이니, 나 자신이 지옥인 거다.Me miserable! which way shall I fly
Infinite wrath, and infinite despair?
Which way I fly is Hell; myself am Hell. (IV 73-75)
2.
사탄은 스스로 악명 높은 자리에 올라
격상되어 앉아, 절망으로부터
그렇게 희망 이상으로 높이 추켜올려져
그렇게 높은 곳 너머를 대망한다…Satan exalted sat, by merit rais’d
To that bad eminence; and from despair
Thus high uplifted beyond hope, aspires
Beyond thus high… (II 5-8)
3.
보십시오, 이제 나를, 인간을 위해 나를, 생명을 위해 생명을
내가 바치려하오니, 나에게 당신의 분노를 내려주소서.
나를 사람으로 여겨주소서. 나는 인간을 위하여 당신의 품을
떠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 옆에 있는 이 영광을
자유의지로 내려놓습니다…Behold, mee then, mee for him, life for life
I offer, on mee let thine anger fall;
Account mee man; I for his sake will leave
Thy bosom, and this glory next to thee
Freely put off… (236-40)
박영원(2020). “나의 모험적인 노래”: 밀턴의 야망과 『실낙원』 캐릭터들의 교만. 영어영문학, 25(1), 51-70.
위의 구절들은 John Milton(England, London 1608-1674 London)의 『실낙원』 (Paradise Lost)에 등장하는 구절들을 박영원 교수5가 번역한 것들입니다. 존 밀턴은 영국 런던에서 부유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당시 유명한 신학자였던 토머스 영에게 시사를 했고, 16세 때 이미 성경의 ‘시편’ 일부를 운문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는 17세 때 케임브리지의 크라이스트 칼리지에 입학했고, 24세 때 문학석사로 졸업할때까지 최초의 걸작 ‘그리스도 탄생하신 날 아침에’ 를 비롯한 여러 편의 소네트를 썼습니다. 『실낙원』은 전 12편으로 구성된 방대한 작품입니다.
사탄의 반역과 몰락, 그리고 인류 최초의 남녀인 아담과 이브의 낙원 추방을 테마로 한 이 장편 서사시는 장엄한 문체와 심오한 종교적 통찰을 담은 대작입니다. 서사시라는 고전문학의 형식에 인간의 원죄와 구원의 가능성이라는 그리스도교적 내용을 성공적으로 융합시킨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최고의 종교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6 애석하게도, 저는 실낙원을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연 작가님의 <피에타>는 실낙원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방대한 분량의 장편소설이라는 점과 <피에타>의 ii. 악의 꽃(4)에서 존 밀턴의 실낙원이 언급됩니다. “그래. 넌 존 밀턴의 ≪실낙원≫에서 내 이름을 본 적이 있다고 했지? 그럼 한 가지 질문 할게. 넌 ≪실낙원≫의 저자라는 사실 말고 밀턴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지? 그가 어떤 생애를 보냈는지, 지금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지 들어본 적 있어? 그가 무슨 대학을 졸업했는지는?”7 하여, 제 빈약한 사고로 반성하건데, 선연 작가님께서 영향을 받은 문학작품이 바로 『실낙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선연 작가님의 <피에타>의 결말은 존 밀턴의 『실낙원』의 결말과 비슷한 궤적을 그릴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작품의 시작과 작품의 끝을 연결짓는 연결고리가 되지 않을까요?
5. 글을 마치며
리뷰의 제목인 nunc et in hora mortis nostrae는 라틴어 기도문 Ave Maria8에 있는 구절입니다.
Ave Maria, gratia plena, Dominus tecum.
Benedicta tu in mulieribus, et benedictus fructus ventris tui, Iesus.
Sancta Maria, Mater Dei, ora pro nobis peccatoribus, nunc et in hora mortis nostrae.
Amen.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니 환호합니다.
여인 중에 당신이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들 예수도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님, 지금과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들을 위하여 빌으소서 .
아멘.
뭔가 성스러운 느낌이 들지요? 맞습니다. 저는 선연 작가님의 발딱개입니다. 그러므로, 선연 작가님은 저에게 있어서 성모처럼 위대한 대문호입니다. 저는 선연 작가님이 완결하실 때까지 정주행을 하게될 노예 1호입니다. 순애와 광기는 근본적으로 같은 것들이라서, 저의 순수한 열망은 때론 광적인 변태성으로 치환되곤 합니다. 난네코라는 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선연 작가님. 부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서 한국인 최초, 한국어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탈환하시옵소서! 선연 작가님 만세! 만만세!